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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괴담] 출소날
게시물ID : panic_828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르군
추천 : 14
조회수 : 1920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5/08/25 16: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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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화창하다."

2017년 5월 2일.
드디어 난 바깥 공기를 맛보았다.
두 뺨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과 나를 가로막는 벽 따위는 없는 말 그대로의 바깥.
너무 즐겁고 감격스럽다.

"출소 축하한다."
"응."

차를 세워두고 엄마가 날 마중나왔다.
그러고보니 차가 바뀌었네. 하긴, 벌써 그 때로부터 시간도 오래 지났고, 엄마를 볼 땐 항상 교도소 안이었으니 알리가 있나.

"S는?"
".... 오기 싫댄다. 묻지말고 그냥 타."
"....응."

역시 S는 마중 나오지 않았다.
S는 나의 2살 터울 여동생이다.
항상 언니언니 하면서 날 잘따르던 아이였는데..
그날, 내가 어떤 여자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면서 부터 정신 질환을 크게 겪었다고 면회 온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물론 그 이유는 나 때문이라고도..
난 그냥 젊었고, 아직 잘 몰랐던 것 뿐이었는데..
그 작은 실수가 이렇게까지 날 옭아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 맛있는 거라도 사줄까?"
"응! 나 진짜 맛있는 피자 먹고싶어!"
"..후, 그래."
"앗싸!"
"아, 그러고보니. 너 이제 몇살이니?"
"아, 진짜. 딸한테 관심 좀 가져라 엄마."
"..."
"나 이제, 딱 서른."
"서른...이구나."
"응.."

하아, 갑자기 왜 나이를 물어봐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실까.
아까운 내 청춘, 아까운 내 인생. 갑자기 우울해진다.
모든 건 그 여자 때문이다.
그 여자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억울하게 시간을 버리진 않았을거다.

"후우.."

차창으로 비치는 도시는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세월이 지났기 때문일까.
교도소 안에서 TV를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모습은 충분히 많이 봤지만
확실히 직접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적응해야겠지.

난 당당한 사회인인걸?

-------------------------------------------------------------

"집은 처음 와보지?"
"응."
"그래, 니가 그렇게 되고 나서 우린 모두 이사를 갔단다."
"...."
"여기가 우리 집이야. 일단은."
"일단?"
"그래,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너도 왔고."
"...."

뭐야, 오자마자 구박이야.
나 감옥에 있을 땐 면회조차 잘 오지도 않았으면서!
아, 짜증 나!

"엄마, 그만하자."
"뭐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
"후,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래, 여하튼 잘 왔다."

그렇게 말을 뱉은 엄마는 그대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난 그 뒤를 조심히 따라들어갔다.

"후우아..."

처음 딛는 나의 집에선, 짙은 라벤더 향이 났다.
내 기억엔 엄마는 이런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억이 나는데..
아마 S가 집에다 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왠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한참 그렇게 거실에 서서 집을 구경하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S야, 언니 왔다."

S가 집에 있었나 보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는다.
뭐, 당연한건가.

"후, 그럼 나머진 알아서 해."

그 후, 쾅! 하는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집 안에서 엄마가 걸어 나왔다.
아마 S는 내가 보기 싫은 것 같다.
그래,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우린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도 S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다.
난 순전히 그 때 그 여자의 행동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거다.
정말이다.
그건 정말 내 의도가 아니었었는데.. 모든게 원망스럽다..

"너, 친구들이랑은 연락하니?"

대뜸, 엄마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응, B 알아? 그 때 나랑 같이 있었던 애."
"아.. 별로 알고 싶지도 않구나."
"후, 됐고.. 그 애 말고는 없지 뭐."

그래, 나에게 있던 친구들은 모두 사라졌다.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뭐, 교도소에 있으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언니, 동생들과 친구라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글쎄다. 밖에 나오는 순간 그 사람들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그 지긋지긋한 곳의 일은 단 하나도 기억할만한 것들이 없으니까.

"엄마 잠깐 밖에 좀 다녀올꺼야. 아마 좀 늦을테니 S랑 같이 저녁 챙겨 먹어."
"아, 엄마. 쟤 지금 나 완전 싫어하는데 어떻게 같이 먹어?"
"그럼 따로 먹든가. 여튼 알아서 해. 엄마 나간다."

철컹

그렇게 엄마가 집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뭔가, 바람처럼 날 두고는 그대로 가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한참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멍 때리다가 문득 S가 생각났다.
그래도 언니가 왔는데, 단 한번도 나와보지 않고 자기 방에 틀어박힌 동생을 생각하니 울컥한다.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자길 챙겨줬는데, 이건 너무한거 아닌가!
순간 솟구치는 화에 벌떡 일어나 S의 방 앞으로 갔다.

똑똑

"야, S야. 언니야."

하나, 둘, 셋, 넷.... 마음 속으로 10초를 세어보면서 기다렸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똑똑똑

"야, 그래도 언니가 몇년만에 집에 왔는데 너무 한거 아니니? 인사는 안바래. 그래도 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아냐. 앞으로 내 얼굴 영원히 안볼꺼야?"

갑자기 열이 받는다. 이런 년이 내 동생이라고, 어떻게 가족이라는 애가 이렇게 날 무시할 수 있지? 너무한거 아냐?
그렇게 분한 마음으로 다시 문을 두들기려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아냐."
"응? 뭐라고?"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아."

왠 뜬구름 잡는 소리람..

"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언니 안볼꺼야 그럼?"
"보긴 볼건데, 지금은 아니야."

하, 기가차서 말도 안나온다.

"그럼 언제 볼껀데? 언니 죽어서 땅에 묻히면 그때 볼래?"
"......."
"대체 무슨..."

순간, 방 안에서 나온 날선 목소리에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응. 그럴까?"
"... 뭐?"

얘가 점점, 해도해도 너무한다.
언니를 무시해도 적당히 무시해야지, 이건 대놓고 꺼지라는 수준 아닌가.
아무리 내가 죄를 지었던 사람이락는 해도, 사람은 사람이잖아?
그리고 난 이미 죗값을 다 치르고 나왔는데 대체 짜증나게 왜이러는거야?

"너 진짜 언니한테 처 맞아야 정신 차릴래? 응?"
 
쾅쾅쾅쾅!

"야! 당장 안나와? 너 나한테 안맞은지 한참 됐지? 그지?"
"장난이야. 그만해 언니."
"장난? 장난? 너 지금 그런 장난을 언니한테 막 쳐도 되는거니? 응?"
"미안해. 언니야."

놀랬다.
그렇게 화가 나 있었는데, 누그러뜨린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 녹듯이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그저 반가움, 그 뿐이었다.
이게 가족이라는 건가.

"하, 됐고. 니가 날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하자 우리."
"...."
"그래서 대체 네 방에서 나올건데?"
"나 몸도 좀 안좋고 하니까, 이따 저녁에.."
"야, 무슨 저녁에 보면 안좋던 몸이 좋아진다니?"
"그냥, 지금은 좀 그래."

후, 그렇다니까 할 말이 없다.

"알았어, 쉬고 저녁에 봐 그럼."
"응."

그렇게 S의 방을 뒤로하고 난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내 방은 어디지?
S의 방을 제외한 다른 방을 뒤져봤지만 딱히 내 방이라고 보이는 방은 없었다.
뭐야, 아직도 준비 안한거야? 서운하게.

집 안을 한바퀴 돈 나는 소파에 누웠다.
TV는 더이상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안보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

"....어?"
"응."
"오늘은 정말 축하할 날이구나."
"그렇네 아빠."

응? 무슨 소리지?

"....으..으음."
"어, 일어났어?"

대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보니 여자 한명과 남자 한명이 있다.
그리고 둘다 모르는 얼굴이다. 누구지?

"누구?"
"응? 나?"
"..응."
"나 S야 언니. 기억 안나?"
"어? 니가 S라고?"
"응. 많이 컸지."
"와, 진짜? 정말? 너 완전 변했구나?"

S는 완전한 숙녀가 다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 여자인 내가 봐도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정말 부러운 얼굴이다.
아, 갑자기 생각드는 나의 신세. 또 울적해질려고 하네.

"와, 너무 이쁘다."
".. 고마워."

나의 칭찬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S가 너무 귀엽다.
그렇게 한창 S와 얘기를 하다가 문득 날 보고 있는 남자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근데, 이분은?"
"아빠야. 새아빠."
"아, 안녕하세요."
"........"

아빠라는 존재는 내가 어릴 적 부터 없었다.
아마 내가 없는 동안 새로 결혼하신 아빠겠지.
그런데 그 남자의 눈빛은 날 달갑게 보는 것 같지 않다.
아니, 달갑기는 커녕 증오하는 듯한 눈빛이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제가 잘못이라도..."
".... 아니다. 반갑구나."

굉장히 애써서 웃는 듯한 남자의 억지 미소에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사했다.
그리고 흐르는 어색한 공기에 뻘쭘해 하고 있을 때, 어디론가 갔던 S가 오렌지 쥬스를 따라왔다.

"언니, 오느라 고생했는데 이거 먹어."
"응? 아아.."

무심결에 쥬스가 담긴 유리컵을 받아 들었다.
아씨, 하필이면 쥬스를 줘도 오렌지 쥬스를 주니.

"야, 너 일부러 이거 준거지?"
"응? 왜?"
"왜긴, 너 어릴 적에 기억 안나? 내가 그렇게 오렌지 쥬스 먹기 싫다고 엄마한테 화를 내고 그랬었잖아. 그러고보니 너도 싫어하지 않았어?"
"응? 아아.. 그랬었나.."

잠깐,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내 기억엔 S도 나처럼 오렌지 쥬스를 굉장히 싫어했었다고 기억하는데..
확실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서로 쥬스를 미루는 통에 엄마한테 물씬 맞았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이 말을 걸었다.

"그냥 지금은 난 괜찮거든. 미안. 아무 생각없이 언니한테 줬네."
"아냐. 괜찮아. 지금은 뭐 나도 딱히 신경 안써."

뭐, 사실 신경은 쓰지만..
그래도 동생이 챙겨준 쥬스인데 거절하기가 미안했다.
그대로 컵을 들어 쥬스를 삼킨 나는 애써 웃으며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뭐, 먹을만 하네. 헤헷."

그렇게 얘기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그러게,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언니."
"후아..."

어라, 갑자기 잠이 몰려온다.
뭐지, 왜이렇게 졸리지.
응? 이거 너무 졸...

"언니 자?"
"아..아......."
"졸려?"
"아....."
"헤, 이따 봐."

순간 S의 섬찟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난 정신을 잃었다.


---------------------------------------------------------------

"으..으윽!"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난 의자에 묶여있는 채로 일어났다.
예감이 좋지않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어두운 일종의 창고 안에 있느 것 같았다.
여긴 대체 어디지?

"언니."

그렇게 주변을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S의 목소리가 들린다.

"S? S니?"

S의 목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며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난 애써 무시하며 다시 S를 부른다.

"S야, 이게 뭐야? 응? 여기 어디야? 왜이래? 응?"

그러자 저 멀리서 S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S? S가 누구야?"
"...응? 무슨 소리야?"
"S가 누구냐고.. 아, 그래. 네 동생 이름이 S인가?"

뭐지? S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
S면 바로 너잖....... 잠깐.
이거 설마..

"왜, 설마 내가 니 동생인 척 했을까봐? 이야. 잘아네. 맞아. 내가 연기한거야."

소름이 돋는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지?

"니가 깜빵에 처박힌게 15년인가? 한 짓 치고는 참 싸게 먹혔어? 그치?"
"뭐, 뭐야. 누구야?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긴. 너 가지고 노는 짓이지."
".....야!"
"시끄러. 소리지르지마. 짜증나니까."

그렇게 담담히 얘기하며 그 목소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확실히, 아까 내가 S라고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섬찟한 얼굴이다.

"니 동생, 예전에 자살했어. 없어. 이 세상에."
"...뭣..."
"그니까 니 동생 죽었다고. 너 때문에. 이 미친년아!"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대체 왜? 내가 뭘 어쨌는데?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난 죽을 고생을 하며 이제 막 나왔다고.
근데 왜 나한테 이러는건데? 응?"
"뭘 잘못해? 죽을 고생을 했어?"

그렇게 묻고는 그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자기 얼굴을 드리밀었다.

"난 너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허억!"

순간 놀란 나는 다리를 허우적 거리다 의자와 함께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쿠당탕!
"깔깔깔, 재밌네. 혼자 쇼하세요?"
"대..대체 왜이러는데?"

그렇게 내가 얘기하자마자, 갑자기 여자의 웃는 소리가 멈췄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있었을까,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너, 니가 왜 감옥에 갔는 지 알아?"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니가 감.옥.에 갔는지 아냐고?"
"아...알지. 당연히."
"그럼 내가 왜 이러는지 니가 모르면 안되지 않아?"
"아니, 그러니까 대체 무슨.."
"입 닥쳐!!!!!!!!!"

내가 있는 창고에 메아리가 지도록, 그 여자는 나에게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너 그입 한번만 더 나불거리면..."

그리고는 여자가 식칼을 꺼내들었다.

"그대로 죽여버릴꺼야."

꿀꺽

난 밀려오는 공포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하, 이젠 잘못했다네.. 킥킥킥.. 야, 너 니가 뭘 했는지 모른다면서. 알고나 사과하냐?"
"그냥 제가 잘못했어요."
"그럼 니가 니 입으로 얘기해봐. 니가 왜 감옥에 들어갔는지.."
"네?"
"니가. 니 입으로. 얘기를 해 보라고. 니가 무슨 짓을 하고. 감옥에. 들어.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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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난 정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사실이다.

학교를 땡땡이 치고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남자친구 B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얘기인 즉슨, 자기가 건수를 하나 잡을 것 같다고 자기를 좀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냥 도와주러 간거였다. 딱히 다른 의미있는 일을 하고자 갔던 것도 아니었고 크게 벌리고 싶은 생각도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을 한 곳은 어느 아파트 단지였다.
B는 나에게 망을 보라고 시키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찾기 시작했다.
한쪽 손에는 자기 집에서 챙겨온 것으로 보이는 듯한 식칼을 챙기고..
그렇게 네집 정도를 돌았을까,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허탕을 치고 있었을 때 갑자기 B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자기가 좋은 집을 하나 알고 있다고, 다른 집이 안되니 조금 멀긴해도 거기로 가자는 거였다.
난 그냥 흔쾌히 따라갔다. 딱히 다른 일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B와 함께 도착한 그 집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바로 집 안에서 누구냐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B에요, 아줌마."

그래, 분명 B는 그렇게 말했다. 필시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겠지.
안에서 잠깐만 기다리는 말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끝났다.

B는 바로 여자에게 달라들어 칼로 위협하며 주먹으로 여자를 사정없이 때렸다.
난 당황해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확실히 생각을 했을 때와 직접 보는 것은 틀리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여자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같이 집안을 뒤졌다.
그러다 운좋게 보석이 담긴 함을 하나 찾았고, 현금도 십만원 정도를 챙겼다.
한참 챙겼을까, 이제 집을 나갈까 하는데 여자가 움찔 거렸다.

아, 그냥 가만히 좀 있지.
역시나 B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뜸 목격자는 살려두면 안돼! 라고 들으라는 듯이 외치더니
그대로 여자에게 달려가 배에 칼을 쑤셔넣었다.

역겨웠다.
여자는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뭔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 살려달라는 말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B는 무시하고 한번 더 찔렀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얼마를 찔렀을까,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B와 나는 그 집에서 나왔다.
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난 B와 함께 그 돈으로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스테이크 집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B가 나에게 말을 했다.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야, 라고..
난 알았다는 대답을 했고 맛있는 식사 후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집에 온 경찰에게 잡혀 살인공모죄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마저도 청소년이기에 감형된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죽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 여자가 움찔 거리지만 않았다면..
거기서 그냥 가만히 있었더라면 그대로 끝날 일일 터였다.

난 그냥 보기만 했다.
잘못한 건 없다고.
난 내 죄값을 치뤘다고...


"정말 니 죄값을 치뤘다고 생각해?"

눈물 범벅으로 된 날 바라보며 그 여자가 말을 걸었다.

"너랑 네 남자친구라는 쓰래기가 내 엄마를 죽였어. 내가 사랑하는 그 엄마를, 너희 같은 쓰래기들이 죽였다고!"
"미안해! 난 정말..끅... 그럴려고 그런게.."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쳐!"
"흑..흑흑.."

그렇게 한참 울고 있는데,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느라 지치지? 힘들지? 곧 편안해 질꺼야."
"그게 무슨.."

찌이익!

말을 할려는 찰나, 갑자기 입이 테이프로 감기기 시작했다.

"읍!읍!"

찌이익! 찌익!

내 뒤에 있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내 얼굴은 눈만 남기고 모두 테이프로 가려졌다.
숨쉬기가 괴롭다.

"그럼, 딸아. 이제 넌 집에 가거라."
"아니, 아빠. 난 다 볼꺼야."
"아냐, 이건 아빠가 해야하고 아빠 혼자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야."
"아빠!"
"딸아.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누군가는 그 죄를 뒤집어 써야 한다.
아빠가 뒤집어 쓸꺼야. 그리고 넌 다른 할일이 있잖니."
"....."
"괜히 살인 현장에 있었다고 하면 일이 커진단다. 이미 H씨에게도 말은 다 해놨어. 넌 집에 있으면 된단다."

잠깐? H씨라고? 내 엄마 이름인데?

"읍읍!!읍읍!!"
"아, 그래. H씨는 한 때 네 어미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처음에 그 사람을 봤을 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지."
"읍읍!!"
"숨쉬기 힘들텐데 무리하지 말고.. 여하튼 어쩌다 보니 그 여자의 사정을 들었다.
너로 인해 여동생은 자살하고, 주변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왔노라 하고.. 그렇게 얘기하더구나."
"...."
"그렇게 어쩌다보니 우린 많이 친해졌단다. 내 딸아이도 처음엔 말도 못할 정도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따르는 사람이 H씨지."
".....읍읍.."
"너도 알겠지만, 이미 H씨는 너를 딸이라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넌 그냥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래기인거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
"......"

난 이대로 죽는건가.
아직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봤는데.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가 곧 그 쓰래기를 치울거란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렇게 얘기하고, 남자는 칼을 꺼내들었다.

"난 널 천천히, 고통 스럽게 죽일거란다.
날 증오하려면 증오해다오.
날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좋단다."

천천히 다가온다.

"뭐든 좋으니 아무 생각이나 하렴."

내 눈을 바라본다.


"출소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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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46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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