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철의 풋볼스토리 38번째 이야기 : K리그 클래식, 스플릿 시스템이 과연 올바른 제도일까?]
대한민국 축구의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는 스플릿 시스템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각 팀 당 두 번씩 맞대결을 가져 14팀이 26라운드까지 경기를 치른 뒤 정규리그 결과에 따라 1위부터 7위까지는 그룹 A(상위 스플릿), 8위부터 14위까지는 그룹 B(하위 스플릿)로 리그를 나누는 제도이다. 스플릿 리그에 접어들게 되면 정규리그 성적(승-무-패, 득점-실점 모두 해당)을 그대로 이어가 같은 스플릿에 속한 팀들끼리 두 번씩 맞대결을 가져 한 팀 당 12라운드를 더 치른다. 총 38라운드. 이렇게 해서 최종 우승자와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 팀, 2부 리그 강등 팀 등을 결정하는 것이 2013 K리그 클래식의 구성이다.
K리그 클래식의 스플릿 시스템 제도는 2012년부터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상위 6개의 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러 최종 우승 팀을 가르는 6강 플레이오프 제도가 존재했었는데, 리그 우승팀은 따로 토너먼트나 플레이오프가 아닌 리그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플레이오프 제도에 본격적인 문제가 제기된 것은 2007년, 정규 리그 6위를 기록했던 포항 스틸러스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상위 팀들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하던 때였다. 당시 리그 1위를 기록했던 성남은 아쉽게도 플레이오프라는 제도로 인해 포항과의 1, 2차전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1위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단 두 경기의 결과로 인해 1년 가까이 지켜온 리그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플레이오프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리그 우승팀은 리그에서 결정해야 한다. 2012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연맹은 이러한 요구에 순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안했다.
따라서 연맹은 리그 우승팀을 리그에서 정하는 대신, 그룹 A와 B를 나누는 스플릿 시스템을 새로운 리그 운영 방식으로 채택했다. 상위 팀들만 모여 있는 그룹 A에서는 매주 빅매치가 열리고, 그만큼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모아졌다. 또한 하위 팀들이 모여있는 그룹 B를 통해 새롭게 생겨난 강등권 싸움의 재미가 더욱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연맹은 2012년부터 리그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스플릿 시스템을 꺼내들었다. 스플릿 시스템이 시행된 지 어느덧 두 시즌 째, 이젠 중간 점검을 해보아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 최하위 팀보다 못한 8위 팀. 그룹 B 상위권 팀이 처한 상황이다.)
필자는 성남 팬이다. 하지만 성남 경기에 예전만큼 몰입할 수 없어 큰 고민이다. 오히려 시즌 중에 인천 숭의 아레나 파크를 방문하며 경기장에 감탄하고 오거나, ‘위아더월드’라는 서울의 ACL 경기를 보며 승리를 염원하는 시간이 더욱 의미 있었다. 최근 성남 경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대신, 오히려 타 팀 경기를 보며 빠져드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남이 매 경기 승리를 거둬야 하는 분명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룹 B에서 압도적인 승점차로 이미 1부 리그 잔류를 확정짓고 더 이상의 동기가 없는 8위 팀인 성남과 9위 팀 제주의 이야기다.
그룹 B는 전적으로 강등권 싸움에 초점이 몰려있다. 다이렉트 강등인 13위와 14위, 2부 리그 1위 팀과 강등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12위 팀 간의 순위 싸움에 당연히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그룹 B의 상위 팀은 아깝게 그룹 A 진출을 놓쳐 그룹 B에서 압도적인 승점차로 우위를 점하고 있을 것이 당연하고, 일찌감치 1부 리그 잔류까지 확정짓는다면 더 이상 승리에 대한 분명한 동기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계속해서 시즌을 진행해야 하는 선수단과 감독, 코칭스태프에게도 제대로 된 동기를 부여할 수 없고, 그 팀을 응원하는 팬들 역시 별다른 메리트를 느끼기 어려워진다.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떨어트려 팀의 인지도와 리그의 인지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8위 팀과 9위 팀의 팬들도 K리그 클래식의 팬이다. 이들도 똑같은 리그팬이라면 적어도 리그에 몰입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안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 역시 우리 팀이기 때문에 성남을 응원하지만, 정규 리그 때만큼 확실한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다.
또한 그룹 B에 아깝게 속한 8위 팀과 9위 팀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이 갇혀있어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다. 리그 우승 팀은 리그에서 정해야 한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리그에서의 순위 싸움이 모든 팀들에게 정당하게 운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위권에 속한 팀들도 충분히 뒷심을 발휘해 상위권으로 올라갈 기회를 줘야 한다. 특히 올 시즌과 같이 최상위권과 중위권간의 승점 격차가 얼마 안 나는 시즌이라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스플릿 시스템으로 인해 아깝게 그룹 A 티켓을 놓친 성남과 제주는 후반기 좋은 성적에도 불구, ACL 진출 티켓을 따낼 가능성마저 없어졌다. 불과 골득실 차 1점, 혹은 승점 차 1~2점으로 인한 차이였는데, 팀의 전반적인 성적에 까지 영향을 미쳐버렸다. 앞으로 뻗어나갈 곳이 없는 팀들에게 과연 어떠한 것이 동기가 되고, 어떠한 것이 목표가 되겠는가? 그룹 B 상위 팀에게는 좀처럼 달가울 수 없는 스플릿 시스템이다.
(△ 성남과 제주가 7위 위로 올라가 있는 올 시즌 순위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승점만 보면 우승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사진은 네이버 측이 순위 등록을 잘못해 범한 오류이다. / 사진 출처 : 다음 I Love Soccer 'BusanIPARK' 님.)
그룹 A의 하위 팀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6위와 7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천과 부산은 그룹 A에 속한 다른 팀들에 비해 전력에서 열세로 평가받고 있다. 당연히 매 경기 최상위권 팀들과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인천과 부산은 최근 경기 결과에서 승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팬들 역시 힘도 쓰지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는 우리 팀의 경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이들 역시 팀에 대한 동기를 느끼지 못해 자연스레 관심을 멀리할 가능성도 있다. 올해 인천은 시민 구단 최초로 ACL 진출 티켓을 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리그 38라운드까지 정규리그로 운영됐다면 인천 역시 상대팀 전력의 밸런스가 잡히므로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는 승점을 따고, 거기서 상승세를 타 최상위권 팀까지 잡는 이변을 연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룹 A에 갇혀진 상태라 깜짝 승리를 따낼 가능성조차 희박해졌다. 오히려 연이은 무승으로 인해 선수단의 분위기가 침체되어 가고 있다. ACL 진출 티켓을 노린다던 인천과 부산은 사실상 그룹 B에 갇힌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팬들에게도, 팀에게도 딱히 좋은 영향이 없다.
이렇듯 14개 팀의 순위로 봤을 때, 중위권 팀들에게 스플릿 시스템은 매우 치명적이다. 별달리 긍정적인 영향을 안겨주지 못한다. 충분히 상위로 올라갈 수 있는 팀들이었음에도 불구 어떤 이는 그룹 B에 갇혀서, 어떤 이는 그룹 A의 만만치 않은 팀들과의 연속된 만남으로 인해 시즌 목표와 동기를 모두 놓치게 된다. 사실 정규리그에서도 중위권 팀은 최상위권 팀과 강등권 팀에 비해 별다른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충분히 상위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과 동기가 존재한다. 그룹 A의 하위와 그룹 B의 상위라는 틀에 가둬놔 팀의 모든 가능성과 동기를 앗아가는 스플릿 시스템과는 다르다. 정규 리그 못지않게 스플릿 시스템이 상당히 공정한 제도로 보여 지지만, 실상이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 ACL에 출전하고 있는 FC서울도 스플릿 시스템으로 인해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
ACL에 나가는 팀들에게 조차 배려가 안 된다는 문제도 있다. ACL에 나가는 팀은 대개 그룹 A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올 시즌은 FC서울만 8강부터 살아남았지만, 만일 ACL에 나가는 모든 팀이 8강에 오르고, 그룹 A에 속해있다면 상황은 더욱 끔찍해진다. 그룹 A는 매경기가 빅매치다. 거기에 ACL에 나가는 팀들은 주중 경기에, 멀리 해외 원정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일정의 편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룹 A의 매경기가 빅매치다 보니, 일정을 미뤄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FC서울은 주중 에스테그랄 원정으로 인해 9월 28일 예정되어 있었던 울산과의 리그 경기를 10월 20일로 미뤘다. 이 때문에 에스테그랄 원정 경기 이후 예정되어 있는 FC서울의 10월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6(일) : 인천(A) - 10/9(수) : 수원(A) - 10월 A매치 데이 - 10/20(일) : 울산(H) - 10/26(토) : 광저우 에버그란데(H) - 10/30(수) : 울산(A)’
에스테그랄과의 경기 이후 3~4일 만에 인천과의 리그 경기에 참여해야 하는 서울이다. 또한 쉴 틈도 없이 3일 뒤에는 수원과의 슈퍼매치가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국가대표로 차출된 선수들은 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국가대표 경기까지 뛰어야하는 상황이다. 이 일정 중에 중하위권 혹은 강등권 팀들과의 맞대결이 예정되어 있다면, 서울은 조금이나마 체력적인 안배를 해줄 수 있는 경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룹 A의 특성상 매경기가 빅매치이다 보니 서울은 좀처럼 선수단에게 쉴 틈을 줄 공간이 없다. 리그와 ACL을 모두 잡으려면 선수단을 혹사시켜야만 한다. ACL을 위해 리그 일정을 일부 변경했지만, 차마 도와준 것이 도와주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 이야기는 서울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전북과 포항, 수원처럼 올 시즌 ACL에 나간 팀들이 8강까지 진출했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똑같이 겪고 있어야 했다. ACL에 참가하는 팀들에겐 좀처럼 배려를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룹A의 팀들로만 일정을 가둬놓은 스플릿 시스템의 영향이 크다.
또한 연맹이 예고한 스플릿 시스템을 통한 효과도 그닥이다. 연맹은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그룹 A의 빅매치들로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길 바랬고, 강등권 싸움에 대한 조명도 집중되면서 결과적으로 리그의 마케팅과 흥행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계속 보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룹 A를 통해 조금이나마 팬들과 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긴 했지만, 효과는 예상보다 좋지 않다. 체감 효과는 예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방송사와 언론의 행태는 그대로다. 근본적인 해결법은 다른 곳에 있다. 리그의 진행 방식을 바꾸는 것이 언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실제로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였던 26라운드. 부산(7)-성남(8)-제주(9)간의 그룹 A 티켓 한 자리를 두고 펼쳐진 싸움은 기가 막혔다. 제주는 당시 자력으로 그룹 A에 오를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후보에서 밀려났지만, 부산과 성남은 승점도 동률인 상황에 골득실차도 1점이라 26라운드 결과를 통해 충분히 판이 뒤집어질 수 있었다. 이 날 부산은 포항과, 성남은 경남과 동 시간에 맞대결을 펼치면서 긴장감은 고조됐다. 성남은 이른 시간에 황의조의 골로 1 : 0 리드를 잡았고, 부산은 포항과 1 : 1로 팽팽한 접전을 펼치면서 성남에게 그룹 A 티켓을 내줄 뻔 했다. 하지만 후반 47분, 부산의 박용호가 빠른 역습을 통해 득점에 성공하면서 부산은 기적적으로 그룹 A 티켓을 손에 넣었다. 종료 30초를 앞두고 터진 득점이라 그 가치는 남달랐다. 같은 시각, 소식을 들은 성남 팬들은 눈물을 흘렸고, 1 : 0 으로 경기에 승리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역시 좌절했다. 스포츠가 영화보다 더 극적인 명장면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라운드에 있었다. 당시 우승 경쟁을 펼치던 맨시티와 맨유는 마지막까지 적은 승점차를 유지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맨유는 마지막 라운드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만약 맨시티가 QPR과 비기거나 패배하면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맨유는 선더랜드에 1 : 0으로 승리하며 경기를 마쳤고, 그 시간 맨시티는 QPR에 예상 외로 고전하며 2 : 2 팽팽한 스코어를 유지하고 있었다. 추가시간 대부분이 소요된 시간 때문에 대부분 맨유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역시 종료 1~2분 직전 아게로가 버저비터 골을 성사시키며 팀의 3 : 2 승리를 이끌었다. 추가시간 극적인 골로 인해 맨시티는 우승트로피를 차지했고, 라디오를 통해 소식을 들은 맨유 팬들과 선수, 코칭스태프는 울상을 지어야만 했다. 아게로의 골과 박용호의 골 모두 비슷한 상황에 터진 골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아게로의 골은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알 수 있을 만큼 헤드라인에 걸렸고, 그에 못지않은 박용호의 골은 언제나 그랬듯이 축구팬들에게 조차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리그에 재미 요소를 더해도, 결국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반응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물론 이 날 포항과 부산의 경기를 중계해준 방송사 역시 spotv+였다. 중계 문제에서도 그닥 나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중계 문제와 언론 문제는 스플릿 시스템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결국 스플릿 시스템을 통한 효과가 미비하다는 증거다.
스플릿 시스템을 시행한지 벌써 2시즌이 다되어간다. 필자 나름대로 중간 점검을 해보면 득보단 실이 더 많은 듯하다. 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스플릿 시스템을 통해 본래 노리던 효과는 미비하고, 오히려 연맹이 예상치 못한 단점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그냥 한마디 하자면, 정규리그가 제일 무난하다는 것이다. 리그를 통해 우승 팀을 가릴 수도 있고, 모든 팀들에게 정당한 순위 싸움 기회도 부여할 수 있다. 절반으로 갈라진 리그의 틀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거나, 동기를 잃는 등의 문제도 없다. 2014 시즌 개막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디 연맹의 현명한 결정을 바란다. (풋볼스토리 / 풋볼스토리 페이스북 바로가기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