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06년 여름 쯤, 엄청 더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를 하던 저는 상병을 달고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근데 군사지역이라기보다는, 좀 한가한 근무지라 바람도 쐬면서 민간인도 보면서 ㅎㅎ; 심심~한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강 근처였는데, 갑자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 척 봐도 예순 넘으시는 - 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길을 올라오시는 겁니다.
근무를 서던 저는 항상 하듯이 여기는 군사지역 어쩌구를 나불거렸습니다.
스님은 껄껄껄 웃으시며 저를 향해 합장을 하셨고, 저 역시 집에서 불교를 믿는 터라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여 합장을 했습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자네는 부모님 따라 절에 좀 다닌 모냥이구만" 이라며 웃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합장을 했는데 다른 쫄따구들은 그냥 멍때리고 있었거든요.
"후~ 날도 더우니 좀 쉬어갑세" 라고 하시며 그 스님은 큰 나무 아래 그늘에 바위에 걸터앉으셨습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닌 수준이었기에 저는 무심코 물어보았습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께서 저를 보면서 "글쎄, 발길닿는데로 돌아다니다 보니.."
하면서 저를 빤히 보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냅다 물으시는 말이 "자네는 태생이 어딘지 알고 있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생각없이 "고향이 경북 고령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저 자신에 관한건 말하기 꺼리는 편이나, 스님의 풍기는 포스도 그랬고, 심심하던 차라 말벗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차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하시는 말이,
"고향 말고 태생 말일세... 자네에 대해 말해준 이가 없던가?"
라고 저를 빤히 바라보시며 질문하시더군요.
저는 무슨 말일지 이해를 전혀 못 해서, 되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자네같은 사람은 처음 보네. 정말 자네를 보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나? 어릴 때라도 말이야."
저는 점점 이상한 기분에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어릴때 어머님이 아시는 보살님이 뭐라고 하긴 했는데, 기억은 전혀 안 납니다만."
스님께서는 혀를 차면서,
"자네 같은 업을 지닌 사람은 처음 본다네. 자네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지 싶구만."
뭐 점쟁이들이나 사이비 --;; 들이 항상 하는 말 아니었겠습니까.
저는 물론 그리 순탄한 루트를 밟아온 건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사람이라 -_-;; 대게 넘겨짚어 하는 말이거니 싶어서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라고 얼버무렸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스님이 발길을 다시 옮기시면서 제게 한마디 하시더군요.
"자네 지금 인생은 빚지고 있는 걸세. 부디 삶을 소중히 하게. 그게 빚을 갚는 길이야.
지금 자네는 마치 날카로운 작두 위에 있는 것과 비슷해. 부디 조심하게나.
피를 볼 일이 많을 것인데, 자네가 별 탈 없었으면 좋겠네. 허어..."
라고 하면서 합장하시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가셨습니다.
저는 그 때는 그걸 웃어넘기고 그냥 말았습니다.
그 뒤로 1개월 여가 지났고, 저는 그 근무지에서 (근무 중 사고로) 총을 맞고 말았습니다-_-;;
정말 엄청난 소리가 지나간 다음,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하더군요;;
헬기로 이송된 후, 대수술을 거쳐서 저는 결국 폐 한쪽을 들어냈지만, 살아남았습니다.
몇 주가 지나, 이제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된 저는 침상에 앉아서 문득 그 스님을 떠올렸습니다.
그 말씀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이죠.
병원에 있는 내내 그 생각이 저를 지배했고, 저는 재활을 앞당겨 그 해가 가기 전에 수통에서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퇴원해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어머님을 붙들고 그 보살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스님과의 일을 말씀드리고 이게 무슨 말인지 여쭈어 보았더니 보살님께서 한숨 쉬시면서 하시는 말이,
"하이고.. 니는 니 어무이가 매 해마다 니 때문에 절에 가서 108배하고 여기저기 다님서 치성드리는거 몬봤나? 니는 곱게 살 명은 아니라
카이.. 솔직히 내는 니가 지금 멀쩡히 돌아댕기는게 니 어무이 덕 때문이라고 생각한데이"
여기까지는 별 상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충격이었습니다.
"니는 살이 끼었다고 말 안 하드나..? 니 명줄은 물론이고 니 주위에 있는 사람도 니랑 같이 있는거 만으로도 큰일날 수 있다카이... 에휴..
어짜긋노 니 팔잔가 보다.."
충격에 저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온 뒤 심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등 별일을 다 겪었습니다.
어느 날 병실에 어머니가 와서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이고.. 니가 다섯살때 열병으로 혼수상태 되었을 때 다 포기하라 카드만...
그 개고생을 해서 살렸더니 이게 무슨 일이고..."
전 어머님을 다독거리면서 한참을 그냥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이윽고 정신을 차리시고 하시는 말씀이란,
제가 어릴 때 큰 열병을 앓을 때 그 보살님이 말씀하셨었다더군요. 그 아이를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그 아이는 살아나도 쉬운 삶을 살기는 어려울 거다. 항상 고난이 뒤따를 거고, 주위 사람도 불행이 뒤따를 수도 있다. 그만한 업보를 지닌 애가 쉽사리 그 명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전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뒤로도 수많은 사고가 뒤따랐지만 수많은 흉터와 수술을 거치며 살아났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퇴원했고, 그 뒤로 자주 절에 가서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서 사람과의 만남은 여전히 꺼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림사' 에서 절을 드리고 나오다 근무 중에 만났던 그 스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그 스님은 저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달려 오시더니 덥썩 제 손을 잡고는,
"자네 무탈한 걸 보니 다행이야. 부디 자신의 명을 탓하지 말고, 삶을 소중히 하게.
그게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법이야. 부디 건강하게나."
라고 하시며 나무아미타불을 읊으시며 빠르게 멀어져 가셨습니다.
저는 어안이벙벙해서 그 스님을 찾아 뒤쫒았지만 어느새 그 스님이 사라지셨고, 저는 지나가던 아무 스님을 잡고 그 스님의 외모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그 스님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설명을 들으시던 스님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어디서 그 분을 뵈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 할 뻔 했습니다.
"그 스님은 제 은사 스님이신 XX 스님이신데, 두 해 전에 입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