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달력은 어느새 7월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지구 가이드 일을 하기로 한 것도 8월까지였으므로 이제 곧 작별의 시간이다.
나는 지금 ‘마스’씨를 기다리고 있다.
마스 씨는 내 고용주이자 지구 휴양지의 책임자다. 처음부터 휴양지를 세울 계획은 아니었단다. 휴가차 지구에 여행 왔다가 한눈에 반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외계인들아, 이리 와봐. 이 행성은 공기도 좋고 물도 맑고 예쁜데다가, 여기 사는 애들은 손가락이 열 개나 된다? 열변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눈이 시릴 만큼 파아란 피부, 보라색 콧수염이 눈에 띄는 멋쟁이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덕분에 지구 휴양지 곳곳은 14~16세기 서유럽 냄새를 담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구 생명체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대가 뒤죽박죽 섞이기도 한다. 이, 중세의 것도 아닌 현재의 것도 아닌 애매한 종이 달력처럼.
기다림에 지친 나는 하릴없이 달력으로 눈길을 돌렸다. 날짜마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이 동그라미, 무슨 의미일까? 뒷장을 넘겨서 8월로 넘어가보니 20에 노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노란색은 마스 씨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니까 그날, 20일에 분명히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
8월 20일……혹시 결혼기념일?
마스 씨의 이번 우주행 목적은 사업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향행성에 두고 온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걸 보면 결혼기념일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마스 씨의 고향행성엔 결혼한 날을 기념하는 풍습이 없다.
그렇담 설마, 내 퇴사날인 거야? 날짜를 카운트할 정도로 그렇게 끔찍했어? 우주 출장이 잦아서 실제로 일한 시간은 3개월 밖에 안 되는데, 설마 그럴 리가.
마스 씨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 공항으로 와달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서둘러 지구 북부 공항으로 향했다. 평소에 마스 씨가 애용하는 공항이었으니 이번에도 이쪽으로 돌아올 터였다.
공항은 외계인들과 그들의 가이드들로 북적거렸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외계어, 공용어, 등등 수많은 언어가 한데 뒤섞여 시끄러웠다. 골이 아플 정도로. 그때 소형 우주선에서 내리던 외계인 아가씨 몇 명이 나를 보며 숙덕거렸다.
“저 동양 가이드 어때? 귀엽지?”
그 중에 한명은 나하고 안면이 있는 주피터 양이었다. 그녀는 마스 씨의 조카로, 동물을 사랑하는 아가씨였다. 얼마나 사랑했느냐면, 관찰하고, 사육하고, 음식으로 먹다가 끝내는 자기 방을 동물 박제로 꽉 채웠다. 삼촌인 마스 씨가 휴양지를 제 취향에 맞춰 르네상스 풍으로 꾸민 것처럼.
그녀는 토끼털로 만든 코트 깃을 쓰다듬으면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모자를 들어 올리며 의례적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주피터 양.
“삼촌이랑 계약이 곧 끝난다고 했던가요?” “8월까지는 마스 씨 소속이에요.” “계약 끝나면 다시 가이드 일 할 생각 없어요? 겨울에.” “전에 겨울이 추워서 싫어한다고 하셔잖아요?”
그녀가 보라색 입술을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놀러 가자는 거죠. 눈도 없고, 춥지도 않은. 이를테면……내 고향이라든가.”
“제가 가난해서 우주 백신을 맞을 형편이 못되거든요. 주피터 양도 아시죠? 지구인이 우주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하단 거.”
“비용은 내가 전부 부담할게요.”
너는 몸만 와, 라는 뜻인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의식중에 이마를 훔치는 나를, 주피터 양이 눈을 빛내며 쳐다봤다. 외계인은 땀을 흘리지 않으니 신기할 법도 했다. 그녀는 종종 이런 식의 눈빛을 보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보는 아이처럼. 약간의 욕망도 함께 섞어서.
나는 새삼스레 그녀의 복장을 확인했다. 털 코트에 털 부츠. 그녀의 일행도 한명은 자켓, 한명은 비키니를 입고 있다. 취향에 따라 다른 옷차림, 공통점은 계절을 모른다는 것. 휴양지나 공항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도록 설정 되어 있다고는 하나, 바깥은 햇빛에 아스팔트가 지글거릴 정도로 더웠다.
이들은 계절을 모른다. 외계인은 더위도 추위도 느끼지 않는다. 주피터 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겨울이 추워서 싫다는 말은
“자기가 울면 내 마음이 찢어져. 나도 슬퍼서 울 것 같아”
라고 공감 없이 입만 떠들어대는 사이코패스의 말과 비슷하다. 그녀는 그냥 지구의 겨울이 싫을 뿐이다. 이 집에서 살고 싶고, 저 집에선 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그저 취향의 문제다. 지금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고.
주피터 양을 겨우 보내고 나자마자 위잉……, 묵직한 진동음이 느껴졌다. 지진인가 싶었지만 흔들리는 느낌은 발밑이 아닌 머리 위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머리털이 들고 일어났다. 하늘을 보니, 지구 북부 공항의 상공을 모두 덮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선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북부 공항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주선이 햇빛을 모두 차단하는 바람에 삽시간에 밤이 찾아왔다. 공항에 나타난 우주선은 먹이를 사냥하려고 거미줄 끝에 매달려, 바싹 엎드린 거미의 모양새와 비슷했다.
우주선은 보통, 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비행한다. 21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외계인과 우주선은 미지의 영역이었을 정도로. ‘미스테리’로 분류되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그 대단한 우주선이 땅과 하늘을 윙윙 울려대고 있다. 얼마나 거대한 우주선인지 짐작이 될까.
항공 직원들이 부랴부랴 게이트로 달려갔다. 시선이 모두 쏠린 걸 보니, 거대 우주선의 출현은 지구인 뿐 아니라 외계인들도 놀라게 만들었나 보다. 공항에 모인 모두가 하늘을 뒤덮은 우주선의 밑바닥를 올려다보고 있다.
조금 뒤에 그 우주선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뜻밖에도 마스 씨였다.
“와……이게 다 뭐예요?”
나는 인사도 잊고 질문부터 던졌다.
“말했잖나,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볼 마음이 생겼다고.” “저렇게 대단한 놈을 끌고 오실 줄은…….” “간 김에 챙겨 온 거지. 지구엔 없는 물건들이 많으니까.”
“저거, 꼭 청소기처럼 생겼어요. 윙윙 거리는 소리도 그렇고.”
내 엉뚱한 감상평에, 마스 씨가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다.
지구가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단 소문은 나도 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있긴 할까. 각종 매체에서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대는데. 우주진출에 성공한 지구인 사업가의 사례나, 행성 간에 물건처럼 거래되고 있는 지구인들의 소식 같은 건 흔한 소재거리였다.
외계인의 출현은 환영과, 동시에 분노를 샀다. 동전의 양면처럼. 정치계의 누구씨는, 지구인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나 불법행위가 우주 사회 진출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했다.
과거에 흑인을 노예로 삼아서 강제로 팔아 넘겼듯,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상대로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는데. 지구 연합은 그것을 눈감아 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구 휴양지 근처에 재개발 명목으로 상가와 주택을 철거해 관광타운을 건설하기도 했다. 백년 역사를 품은 건물이 부숴지고 그 자리에 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쇼핑센터가 세워졌다. 인류는 날벌레가 불빛에 몰려들 듯, 외계인 휴양지 주변으로 까맣게 몰려들었다.
나도 그 날벌레 중에 한 마리였고. 다른 사람도 아닌 마스 씨의 밑에서 일하게 됐으니까 줄을 잡아도, 금동앗줄을 잡은 셈이었다.
“이 행성 저 행성으로 입소문이 나서 티켓이 부족할 지경이라네.” “인기가 좋나 보네요.”
“영원히 지구에서 살고 싶단 말이 나올 정도야. 노후를 보내기 좋다 이거지. 자네 같은 가이드들의 영향이 특히 커. 전 우주를 통틀어 자네 지구인들만큼 정성을 다해 서비스하는 종족이 없거든. 우리는 그것에 깊게 감명 받았지.”
지구인 사이에 외계인 가이드 일이 인기를 끈 것은 10년전 부터다. 마스 씨의 휴양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고. 처음 가이드 일을 원한 건 젊은 층이었다. 높은 보수의 이색 아르바이트로 유명하던 것이, 외계인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이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이드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전국민도 아니고 전세계인이 외계인 수발을 자청하고 드는 것이다.
“듣자하니 계약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간다더군.”
나는 멈춰 서서 마스 씨의 인자한 미소를 마주 보았다.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한국입니다.” “가이드 일을 계속 할 의향이 없나? 꼭 내 밑이 아니어도 자리는 많을 텐데.”
보나마나 주피터 양의 부탁을 받고 하는 질문일 거다. 나는 그녀가 싫었다. 그녀의 방 한가득 들어찬 동물 박제들 사이에 내 머리통이 박제 되어 걸려 있는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젓자, 마스 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선택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군.”
그날 마스 씨는 그리스 여행을 부탁했다. 나는 내가 타고 온 차를 공항 주차장에 두고, 마스 씨의 소형 우주선을 운전해 그리스로 향했다. 그리스에서 일주일을 보낸 그는, 뉴욕으로 가주길 부탁했다. 그렇게 전세계 각지에 머물렀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휴양지가 세워질 장소들을 둘러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행은 딱 2주 하고도 나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휴양지로 돌아오자마자 마스 씨는 급한 연락을 받고 나에게 출장 준비를 부탁했다. 짐이라고 해봤자, 막 도착해서 풀지도 못했으니 그대로 들려서 보내면 될 일이었다. 마스 씨는 떠나기 전에 나를 사무실로 불러냈다. 보나마나 계약 때문이겠지.
나는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마스 씨가 오는 중이라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엔 못 보던 물건이 있었다. 세계 지도였다. 한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로 큰 지도였는데, 뜯어서 쓰는 종이 달력을 선호하는 마스 씨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이었다. 지도 곳곳엔 노란색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가 지구로 돌아오던 날, 달력에서 본 것처럼.
마스 씨는 급한 사람처럼 문을 벌컥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하네.”
그는 말을 길게 끌지 않고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 시대에 현금으로 보수를 지불하다니, 과연 마스 씨 다운 행동이었다.
“이제라도 결정을 바꾸면 좋을 텐데.” “주피터 양 때문에 그러시죠?”
“거짓말도 못하겠군. 그녀석이 부탁한 게 맞아. 자넬 데려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부탁했어. 지구인 가이드를 동행한 우주행이, 이젠 드문 일도 아니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번 출장은 어디로 가십니까? 짐을 복잡하게 챙길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여벌만 몇 벌 챙겼습니다만…….”
난생처음 들어보는 특이한 행성의 이름을 댈 줄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익숙한 나라 이름이었다.
“프랑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마스 씨는 늘 그렇듯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보고 듣는 것은 마스 씨 밑에서 일했을 때와 비슷했다. 한국이라고 외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까. 아직 휴양지는 건설되지 않았지만, 번화가에 나가면 외계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파아란 피부에, 인간과 생김새가 비슷한 외계 생명체들이 계절감각을 잃은 옷을 입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려고 구인광고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보이는 거라곤 외계인 가이드 일 뿐이었다.
숙식제공, 우주여행을 떠나보세요, 라는 문구가 삽입된 광고가 꽤 눈에 띄었다. 대상은 전연령.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형제나 가족 단위로 채용하는 곳도 있었다.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우주여행이라고? 돌아올 수 있기나 할까? 나를 호시탐탐 노리던 주피터 양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녀 방에 전시된 동물 박제들도. 나는 답답함을 못 이겨 세상 밖으로 나갔다. 마스 씨가 준 돈으로 세계 여행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프랑스행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외계 문명에 완전히 물들기 전의 프랑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문제가 일어났다. 공항은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내 바로 앞에서 어떤 프랑스인 부부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아버렸다.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웅성대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여자가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뉴스 채널을 보고 있었다.
프랑스의 대도시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도시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만큼 거대한 우주선, 마스 씨의 우주선이었다. 도시의 하늘 위로 다가온 그림자는 곧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석에 철가루가 딸려가는 것처럼 도시의 모든 것- 콘크리트, 나무, 자동차, 사람- 가릴 것 없이 ‘도시 전체’가 거대 우주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저거, 꼭 청소기처럼 생겼네요”하고 지껄였던 내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것들을 지구까지 끌고 온 마스 씨, 그는 내 말을 듣고 빙긋 웃었드랬다.
“세상에……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영상은 그곳에서 끊어졌다. 촬영자의 단말마와 함께. 나는 불현듯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마스 씨의 달력에 노랗게 동그라미 표시된 날짜와 같았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는 처음부터 이것을 계획하고 날짜를 세고 있었던 거였어. 그가 고안해낸 사업 확장 계획은 다름 아닌 지구 재개발 계획이었던 거다.
8월 20일, 프랑스의 도시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버튼을 눌러서 리셋한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나는 마스 씨의 사무실에서 본 지도를 떠올렸다. 지구 곳곳, 대륙마다, 주요 도시마다 노란색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노란색은 마스 씨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다. 프랑스의 일은 지구 재개발의 첫걸음, 겨우 첫 번째 걸음일 뿐이었다.
공항 바닥에 주저앉은 프랑스 부부의 얼굴 위로 휴양지 주변,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주민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때 지구 연합에서 뭐라고 했었지. 우주사회 진입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희생입니다, 였던가.
프랑스가 사라진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이 들릴 때마다 마스 씨의 우주선이 도시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전파를 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오지로 떠났지만 지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스스로 ‘노아의 방주’라 부르는 우주수송선이 나타나 지구인을 실어가기 시작했다. 자진해서 수송선에 올라타는 사람도 있었고, 강제로 끌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지구에 남아도, 우주로 끌려가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제 인간은 희귀종이 될 것이다. 서식지에선 찾아볼 수 없게 된, 고향을 잃은 멸종 동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