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유 들어와보니 제대로 사고 하나가 터졌네요.
저는 게임업계 종사자로서,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커뮤니티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제가 느낀 점들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요.
일단, 저는 다른 오유저 분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금번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클린유저 단톡방의 존재 및 그 곳에서 이뤄진 부적절한 채팅내용 공개인데요.
클린유저+운영팀장(이후부터 운영진이라 통칭하겠습니다)의 가장 큰 잘못은 유저들을 욕한 게 아닙니다.
어이 없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들킨 게 가장 큰 잘못이에요.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던데 하는 식상한 소릴 할 생각은 아닙니다.
수많은 커뮤니티를 운영해본 저 역시도 제가 운영하던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유저들을 욕하곤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도를 몰라준다는 이유로, 때로는 말도 안되는 걸로 태클을 건다는 이유로, 때로는 왜 자꾸 얘네들은 불가능한 사실을 가지고 떼를 쓰냔 이유로.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수만 명, 수십만 명(제가 운영하던 커뮤니티 중 사이즈가 큰 곳은 일간 방문자가 수십만에 달할 정도로 컸습니다)의 니즈를 모두 맞춰줄 수가 없기에, 그들이 하는 말들이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에 대해선 저도 욕을 할 때가 있고, 그 대상이 유저가 될 때도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건 비단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것에는 항상 하나의 대원칙이 존재했습니다. 욕을 하더라도 직원들끼리 담배 한 대 피며 구두로 이야기할 뿐, 기록이 남을 수 있을 만한 상황에서는 어떤 경우라 해도 유저의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연예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우리는 연예인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는 지인이 아닌 이상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알 뿐입니다. TV로는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나오는 사람이라면 사생활이 어떻든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기 마련이죠. 때때로 이런 사람들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폭로되거나 하면 우리는 큰 실망을 하곤 합니다.
제가 오유 운영진에 대해 '어? 이건 안 좋은데?' 라고 느끼게 된 건 불과 얼마전이었습니다.
제 아이디를 클릭해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전 고등학생 때부터 인포메일을 받아봤고, 수능이 끝난 후 대학생활을 하며 오유에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오유를 가입한 지 10년이 넘은, 소위 말하는 올드유저입니다. 하지만 오유에선 거진 눈팅만 했기에, 이용한 세월에 비해 글이나 댓글이 적고, 로그인 횟수 또한 적습니다. 방문횟수도 400회가 좀 넘는 정도밖에 안되죠.
그런데 6월 초순경 제 아이디가 차단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유는 광고 다중 아이디 사용이었구요. 근래 로그인조차 한 적이 없었던 저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워낙 로그인을 잘 하지 않는지라 차단당했다는 것도 차단당한 후 일주일 가량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었죠. 그래서 운영팀장 면담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늦은 시간인지라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메일이 하나 도착하더군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메일을 보낸 분이 운영자님인지 운영팀장님인지는 모릅니다만, 메일을 보낸 사람은 매니저 오유 라고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이 메일을 받은 다음 날 제 아이디의 차단이 해제되었습니다. 그 때 받은 쪽지가 아래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쪽지를 받은 후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 번째는, 규정에 대한 이행이 허술하다는 겁니다. 메일 내용에선 한 두번 겹친 걸로는 차단이 되지 않는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부운영규정 중 하나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PC방 등지에서 접속한다면 우연히 겹치는 경우가 있기에 한 두번 겹치는 걸로는 다중 아이디라 확정짓기 어렵고. 그래서 차단하지는 않는다 정도가 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추후 제가 받은 운영팀장님의 쪽지에서 알 수 있듯이, 저는 한 번 겹친 걸로 차단이 되었습니다. 아마 PC방에서 접속한 아이피가 문제가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제가 메일로 받은 내용과 쪽지로 받은 내용은 명백한 모순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메일을 보낸 이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쪽지를 보낸 운영팀장님은 명백하게 '권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겹치는 걸로는 차단하지 않는다 라는 규정이 있다면, 제가 아이디 차단을 당한 것은 명백한 운영진의 실수입니다. 하지만 쪽지에서는 그 실수에 대한 그 어떤 사과도 볼 수 없습니다. 마치 선심 쓰듯이 일단 해제는 해드릴께 뭐 이런 투죠. 유저를 정말 유저로서 생각한다면 유저들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저런 말투는 절대 사용해선 안됩니다. 운영팀장님이 원래 하시던 일이 커뮤니티 운영 관련이 아닌 이상, 커뮤니티 운영과 관련된 짬밥은 만으로 6년이 다 되어가는 제가 더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제 입장에선 저런 어휘의 사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유저가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불편을 겪었다면 일단 사과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게 커뮤니티 운영자의 기본입니다. 직접적으로 유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이렇다면 이는 애초에 유저를 유저로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판단밖에 들지 않습니다.
유저는 고객입니다. 설사 오유가 비영리 사이트라 하더라도 일단 유저는 고객입니다. 찾아주는 사람들이니까요. 고객 중에선 선한 고객도 있을 수 있고 블랙 컨슈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분탕질을 치는 유저들도 당연히 존재하죠. 하지만 어떤 유저가 있건,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꼭 두 가지 대원칙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가 유저를 제한하는 규정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두 번째가 운영진은 절대 자신의 감정 혹은 성향을 드러내선 안된다 입니다.
둘 다 이유는 유저들과 사사로이 엮여서 절대 좋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유저가 저건 사람이 아니라 기곈가 라고 느낄 정도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오유같이 커다란 커뮤니티에서는 말이죠.
저 두 가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운영진과 유저의 접점은 많아지고, 당연히 유저가 운영진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집니다. 그것은 운영진의 치부가 유저에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운영진의 치부가 드러난다는 것은 유저로 하여금 운영진에 대한 신뢰도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걸 의미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맛있고 서비스가 좋으면 당연히 손님은 좋은 인상을 남긴 채 돌아갑니다. 설사 사장이 '어휴 이 손놈 새끼들 귀찮은데 전부 그냥 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죠. 오유는 장사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봉사를 대입해봐도 똑같죠. 누군가 자원봉사를 왔는데 '어휴 이 장애인 새끼 드러워 죽겠네' 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는다면 누가 그 사람한테 봉사를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그게 봉사입니까?
결론은 간단합니다. 안 들키면 됩니다. 안 들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는 스스로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받은 쪽지처럼 권위적인 느낌이 대놓고 드러나게끔 하면 안되죠. 설사 정말 개똥같은 유저가 있어도, 얘 개똥같다는 발언은 들킬 가능성이 아예 없는 곳에서나 내뱉으세요. 이렇게 스스로를 자제하면 유저가 개입되는 상황에서의 객관성이라는 건 알아서 확립이 됩니다.
이전에도 클린유저에 대한 논란은 끝없이 있어왔습니다. 저는 그 원인의 중심에 저 쪽지에서 드러난 '권위의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권위의식. 막말로 가져도 됩니다. 운영진이 월급쟁이건 봉사하는 입장이건 다 똑같은 사람이고, 기분나쁠 수도, 욕을 할 수도, 권위 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대신, 드러내지 마세요. 유저와 1%라도 접점이 생길 수 있는 부분에서는 무조건 스스로를 자제하세요. 그러면 오늘같은 일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면 들키지도 않습니다. 오유인들이 궁예도 아니고 알 게 뭡니까.
온라인 게임 LOL은 GM들이 운영을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유저에 대한 불만이 없을까요? 유저 욕 안 할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안 드러내니까 모르잖아요? 이런 게 공사구분이라는 겁니다. 진심이건 아니건 적어도 유저가 조금이라도 관련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스스로를 자제하는 게 기본입니다. 단톡방은 클린 유저만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하셨나요? 단톡방 공개하신 분이 배신자처럼 느껴지세요? 클린 유저는 유저 아니랍니까? 이번 일의 핵심 원인은 단톡방이 공개된 게 아니라 운영진이 단톡방에서 우리 권위 의식 가지고 있어요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겁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라는 말이 참 쉬운 말 같아도 자세히 뜯어보면 수많은 행동 양식들을 필요로 하는 말입니다. 이런 행동 양식들이 지켜져야 신뢰라는 것도 생기는 겁니다. 권위의식 가지지 말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가질 사람은 가집니다. 들키지 말아라 라고 하는 게 훨씬 더 확실한 해결책이죠. 유저들은 운영진이 어떤 사람이냐는 건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관심이 훨씬 많아요. 회사 가보세요. 사적으로 친밀한 사람이 아닌 이상, 회사 구성원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관심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죠. 그래서 우리는 회사 가서 가급적 여러가지 행동들을 자제합니다. 부장이 병신이라고 생각해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아요. 내가 부장을 병신이라고 생각하는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제하며 객관적인 행동을 하려 하죠. 똑같은 겁니다.
신뢰를 쌓는 건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건 쉽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요?
이번 일에 대한 대응을 끝까지 지켜볼 생각입니다. 조금이라도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여겨진다면 저도 그냥 오유를 그만두려 합니다. 그게 유저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의거든요. 어차피 답이 없는 사람이라면 떠나지 않고 남아서 무슨 말을 하건간에 '어차피 남아 있을 거면서 쪼다들 ㅉㅉ'라는 생각밖에 안합니다. 이렇게 유저들 통수를 치나 나쁜 놈들! 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진 않겠습니다.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저도 사람인지라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항상 완벽할 수는 없었고, 때로는 실수도 했습니다. 그 때는 운영진의 입장이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떠났던 유저들의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