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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글?) 안도
게시물ID : panic_829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레타
추천 : 1
조회수 : 74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31 20: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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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안도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며 부서져라 내리치던 잠긴 문이 이윽고 낡은 소리를 내며 스르륵 열렸기 때문이다. 나는 등을 떠밀리 듯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몸을 기울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 직전에 집주인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버티어 섰다. 인자한 눈을 한 초로의 신사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꺼이 나를 집안에 들였다. 문을 닫아버려요. 빨리 잠가요. 제발. 그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로 걸어가는 내내 나는 그렇게 애원했다. 남자는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의 요구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대로 따라주었다. 걸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이런, 꼴이 말이 아니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는 생각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눈물 탓에 온 얼굴에 들러붙은 긴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떼어 내며, 고자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내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집에 가고 있던 중이었어요.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네서 놀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심야에는 여기까지밖에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여기서 내렸어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까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걷는 내내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착각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어요. 내가 걸음을 빨리 하면 그 소리도 빨라지고, 내가 뛰면 그 발소리도 다급해졌어요... 나를 쫓아오는 게 틀림없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무서웠던 게 뭔지 알아요? 이 주택가에서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어느 집 한곳에서도 불이 켜지질 않았다는 거예요....... 오히려 창문으로 새어나오던 모든 불빛이 꺼지기 시작했다고요!"
 
남자는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아 깍지를 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보는 것조차 두려워 하이힐을 신은 발이 아픈 것도 잊고 무작정 앞을 바라보고 뛰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계속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빛이라곤 듬성듬성 심어진 잡초처럼 형편없는 관리된 가로등이 전부였다.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고 달리던 끝에, 나는 이 집을 발견했다. 유일하게 불빛이 꺼지지 않은 곳. 따스해 보이는 주황색 불빛이 커튼 너머로 비치고 있던 이 집은, 대문이나 담벼락도 없었다. 세 칸짜리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두드릴 수 있는 현관문이 있었고, 그 위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적힌 팻말과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독실한 신자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분명했다. 여기라면 내 도움을 뿌리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망설일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는 당장에 남은 힘을 모두 짜내 현관문을 두드린 것이다.
 
"많이 놀랐겠군요."
 
남자는 나를 위로하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등을 돌리며 집안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따뜻한 차를 가져올게요. 마시면 조금 진정이 될 거예요. 그걸 마시고 나면 제가 차로 댁까지 바래다 드리도록 하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경찰을 불러줄게요."
 
그는 천천히 슬리퍼를 끌며 눈앞에서 사라졌고, 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위를 둘러볼만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안의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벽난로. 보라색 커튼. 작고 푹신한 소파. 발밑에 깔린, 얕게 먼지가 쌓인 매트. 아무것도 꽂혀 있지 않은 하늘색 화병. 분주히 굴러다니던 눈동자는 이윽고 거실 한구석에 놓인 전신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향한다. 눈물로 번진 화장 탓에 얼굴은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웠고, 발은 높은 구두를 신고 뛰어다닌 탓에 까지고 긁혀 엉망이었다. 윗입술이 들썩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 일을 다 겪게 되는구나. 하지만 괜찮아. 좋은 사람을 만나 다행이다. 죽이는 신이 있으면 살리는 신이 있다는 말은 틀린 게 아니었어.
 
 
 
나는 그렇게 안도했다.
 
보고 있던 거울에, 찻잔이 아닌 밧줄을 들고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등 뒤의 남자를 보기 전까지는.
 
 
 
*
 
 
복도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 소리를 따라 이웃주민들이 차례로 문을 잠군다는 괴담을
고등학교 때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그나마 도와주려던 집이 사실 함정이라면!? 하는 망상이 가미되서 쓴 글입니다 :D..
뻔한 얘기라 어딘가에 비슷한 스토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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