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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글) 엄마의 손맛
게시물ID : panic_830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레타
추천 : 5
조회수 : 16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02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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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무리 해봐도 엄마의 맛이 나질 않아.
 
엄마는 미식으로 유명한 지방 출신인데, 그래서 그런지 요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었지. 이를테면 스크램블 에그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요리도, 엄마가 만들면 맛이 달랐어. 엄마가 차리는 밥상은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맛은 특별했어. 엄마가 할 수 없는 요리는, 내가 알기론 없었어. 내가 팔불출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야.
 
아, 물론 그녀라고 완벽했던 건 아니야. 인성은 꽝이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해. 이웃집에 살던 친구와 사소하게 다투었던 탓이었지. 혼날 만 했다고? 아냐, 아냐. 보통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동갑내기 친구와 티격태격 했다고 해서 한 시간 동안 얼굴을 얻어맞진 않지. 적어도 내 상식으론 그래. 동네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발목을 잡혀 거꾸로 들린 채 온 몸을 발로 채였어.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부위는 특히 심하게 맞았는데, 내 몸뚱이엔 일 년 내내 멍 자국이 가시질 않았지. 식사 후에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머리에 접시를 던지고 복부를 강타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네. 방금 먹어 소화도 채 되지 못한 음식물들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왔었지. 아깝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녀의 만행은 심해졌어. 교복을 찢고, 교과서를 불태워서 학교에도 나가지 못한 적이 많아. 나중에는 이유조차 모르고 그냥 맞았어. 아마 엄마는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그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할 실마리, 아주 작은 실마리만 제공해주면 됐지. 그냥 그걸 빌미로 날 괴롭히고 싶었던 거라고.
 
폭력을 견디다 못한 나는 가출을 감행했어. 아니, 집을 나왔을 때엔 이미 성인이 된 후였으니까 출가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 엄마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최소한의 짐만 싸들고 허겁지겁 뛰쳐나왔어. 칼바람이 무섭던 겨울날의 일이었지. 얼마 안 되는 돈을 주머니에 넣고 정처 없이 걷다가 작은 방을 얻었어. 그렇게 나는 그녀로부터 벗어났지.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내 길을 잘 걸어가고 있어.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고. 가정폭력으로 피폐해진 정신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차츰 치유해 갔어. 매일 땅을 보던 시선은 이제 똑바로 앞을 향해. 기력 없이 굽어 있던 등도 바짝 피고 걸을 수 있게 되었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싱긋 웃어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어. 하지만 말이야, 이렇게 변하게 된 나도 아직 요리만큼은 완벽하게 할 수 없어. 엄마의 요리, 참 맛있었는데 말이야. 요리 학원도 다녀봤지만, 좀처럼 마음대로 요리가 되질 않아. 그래서 비법을 좀 알고 싶어졌어.
 
 
오늘은 집을 나온 뒤 10년 만에 다시 본가를 방문하는 날이야.
 
 
 
 
 
 
 
 
 
 
음, 그래. 이 맛이야. 이 맛을 그동안, 얼마나 염원했는지.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그녀는 이제 나에게 다른 레시피를 전수해줄 처지도 못 되지만, 나는 만족해. 이 요리 하나면 돼.
이 게 바 로 진 짜 엄 마 의 맛 이 야. 엄 마 의 맛.
 
 
*
 
요리고자인 저의 주식은 인스턴트인데,
문득 집밥이 그리워져 옛 경험을 떠올리며 써봤습니다 :D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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