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초등학교때부터 입시 준비를 합니다.
학교끝나고 학원가고 저녁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습니다.
그럼 쟤네들의 소울푸드는 삼각김밥이 되는걸까...라고 생각하니
좀 착찹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내 소울푸드는 뭘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여름방학때, 시골에 놀러가면
할머니가 쪄주신 호박잎쌈이 생각나더라구요.
어렸을 땐, 이거 정말 싫어했습니다.
질깃한 잎맥의 느낌도 싫었고 까끌한 줄기느낌도 싫고...
근데 편식하면 할아버지한테 호되게 혼났습니다.
그럴수록 호박잎은 더 싫어지고 시골도 싫어지고
호박잎만 쪄주시는 할머니도 미워지고.
그래서 할아버지한텐 뭐라 못하지만 할머니한텐 소리지르고 떼쓰고...
옛날에 생각해보면 난 진짜 못된 손자새끼였죠.
그래서 항상 그냥 물말아 먹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관절수술을 받으셨어요.
퇴원하셨지만 아무래도 걸음걸음이 예전만 못하셨죠.
아버지랑 저랑 할머니댁에 갔는데
할머니가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호박잎을 쪄놓으셨더라구요.
아버지는 이게 정말 먹고싶었다고, 추억의 맛이라고 하는데
아...저는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싫었습니다.
편식하는 습관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어릴적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신거니까
호박잎에 살짝 식은밥 척 올리고 쌈장 딱 올려서 꾸역꾸역 씹어봤습니다.
어렸을적에 그렇게 맛없던 호박잎이
의외로 먹을만 하더군요.
근데 삼키기가 힘듭니다.
이게 너무 질겨서 목으로 안넘어가나 했는데
목이 메어서 안넘어갑니다.
뭐때문인지 막 눈물이 날라고해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였어요.
갑자기 밥상에서 울면 이상한놈 되니까...
그냥..계속 천천히 씹고 꿀꺽 삼켰는데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지는거에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수술하신거때문에 맘이 아팠던건지
아님 편식했던 그 기억의 후회때문이였는지
아니면 어렸을적 추억이 생각나서였는지
다행이도 눈물은 아무도 못봤고
저는 호박잎만으로 밥 두공기를 비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그 때의 감정이 뭔지 알거 같네요.
그 감정은 감사함이였던 거에요.
그렇게 떼를 쓰고 투정을 부렸는데
저였으면 귀싸대기를 한번 날렸을 법도 한데
한번도 화내거나 큰소리치지 않으시고
제 편식습관을 고쳐주려고 그러셨던거죠.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희 동네에 같이 사셔서
고기 사들고 자주 놀러갑니다.
그리고 항상 밥먹을때마다 말해요.
"나 어렸을땐 호박잎 정말 싫어했는데
요즘은 그게 왜이렇게 먹고싶은 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