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과 노무현이 처음 만난것은
89년 국회였다
노무현은 혈기넘치는 초선의원이었고
안희정은 밥벌이를 위해 김덕룡 보좌관으로 일했다
둘은 우연히 처음 알게되었을때 서로 결이 맞다는것을
운명처럼 느꼈지만,
노무현사무실에선 도저히 한명 더 받아줄 여력이 안되었고,
안희정도 도의상 바로 갈 수 없었다.
3당야합으로 김덕룡이 민자당으로 가버리자
안희정은 지체없이 노무현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둘은 평생의 동업자가 되었다.
노무현이 만든 '지방자치연구소'
말만들어도 일은 많고, 돈은 없을 것 같은 조직
안밖으로 힘든 그때
안희정은 힘들다는 내색없이 궂은 안살림 다 도맡아하고,
노무현이 욱해서 정치 그만둔다고하면
젊은 참모들 다 모아와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협박도 하며
그렇게 대통령만들어냈다.
취임초기부터 대통령은 신랄하게 물어뜯겼고,
말도안되는 논리로 대선자금문제 불거지자
우리가 알고 있는 안희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안희정대로
'모든것 제가 책임지고 감옥가겠다'했다.
노무현은 펄쩍뛰며 절대안된다 했지만
안희정이 고집을 부리고,
결정적으로 문재인도 '어쩔수 없다'며 안희정 구속쪽으로 가닥을 잡자
결국 뜻을 굽힐수 밖에 없었다.
문재인말은 늘 무겁게 듣는 노무현이었기때문이었다.
그렇게 안희정은 노무현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그렇다고 안희정이 문재인 원망하는거 본적있는가?
문재인 또한 안희정이 구속되던날 검찰청앞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언론에 의해 조리돌림당하는걸 지켜봐야만 했던게,
평생의 한이라고 한다.
노무현의 그날이후
'내가 그 버스앞에 드러누웠어라도 막아야했는데'는 자책으로
식음 전폐하고, 낮밤으로 울기만하며 골방에 웅크린 아들을 보다못한
안희정어머니는 '지에미 죽어도 이래 슬퍼할거냐' 하소연했다한다.
그러나 안희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충남으로 뚜벅뚜벅 혼자걸어가서
충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재선도지사가 되었고
이제는 전국민의 '우리 희정이'가 되었다.
가끔 두사람이 서로를 대하는것보면
서로 한없는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수있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둘이나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