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에 나타나는 "박정희 향수"의 본질은 박정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세대들에게 정치 지도자는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전쟁이후 피비린내나는 조국의 땅덩어리 위에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야 했던 세대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덕목은
강인함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래서 노년들이 그리워 하는 것은 박정희가 아니라
그냥 강인한 정치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강인함은 무엇일까?
추정컨데 강단있는 모습 그것이 본질일 것이다.
이명박이 그 세대의 호감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불도저라는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밀어 붙이는
그의 강단있는 모습이었다.
노년층의 DNA에 새겨진 지도자는 그냥 강한사람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강한 지도자에 잘 부합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왜 노무현을 기억속에 새겨두고 시시 때때로 그리워 하는걸까?
그가 민주대한민국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노무현을 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노무현 같은 민주주의 지도자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던 이재명이던 박원순이던 그 조건에 부합하면 그만이다.
우리가 그러하듯 그들이 원하는 건 박정희가 아니라 강인한 정치인이다.
강인함 이란 것은 앞에서 말한 "강단"이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의 가치를 펼쳐 나가는 사람을 바라는 것 뿐이다.
지금 문재인의 모습은 강인함을 준다.
그 세대가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자신의 집권정책을
자신있게 피력하고 있다.
노년세대는 정치인의 그런 강인한 모습에서 안정감이라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와 강인함은 절대 배치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민주주의의 철학과 가치를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것에서 보이는 모습.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면 외연 확장은 자연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