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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과장 임옥현에게 생긴 일
게시물ID : sisa_5333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납자2호
추천 : 5
조회수 : 71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6/28 22:23:37


http://www.hani.co.kr/arti/SERIES/397/644486.html

임옥현씨가 정말 방화미수범인지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진보단체 회원인 것만으로 이미 여론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2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천 산책길에서 만난 임옥현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삼성 과장 임옥현한테 생긴 일

▶ 어느 평범한 대기업의 과장이 있었습니다. 남몰래 진보단체에 가입한 것 빼고는 전도유망한 대기업 과장의 삶, 그것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국정원장 집 방화미수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주장해도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순간, 그의 삶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그의 죄는 진보단체에 가입한 순간부터 운명처럼 정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옥현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2013년 5월17일 석가탄신일을 맞은 휴일 새벽이었다. 잠에 들기 직전 임옥현(36)씨는 목이 말랐다. 그는 서울 대림동의 한 연립주택에 혼자 살았다. 물을 사기 위해 집 앞 편의점으로 나섰다. 누군가 임씨의 이름을 뒤에서 불렀다. “임옥현씨지요?” 뒤를 돌아보자마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임씨의 허리춤을 움켜쥐었다. 임씨는 경찰차에 실렸다. 머릿속이 멍했다.

어느 순간 서울 관악경찰서 강력5팀 조사실에 임씨는 앉아 있었다. “뭣 때문에 잡혀왔는지 아시죠?” 조사실의 형사가 물었다. 임씨는 생각했다. ‘내가 가입한 단체 때문에 그런가?’ 그는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회원이었다. 그러나 민권연대는 불법단체가 아니다. “(왜 잡혀왔는지) 모르겠는데요.” 임씨가 답했다. 형사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집 방화미수 혐의로 오게 된 거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뭔가 사건이 조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보단체를 옥죄기 위해 사법당국은 늘 엉뚱한 궁리를 한다고 의심받아 왔다. 경찰은 임씨 전화기를 압수했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은 처음에는 기각됐지만 경찰은 보강수사 뒤 재신청했고 임씨는 7월8일 구속됐다. 삼성에스디에스(SDS) 과장으로 재직하며 잘나가던 직장인인 임씨는 졸지에 ‘국정원장 테러범’으로 몰렸다. 그는 이전에 어떠한 전과 경력도 없었다.

지난해 5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집 마당 떨어진 화염병 두 개 
경찰은 폐회로티브이 역추적해 
삼성 과장 임옥현씨 범인 지목 
유력 증거는 그의 민권연대 활동 

화가 나서 얼굴 빨개지면 
‘거봐요, 얼굴 빨개지잖아요’ 
전남대 졸업했다고 추궁하고 
차도 없고 월세 산다고 하면 
‘삼성 다니면서 왜 차도 없냐’

“증거 없다” 상처뿐인 1심 무죄 판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월5일 아침 6시20분께 서울 관악구 남현동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집 앞마당에 화염병 두개가 날아들었다. 화염병은 정원수에 걸려 땅에 떨어졌고 다행히 불은 번지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은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터라 범행은 좌파단체의 소행으로 의심됐다. 경찰은 5월16일 용의자를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붙잡힌 용의자는 30대 남성이었다. 경찰의 설명은 이러했다.

경찰은 원 전 원장 집 앞부터 ‘폐회로텔레비전 역추적’을 벌였다. 추적 결과, 검은색 옷차림의 용의자는 5월5일 새벽 4시9분께 대림동 자택에서 나와 4㎞가량을 걸어 영등포시장 김안과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흑석동 방향 640번 버스를 탄 것으로 파악됐다. 흑석동 명수대 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린 용의자는 5524번 버스를 갈아타고 사당동 총신대입구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그 자리에서 몇분 기다린 뒤 5524번 버스를 다시 탄 용의자는 사당동 우체국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이후 2㎞가량을 걸어 원 전 원장 집에 도착한 용의자는 화염병을 던지고 달아났다.

경찰은 임씨가 민권연대 회원이라고 밝혔다. 마침 민권연대는 원 전 원장 집 앞에서 여러차례 시위를 벌인 전력이 있어 임씨가 용의자라는 경찰의 설명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임씨는 ‘5월4일 밤부터 5일 오후 1시께까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엄연히 확보된 폐회로 영상과 임씨가 민권연대 회원이라는 것 때문에 대체로 임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임씨가 삼성에 다니고 있다는, 경찰이 발표하지도 않은 정보까지 알아내어 보도했다.

그 뒤 이 사건은 잊혀졌다. 임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재판에만 집중했다. 임씨를 강력한 용의자로 확정하듯 보도한 언론들도 재판 과정에는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뜻밖의 재판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4형사부(재판장 김용관)는 지난 4월25일 “(경찰이 제출한 폐회로텔레비전 자료 등은) 증거 능력이 없고, (그외 정황 증거들도) 임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옥현씨는 출근을 다시 할 수 있었지만 회사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무죄 판결을 받았어도 이전의 평범한 대기업 과장으로 살기는 어려워졌다. 구속된 탓에 출근을 못해 지난해 근무평점은 0점을 받았다. 임씨는 결국 지난달 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검찰이 항소를 했고 항소심 과정에서 임씨의 혐의를 입증할 추가 증거가 제출될 수도 있기에 현재로서는 임씨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임씨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입은 피해를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겨레>는 임씨를 27일 만났다. 그는 말투가 부드럽고 차분했다.

임씨 집으로 갈수록 영상은 흐릿

“정말 답답했어요. 저는 (범인이) 아닌데 경찰은 계속 ‘본인이시죠?’라고 묻고. 열받더라고요. 제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지니까 경찰이 ‘거봐요. 얼굴 빨개지잖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운동권 성향이 강한) 전남대를 졸업했는데 그걸 갖고 또 계속 추궁하고. ‘그쪽 세계에서는 (시위 등) 이런 거 하고 나면 영웅될 텐데 (범행을) 인정하라’고 말했어요. 제가 차도 없고 월세 살고 있거든요. ‘삼성 다니는데 왜 차도 안 사고 월세 살고 있냐’며 이런 거도 수상하게 여기고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임씨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1996년 전남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전남대는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있는 편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학생운동에 투신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한 뒤 민권연대에 가입해 활동했다.

임씨는 민권연대에 대해 ‘가끔 모여 시사토론을 하거나 통일 캠페인 등을 하는 회원수 200여명 정도의 작은 단체’라고 설명했다. 삼성에는 2010년 8월 입사했다. 자신이 어떤 시민단체의 회원인지 회사에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민권연대 동료들이 원 전 원장 집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사진 등을 보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임씨는 바빠서 시위에는 동참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더라도 회사에는 알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임씨의 혐의와 그가 진보단체 회원인 것을 얼마 안 가 알아챘다.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을 때만 해도 저는 회사에서는 이런 상황을 모를 줄 알았어요. 그런데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출근해보니 이미 회사에서 다 알고 있었어요. 인사팀장이 찾아오더니 이것저것 다 물어보더군요. 저는 ‘조심히 회사 다니겠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저는 결국 구속됐고 제 삶은 망가져버렸어요.”

임옥현씨는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경찰의 허술한 수사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속상하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과잉수사가 벌어졌고 구속영장이 남발되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공개된 수사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주장에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경찰이 확보해 법원에 제출한 50여개의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어느 곳에서도 용의자의 얼굴이 정확히 확인된 것이 없었다. 경찰은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이 폐회로 영상에 찍혔다’고 언론에 설명한 바 있다. 경찰의 설명은 (원세훈 전 원장 거주지인) 남현동에서 영등포역 인근까지의 폐회로 영상을 볼 때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선명한 화질의 영상이 제출됐다.

하지만 영등포역 인근에서 (임씨의 거주지인) 대림동까지의 영상은 그렇지 못했다. 재판정에서 공개된 영상에는 용의자의 형체가 검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저화질 영상들이 수두룩했다. 그냥 검은색 옷차림의 사람들을 우격다짐으로 임씨로 추정해 영상을 확보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영상들이 다수였다.

재판정에서 폐회로 영상을 상영하는 검사에게 판사가 “영상 속의 누가 임옥현씨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영상 속 인물들에 대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임씨라고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임씨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된 임씨의 컴퓨터 가방, 장갑, 운동화 등 어느 곳에서도 인화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길에 검은색 옷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대충 검은색 옷만 보이면 경찰은 다 저라고 억지를 부린 거예요.” 임씨는 경찰이 끼워맞추기 수사를 했다고 생각한다.

석연치 않은 검경의 수사 내용은 더 있다. 혐의 입증에 유리한 폐회로 영상만 골라 제출하고 불리할 수 있는 영상은 제출하지 않은 것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예를 들어 검경은 ‘임씨가 신길동 성락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우리은행을 끼고 오른편으로 꺾어서 걸어갔다’고 재판정에서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오른편으로 꺾지 않고 직진했을 경우 찍힐 수 있는 폐회로 영상도 제출해 그쪽으로는 지나가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검경은 제출하지 못했다.

임씨의 변호인은 “‘폐회로텔레비전을 역추적해보니 용의자의 이동경로가 임씨의 집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편견을 가진 경찰이 선택적으로 수집한 영상에 기인한 판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원본이라고 주장한 폐회로 영상 일부가 사본인 것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증거능력을 다툴 때 원본과 사본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사본은 수사기관의 조작과 편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영상의 경우 기록된 촬영 날짜가 범행 추정 날짜와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단순 오류일 수도 있지만 조작 의혹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경찰은 법원에 임씨의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허가서를 발급받으면서 ‘피의자 중 한명이 휴대전화로 전화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신사실 확인 결과 범행 추정 시각에 흑석동, 사당동, 남현동 어디서도 임씨가 통화를 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제출하지 않는 의문의 공문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임씨를 특정해서 추적한 게 아니라 도심 곳곳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을 원 전 원장 집부터 역추적해보니 임씨의 집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씨 쪽은 민권연대 회원의 거주지를 먼저 파악해 표적수사를 한 것으로 의심한다. 경찰이 통신회사에 임씨가 거주한 연립주택 이웃 십여명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의심스러운 구석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경찰이 임씨 거주지에서 제일 가까운 ㄱ업체의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확보하고 임씨를 특정하게 된 것은 2013년 5월13일로 보인다. 5월12일 ㄱ업체 인근 ㄴ업체의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경찰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5월13일 늦은 오후인 5시56분 영등포구청의 협조를 받아 임씨의 연립주택 거주자 전원의 신원을 파악한다. 그런데 경찰이 통신회사로부터 연립주택 거주자의 전화번호 확인 통보를 받은 날짜도 5월13일이다.

오후 늦게 거주자 신원을 파악한 경찰이 통신회사에 공문을 보내고 운 좋게 퇴근하기 직전의 통신회사 직원이 공문을 받아 그날 바로 경찰에 답변을 보내온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임씨를 미리 용의자로 특정해 접근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른 기간에 경찰이 임씨의 전화번호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경찰은 통신회사에 ‘연립주택 거주자 통신 정보 확인 협조공문’을 보낸 시각과 공문 원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임씨는 경찰이 자신을 범인으로 의심해 수사를 할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증거로 자신이 구속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폐회로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저라고 특정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어요. 만약 제가 진보단체 회원이 아니었다면, 방화도 아니고 방화 미수에 그친 사건의 피해자가 원세훈 국정원장이 아니었다면 과연 구속영장이 발부됐을까요.”

임씨는 보수언론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이 자신의 직장을 공개해버리는 바람에 구속되기 이전부터 이미 회사는 임씨에 대한 관리에 들어갔다. 무죄 판결은 ‘상처투성이 승리’였을 뿐이었다.

지난해 종편 방송사들은 용의자들의 모습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입수해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재판정에 출석한 폐회로 영상 소유주들은 ‘경찰 외에는 영상을 건네준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보수언론에 영상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보도라고 임씨는 생각한다.

임씨는 이전의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힘들것 같아요. 제가 무죄 판결 받아도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경찰이 혐의 입증에 실패한 결과’로 생각할 거예요. 제가 민권연대 회원이기 때문에 이미 낙인이 찍힌 것이죠. 저의 죄는 진보단체에 가입한 순간부터 운명이 지워진 것일지도 몰라요. 제발 진짜 범인이 나타나 자백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너무 괴롭습니다.”

검찰은 항소했다. 임씨의 항소심 재판은 다음달 1일 시작된다. 임씨를 수사한 경찰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에 찍힌 사람은 임씨가 맞다고 여전히 확신한다. 영상 속 인물이 흐릿하게 보이더라도 수사 전문가들은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통화 내역 조회가 아닌 단순 전화번호 확인은 법원의 영장 없이도 협조공문만 보내면 수시간 만에 경찰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2013년 5월13일) 긴급하게 통신 조회가 가능했다. 임씨를 미리부터 특정하고 수사를 시작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허재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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