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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벽
게시물ID : readers_13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arkas
추천 : 2
조회수 : 23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27 03:39:22
1.

오늘 큰형과의 통화에서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오늘 내일 하신다”

펜을 쥐고있던 손의 힘이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말을 먼저 해야하는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준수는 내일 내려온다고 하더라 넌..”

큰형은 말끝을 흐리며 말을 멈췄다.
동네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큰형이 내 앞에서 말끝을 흐릴때는 딱 두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교육이랍시고 날 팰때와 나에게 욕을 할때였다.
내가 당장 앞에 있진 않으니깐 날 때릴수없을테니 이제 날아오는건 욕일게 분명했다.
하지만 형은 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요즘 일도 없다며? 오늘 막차타고 내려와라 마중 나갈테니깐”

나에게 이것은 곧 수없이 많은 폭언이 숨겨져있는 협박과도 같은 권고였다.
어떻게 보면 통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이러면 안되겠지만 난 큰형의 통보를 깔끔하게 무시하리라 다짐하고 대답했다.

오늘은 힘들거야

나의 대답에 큰형은 대답했다.

“뭐?”

큰형의 짧은 단어 한 개에 몸서리가 처졌다.
도대체 저말을 내뱉기전 나에게 얼마나 많은 욕을 뱉으려다 참았을까?

오늘은 힘들거라고

“사정 다 아는데도 오늘 힘들다고?”

나 역시 큰형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의도치 않은 반항을 눈치라도 챈 듯 큰형의 목소리톤이 조금 격앙되어있었다.

준수형도 내일 내려간다며? 나도 내일 내려갈게

사실 작은형의 이름까지 말해가면서 내 입장을 이렇게까지 변호할 필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에겐 명분이 필요했다.
작은형은 내가 알기론 오늘 귀국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출장에 나가있는 지금 큰형에게 전화를 받았다면 지금 비행기에 타고 있겠지

“야 너 이 개새끼야! 지금 누구 놀리는거야?!”

드디어 걱정과 동시에 내가 바라던 것이 터지고 말았다.
큰형은 항상 나를 이런식으로 대했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을 하셔서 키워주셨는데 뭐?”

드디어 큰형에게서 나올게 나왔다.
항상 저 레파토리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날엔 저 레파토리와 함께 거친 욕과 매질이 시작됬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난 형들에 비해 항상 부족했다.
옷을 사면 큰형이 새것을 입었으며 작은형이 헤진 것을 나는 찢어진 것을 입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일은 우리집이 가난한 탓이라고 자기위로를 할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형들과 나사이에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수백만명이 위로의 말을 건네도 허물지 못할 거대한 벽을 말이다.
동네에서 가장 똑똑했던 형이었지만 그것도 중학교까지 였다.
그 후엔 내가 큰형을 앞질렀고 작은형 역시 고등학교때 큰형을 앞질렀다.
내가 큰형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가져와도 어머니가 자랑하시는 건 빛바랜 중학교시절의 큰형의 백점짜리 시험지였다.
내것은 아니었다.
백점이 아니어서? 아니다. 
큰형의 시험지중에도 분명 백점이 아닌것들이 수북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자신의 큰아들을 동네에서 제일가는 천재로 만들고 싶어하셨다.
동네사람들도 그렇게 믿었고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내가 모르는 것 이라면 당연히 큰형이 알았고 내가 아는 것이어도 큰형이 알았다. 아니 알아야했다.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이 보이지 않는 벽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큰형과 작은형이 대학에 진학할 때 담임들이 진로 상담으로 어머니를 부를때면 항상 앞장서서 학교로 찾아가시던 어머니였지만 정작 내가 대학에 입학할때가 되어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말을 어머니께 전하자 어머니는 그저 “두명이면 됬다 형들이 알아서 해줄거다 일자리나 알아봐라” 라며 모르쇠로 일관하셨다.
다행히 나의 담임선생이 나에게 꽤 큰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담임선생이 1년 등록금을 내주고 다음에 천천히 갚는다는 조건하에 간신히 기숙사가 딸려있는 작은 대학에 간신히 입학할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무사히 졸업했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조촐하게 가정도 꾸린게 10년전 일이었다.
나는 수화기에 대고 ‘어머니가 고생해서 키우신건 형들뿐이잖아!’ 라는 말을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내뱉을수 있었지만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와이프가 날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오늘은 힘들어 내일 내려갈게

큰형은 나의 통보에 할말을 잃었는지 아니면 화를 참고있는건지 아까와 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화가 끊겼나 생각했지만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통화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내일 내려와라 어머니가 보고싶어 하신다”

큰형의 말투는 아까와 확연히 다르게 누그러진 상태였다.
날 포기한것인지 아니면 두고보자는 의미인지는 나로선 알수 없었다.

“내일 보자”

큰형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기자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땀찬 손바닥을 아무렇지 않게 티셔츠에 문대며 날 바라보고 있는 와이프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오늘 내일 하신다네

와이프 역시 어느정도 짐작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려가야되는거 아니야? 애들깨울까?”

나는 손을 저으며 담배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발코니로 향했다.



2.

다음날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난 후에야 어머니를 뵈러갈수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큰형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나의 위치를 확인했다.
큰형의 아파트에 들어서고 형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괜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어제 나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본다면 형 성격으로는 날 보자마자 욕부터 할것이 뻔했기에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채 잠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옆에 서있던 아내가 잠든 딸을 안은채 안들어가? 하며 물었을 때 그제서야 아무것도 걱정할게 없다고 생각하며 손잡이를 힘껏 돌려 문을 열었다.

나왔어요 

문을 열자마자 자연스럽게 내입에서 의도치 않게 튀어나온 한마디가 거실에 앉아있던 형과 형수 그리고 언제 도착했는지 모르는 작은형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구두를 벗는척 하며 일단 큰형의 표정을 살피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한것과는 다르게 큰형의 표정은 오히려 조금은 온화해 보일정도로 차분한 낯을 띄우고 있었다.
그에 비해 문제는 작은형 이었다.
큰형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랐지만 작은형은 익숙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이 눈빛은 원래 큰형이 나에게 보여줘야할 눈빛이었다.
경멸과 분노가 서려있는 눈빛 
내가 어릴적 공포에 떨며 잘못했어요 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게한 그 눈빛이었다.
작은형의 눈빛이 왜 저런지 나로서는 알길이 없었다.
큰형에 비해서는 작은형이 어릴적 내게 손을 댄 사건은 내가 작은형의 만화책을 몰래 헌책방에 팔아버렸을때를 제외하곤 일절 없었고 내가 큰형에게 혼나면 위로와 진심어린 조언을 해줬던 작은형이었다.

“왔냐”

지금은 오히려 큰형의 차분한 목소리가 날 긴장시켰다.

어 차가 좀 막히는 바람에..

실제로 차가 막히진 않았다.
차가 막혔어도 이곳과 우리집과의 거리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그저 수도에서 수도권으로 넘어가는 수준의 거리였다.
그럼에도 차가 막혔다고 한 이유는 오로지 내가 지금 이곳에 도착한 시간때문이었다.

어머닌?

“누워 계신다”

이번엔 오히려 작은형이 대답했다.
마치 내가 물어보기를 기다린 것처럼 빠른 대답이었다.
형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채 작은형의 매서운 눈빛을 뒤로하고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계신 방문앞에 서자 어머니 방 특유의 냄새가 났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맡게될지도 모르는 이냄새를 난 떨쳐내며 방문을 열었다.

“윤수냐?”

방문을 열자마자 어머니의 가래섞인 걸걸한 목소리가 내 가슴에 꽂혔다.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내시는 목소리중 태반은 가래가 섞인 목소리가 되어있었다.
형들 역시 알았고 나 역시 알았다.
그래도 내가 어릴땐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렇지 않았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어머니의 가죽뒤에 숨어 내게 말을 거는것처럼 괴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네 저 왔어요

최대한 무미건조하지 않게 대답하려 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냉랭했다.
그 벽때문인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벽이 내 눈앞에 보였을떄 부터였던가? 아니면 내가 집에서 나가 살때였던가? 모르겠다 나는 언제부턴가 어머니와 살가운 사이가 아닌 아들이 되어버렸다.

“휴우”

내 목소리에 어머니는 느닷없이 참았던 한숨을 쉬시며 내게 웃어보이셨다.

“그래 밥은 먹고 왔냐?”

네 먹었죠 어머니는 드셨어요?

“아서라 뭐 먹으면 편하게 못 간다”

어머니는 손사레까지 치시며 내게 말씀하시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셨다.
어머니가 바라보는 곳에 있는거라곤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혼수품으로 마련해왔다는 어머니의 보물인 장롱이 있었다.
하지만 난 어머니가 장롱을 응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어머니의 눈빛은 예전에 내가 알던 형들 대학을 보내겠다고 악착같이 버시던 그 맑은 눈빛이 아니었다.
뭔가 더럽혀진 듯 탁한 눈빛이었다.

“너만 온거냐?”

아뇨 와이프랑 애랑 같이 왔죠

“그럼 오랜만에 서연이나 좀 보자 손녀딸 얼굴 까먹겠구나”

잠시만요 데려올게요

어머니의 말에 거실로 나가려 하자 갑자기 큰일이라도 난 듯 어머니가 날 말렸다.

“아니다 아냐 실언을 했구나 이런 꼴로 무슨..”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서라 내 꼴은 내가 잘안다..노인네 손녀딸 보면 또 몇일 더 살아보겠다고 난리칠까봐서 무섭구나”

나는 다 포기하신듯한 어머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살면서 지금처럼 무기력한 모습의 어머니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난 나름대로 침묵을 지키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시는 어머니를 방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이 말 이후로 다시 이불에 몸을 눕히셨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신채 벽쪽으로 몸을 틀어 나를 등지셨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했다.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윤수야 물좀 떠오거라 목이 좀 타는구나”

희미하게 들린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네 하고 짧게 대답하며 방을 나서서 부엌으로 걸어갔다.
내가 부엌으로 걸어가자 다시 거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그 시선들을 뒤로한채 컵에 미지근한 물을 반쯤 채운뒤 다시 어머니께 돌아갔다.

어머니 물 가져왔어요

나의 부름에 어머니는 아무런 기척없이 아까와 같은 자세로 나를 등진채 누워계실뿐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목소리톤이 때문에 귀가 안좋으신 어머니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난 아까보다 조금 더 큰소리로 어머니께 외치듯 말했다.

물가져왔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가는귀가 먹으신것도 아니고 날 가지고 장난치실분도 아니셨다.
한참을 컵을든채 어머니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럽게 불안감에 휩쌓여 컵을 바닥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 물 가져왔다니깐요

어머니를 붙든채 흔드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힘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 어머니의 몸은 마치 종잇장처럼 내 힘을 거부했다.
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가는 사이 불안감이 확신으로 바뀌며 난 내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엄마!!



3.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나는 큰형과 오랜만에 거실에서 겸상을 하고 있었다.
작은 형이 일이 급하다며 도망치듯 떠라자 큰형이 둘이서라도 한잔하자며 모두 잠든 새벽에 술상을 직접 차려온것이었다.
안주는 쉰 김치뿐이었다.

“가시기 전에 뭐라고 하시디”

큰형이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수는 일이 급하다고 먼저 간다고 하더라 너무 서운해하지마라”

작은형은 분명 가족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먼저 가겠다고 말한뒤 가버렸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고 못들었을리 없지만 괜히 ‘들었어’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니 그거 기억나냐 니 중학교때 90점맞은 시험지 없어졌다고 동네를 뒤지고 다닌거”

기억이 안날리 없다.
중학교때 처음으로 9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 단순히 칭찬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뛰어 갔지만 어머니는 밭에 계셨고 난 어머니께 시험지를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에 부엌에 시험지를 올려놓고 친구들과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땐 어머니는 몇점을 맞았길래 시험지를 보여주지 않느냐며 내게 말하셨다.
시험지는 어머니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어머니는 내가 90점이라는 점수를 받은걸 믿지 않으셨다.
그날 해가 저물고 형들이 날 찾으러 올때까지 난 동네방네를 들쑤시고 다녔다.
그렇게 동네를 뒤졌지만 시험지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께 그 시험지를 보여드렸으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정도로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니가 90점 맞았다길래 이자식이 혼나기 싫어서 시험지 잃어버렸다고 하는구나 했지”

큰형이 씨익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도 따라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딱히 할말도 없었다.

“어머니가 그걸 그렇게 자랑하시더라 이것봐라 윤수가 얼마나 똑똑하냐, 너희보다 더 똑똑한놈이다 하면서”

나는 흠칫했다.
어머니가 날 두고 그렇게 말했다고?

큰형에게 묻자 큰형은 반쯤 풀린눈으로 “그래 임마” 하곤 다시 술잔을 채웠다.

이상했다.
어머니는 그때 내 시험지를 보지도 못하셨다.
그리고 그전까진 난 그저 똑똑한 형들에 가려져있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못믿겠냐?”

큰형의 질문에 솔직하게 여기까지 온마당에 거짓말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 전혀 못믿겠어

큰형은 그럴줄 알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인뒤 “기다려봐라” 하고 말한뒤 형수가 잠들어있는 안방에 들어가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나는 왠지 저것이 뭔지 알것같았다.
큰형이 들고 나온 것은 어머니가 그래도 옛날물건 가지고 있어서 나쁠거 없다 하시며 옛집을 허물 때 가지고 온 소쿠리였다.
그리고 그곳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큰 형의 시험지들이었다.
어머니의 자랑들
그리고 내 가슴에 꽂힌 비수들이었다.

그걸 뭐하러 꺼내왔어?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큰형이 앉으며 말했다.

“새끼..넌 그럴거 같았어 이게 그렇게 맘에 안드냐?”

저 소쿠리안에는 내가 알고있는 큰형이 아니라 어머니가 알고있는 큰형이 있었다.
인간 이경수가 아닌 어머니가 만든 천재 이경수가 말이다.

“하~짜식 눈빛봐라 형 때려죽이겠네 자 봐라 내가 내 자랑하려고 가져왔나”

큰형이 소쿠리를 건네자 나는 소쿠리를 받아들고 안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이경수라는 이름이 적힌 시험지들 뿐이었다.

이거 봐서 뭐 어쩌자고?

내 말투는 이제 완전히 큰형과 한판 붙겠다는 식의 말투였다.
내가 큰형을 앞에두고 이럴수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이걸 가져온 큰형의 의도는 더 모르겠다.
큰형은 앉은채로 손을뻗어 베란다 창문을 열으며 날 보지도 않고 말했다.

“들쳐봐라”

큰형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가 스멀스멀 내게 다가오면서 나는 이경수라는 이름이 써져있는 시험지 몇 장를 들췄고 이내 중학교때 내손에서 멀어졌던 90점짜리 시험지를 찾을수 있었다.
이윤수, 정확히 세글자가 빛바랜 하얀색 시험지 오른편에 쓰여져 있었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난 내눈을 의심하고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시험지를 확인했다.
다음장 그 다음장에도 이윤수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믿었던 어머니의 보물은 큰형의 100점짜리 시험지가 아닌 나의 보잘것없는 시험지들이었다.

“어머니가 말 안해주신거 같아서 내가 말해준거야 임마”

목이메여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아니 차라리 목이메이는게 나을수도 있었다.
이상태로는 도저히 무슨말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넌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착한 녀석인데 도저히 너 대학은 보낼 형편이 안될거같다고 하시더라 대학 보내주고 싶었는데 도저히 형편이 안되겠다고..그러다 니 담임이 집에 와서는 대뜸 윤수 대학좀 보내야겠다고 그러더라 그거듣고 어머니가 그날 엄청 우셨어 공부 잘하는 막내아들 대학은 보내야겠는데 돈은없지..그때 니 담임이 그러더라 일단 대학 등록금은 자기가 내겠다고 어머니가 그거듣고 니 담임한테 절을 하시더라 니가 낸 등록금은 원래 등록금의 절반도 못미쳤던거 알아? 그거 나머지 다 어머니가 갚으신거야 동네에 이집저집 다니시면서 바느질해주시고 너희 고등학교에서 무료로 일하시고 해서 갚은거라고 멍청한새끼야 어머니가 니 안알아준게 그렇게 서운하디? 오늘내일 하시는데 시간내서 오는것도 힘들어? 넌 참..뭐야? 우냐?”


벽을 쌓고 있던건 어머니가 아닌 나였다.
나도 모르게 쌓고 있던 벽이 한꺼번에 내게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형들과 나를 분리시키려 했던 거대하고 오래된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벽이 있던곳엔 길게 드리운 그림자와 어머니가 서있던 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서 쌓았는지도 모르는 그리고 어린날 그토록 원망했던 벽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난 비로소 막 태어난 갓난아이처럼 목놓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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