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동아일보 격려광고 1호 참여자
게시물ID : sisa_5336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기농맥주
추천 : 2
조회수 : 85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6/29 22:02:33

언론의 자유를 지키자 


언론자유는 우리의 
생명이다. 그것 없이는 인권도 사회정의도 학원과 종교의 자유도 그리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국가안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는 민주국민의 혼이요, 모든 소망의 근원이다. 이것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절대적 의무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란은 권력의 음모와 오만의 단적인 증거이며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이는 동아일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활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나는 언론자유와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한 시민으로서 모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언론자유의 촛불을 지키기 위하여 이 광고문을 유료 게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우리의 협력방안을 밝히고 뜻 있는 국민의 빠짐 없는 참여를 호소하는 바이다. 

1. 모든 민주시민은 언론자유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동아 매스컴에 대하여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자. 

2. 종교단체, 법조인, 문화제작자, 중소 상공업자와 유지(有志)시민은 업무광고, 신년축하, 동아의 건투를 축(祝)하는 광고 캠페인을 동아 매스컴 전체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전개하자. 

3. 동아일보의 당면한 재정난을 돕기 위하여 구독료 선불 및 성금 각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펴나가자. 

4. 동아 매스컴 당국이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구독료의 인상, 방송청취료제의 채택을 기꺼이 받아들여 협력할 것을 다짐하고 동아일보에 알리자. 

5. 앞으로 어떤 언론기관이라도 이와 같은 시련을 겪을 때는 똑같은 방법으로 협력할 것을 모든 언론기관에 전화, 편지 등으로 알리고 언론자유를 위해 분기하도록 촉구하자. 

1975년 1월 1일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 

당시 <동아일보>는 민주회복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선도한데 이어 보도 금지된 시위ㆍ집회ㆍ기도회 현장을 보도하고, 개헌문제에 대한 사설을 취급하자, 정부(중앙정보부)는 각 기업체 및 기관에 압력을 행사하여 무더기 광고해약사태를 빚는 탄압을 자행했다. 

정부의 광고탄압이 계속되자 기자협회는 △ 정부의 언론탄압중지 △ 구독운동전개 △ 광고해약회사 상품 불매 △ 동아일보 철회광고를 게재한 신문 불매운동 등의 행동강령을 제시함으로써 범시민적 저항운동을 유도했고, 이에 호응하여 각 민주단체와 일반 시민의 격려광고가 쇄도하였다. 

격려광고에 물꼬를 튼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은 <동아일보> 1975년 1월 1일자 8면 광고란에 "언론의 자유를 지키자"는 제목과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명의로 격려광고를 실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민들의 격려광고가 봇물처럼 답지하고, 내용중에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글이 많았다. “동아, 너 마져 무너지면 나 이민 갈거야!”라는 광고문안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1975년 당시, <동아일보> 광고국장이었던 김인호(84)씨는 3.17 동아사태 31주년을 앞두고 11일 <미디어 오늘> 기자와 만나 “74년 12월 30일자 1면에 내 명의로 격려광고 모집 공고를 낸 뒤 과연 광고가 들어올까 생각하고 있는데 31일 오전 10시께 한 사람이 ‘김대중 선생의 심부름’이라며 친필 광고 문안과 광고료를 갖고 와 내가 직접 이를 접수, 75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게재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국장은 “당시 이 광고를 누가 냈는지 알려지면 청와대에서 난리가 나고 광고 게재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한 시민’이 누군지 알리지 않았다”며 “그날 광고를 가져온 사람은 나중에 알고 보니 김옥두 비서였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당시 격려광고에서 “언론의 자유는 우리의 생명이다. 그것 없이는 인권도 사회정의도 학원과 종교의 자유도 그리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국가안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는 언론자유와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한 시민으로서 모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언론자유의 촛불을 지키기 위하여 이 광고문을 유료 게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시 김 전대통령 총무비서였던 김옥두 전 국회의원은 13일 “75년 1월 1일자 ‘한 시민’ 광고는 내가 갖고 간 게 맞다”며 “당시 김 전대통령은(74년 납치사건 이후) 가택 연금 상태였는데, 동아 사태를 보고 ‘나도 어렵지만 동아일보를 살려야 한다”면서 직접 격려광고를 내고 주변에도 적극 권려했다. 신년호 이후에도 몇 차례 광고를 더 냈다.”고 말했다. 왜 ’한 시민‘ 명의로 광고를 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의원은 “김 전대통령이 격려 광고를 낸 것을 알면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이 더 가혹해 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석 7) 

<동아일보>는 이후 김대중을 비롯한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격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박 정권에 굴복하여 자유언론투쟁에 앞장선 언론인 다수를 쫓아내고 말았다. 


주석 
7) <미디어 오늘>, 2006년 3월 15일 (제538호).
 

뒷북인가..요? 

요약
(지금과는 좀 많이 다르게) 동아일보가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대해 반대하자
정부가 동아일보로 들어오는 광고들에 압력을 가해 광고들을 싹 없애버립니다
광고가 신문사 수입에 많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힘들어 하던때 익명으로 격려 광고가 날아오고
그를 뒤이어 많은 격려광고가 동아일보 신문면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최초의 격려광고자는 전 김대중대통령이셨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