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에 한 작고 귀여운 티모가 있었다.
티모는 몸집은 작았지만 날래고 총명해 마을의 파수꾼이자 길잡이였고, 때로는 품안의 독침을 꺼내어 적을 암살하는 등 야비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며 그의 주특기인 독버섯을 곳곳에 설치해 암습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티모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일화가 있는데, 다음은 티모의 죽음에 관한 일화다.
“티모 대위! 정찰 다녀오겠습니다!”
티모는 웃는 얼굴로 마을을 벗어났다. 마을 밖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십 여분을 걷고 있을 때였다. 티모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근처의 수풀에 은신했다. 곧 티모의 앞에 우람한 덩치의 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두 뿔에 두꺼운 근육을 가진 그는 여타의 평범한 소가 아니었다. 티모는 본능적으로 그가 위험한 존재임을 감지했다. 그가 좀 더 가까워졌을 때 티모는 그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소들의 왕, 알리스타였다!
“내가 길을 알아!”
박력이 넘치는 음성이 티모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넓은 어깨를 앞세워 위풍당당하게 걷는 알리스타의 패기에 티모는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지만 독침대롱을 꺼내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알리스타가 티모가 숨은 수풀에 가까워지자 티모의 손에도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만약 알리스타가 핑크 와드라도 가지고 있는 날엔 티모의 죽음은 확실하리라.
티모는 한사코 긴장의 끈을 놓치 않으며 알리스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 방향은 티모의 마을로 향하는 길. 필시 미노타우르스 부족의 왕 알리스타는 티모의 작은 마을을 분쇄해버릴 것이 틀림이 없었다. 알리스타가 등을 보이는 순간, 티모의 날카로운 독침이 알리스타의 목에 꽂히리라! 하나, 둘…… 기회를 노리던 티모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날 아무리 짜 봐야 우유 안 나와!”
농담조로 말하는 알리스타를 보며 티모는 그가 미친 소라고 추측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뿔싸! 처음의 말도 이 남자를 향한 것이었다! 티모는 숨을 죽이고 알리스타 뒤의 사내를 응시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장난 칠 시간 없어.”
현명한 티모는 사내가 용병 그레이브즈 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고독한 발걸음, 사내에게 걸린다면 티모는 도망갈 시도조차 못 해보고 죽으리라! 티모의 이마에 식은 땀이 맺힐 즈음 알리스타가 말했다.
“이 냄새는…… 내가 싫어하는 쥐새끼의 냄새가 난다.”
티모는 위험을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분명 걸린다! 티모는 선택을 해야 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티모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이었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은신을 하고 있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거나!
현명한 티모는 후자를 택했다. 티모가 수풀에서 나오자마자 은신 상태가 풀리며 티모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티모를 확인한 알리스타가 울부짖었다.
“달려간다!”
알리스타의 괴성에 티모는 정신을 놓아버릴 지경이었다. 티모는 그의 주특기인 신속한 이동을 최대한 발휘하며 마을을 향해 달렸다. 그런 티모의 뒤로 그레이브즈의 음성이 울렸다. 지옥과도 같은 한 마디였다.
“뛰어 봐! 움직이는 걸 쏘는 게 더 재밌으니까.”
얼마간을 달린 후,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고 생각될 즈음 티모가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즉시 티모는 고개를 돌린 것을 후회했다. 저만치 뒤에서 알리스타가 티모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속도에 티모의 작은 두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눈에 익은 노란 신발, 티모는 예리한 눈으로 그것이 기동성의 장화임을 알아차렸다.
티모는 도주에 승산이 없음을 판단하고 다른 수를 쓰기로 했다. 티모는 곧장 그의 배낭에서 아껴둔 독버섯 몇 개를 바닥에 깔았다. 보색으로 주위 색에 맞춰 색을 변화하는 이 독버섯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 것이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독버섯에서 몇발 물러선 티모는 알리스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돌진하는 알리스타의 뒤에서 그레이브즈가 오는 것을 확인한 티모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은신했다. 알리스타는 분명 티모가 그 곳에 은신한 것을 눈치 챌 것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돌진하게 되리라.
“황소 앞에서 까불다간, 내 뿔에 찔릴 거다!”
위협적인 말에 티모의 가는 팔이 덜덜 떨렸지만 용감한 티모는 그 순간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알리스타가 티모의 독버섯을 밟았다! 폭발음과 함께 일그러지는 알리스타의 표정을 보며 티모는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즉시 은신을 해체한 티모는 알리스타에게 말했다.
“정찰대의 규율을 깔보지 마시길!”
웃어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티모의 어리석은 행동은 알리스타를 화나게 할 뿐이었지만, 버섯으로 인해 알리스타의 속도는 떨어질 것이며 기동성의 장화의 효과도 반감될 것이었다. 도망갈 시간을 번 티모에게 알리스타의 외침이 날아들었다.
“나 지금 열 받았어!”
이제 슬슬 전력으로 도망가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지체한다면 알리스타의 뿔에 받히고 맹렬한 분쇄로 인해 지면 위로 높이 떠오르리라. 그렇게 되면 작은 티모가 허공을 배회하는 사이 악명 높은 그레이브즈는 주저않고 산탄을 쏘리라! 티모는 재빨리 마을에 전해지는 주문, 유체화를 사용했다. 티모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도망가는 티모의 뒤로 알리스타의 고함 소리가 길게 울렸다.
티모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티모는 가장 먼저 그의 친구인 트리스타나를 찾았다. 티모는 그가 목격한 사실을 숨김없이 밝혔고 트리스타나는 창백한
안색으로 티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범죄 소굴을 전전한 그레이브즈의 악명은 익히 들어온 터였다. 티모는 트리스타나의 떨리는 팔을 잡으며 말했다.
“여긴 내가 지킬테니 어서 떠나.”
굳은 목소리였다. 트리스타나는 티모를 만류하려 했지만 티모의 확고한 눈빛에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오랜 우정으로 돈독한 관계에 있는 티모와
트리스타나였기에 파트너의 심정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티모는 트리스타나가 동료를 데리고 이 곳을 빠져나가리라 믿었다. 트리스타나가 티모를 믿을 차례였다. 트리스타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티모의 안색이 밝아졌다.
티모는 곧장 쿠뭉구 정글로 향했다. 알리스타와 그레이브즈가 오려면 아직 여유가 있었다. 독버섯을 만들기 위한 희귀독을 구하기 위해서 티모는 곳곳을 뒤졌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티모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필요한 양만큼의 독을 구한 티모는 다시 마을을 향해 뛰었다. 급히 찾느라 티모의 신발은 다 헤져 상처가 안 난 곳이 없었지만, 티모에겐 그보다 중요한 사명감이 있었다. 마을에 남은 요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티모는 곳곳에 버섯을 설치하고 그들이 오길 기다렸다.
“내가 돌아왔다.”
곧 그레이브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티모는 더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았다. 티모가 도망가게 된다면 그의 마을과 동료 요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었다. 티모는 독침 대롱을 들고 그들을 마주했다. 일말의 긴장감이 흘렀다. 티모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대로 알리스타에게 돌진했다. 알리스타는 달려드는 티모를 향해 웃음을 지으며 땅을 내려찍었다. 그 반동으로 지면이 떨리며 굉음이 울렸고, 알리스타는 허공에 뜬 티모를 들이받기 위해 정면을 바라봤다. 그 때, 알리스타를 향해 독침이 날아들었고 독침은 알리스타의 목에 꽂혔다. 알리스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알리스타의 예상과 달리 티모는 간격에서 벗어나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독침을 날렸던 것! 알리스타는 티모를 향해 돌진했고 티모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뒤따르는 그레이브즈를 확인한 티모는 독버섯을 설치했다.
알리스타는 근거리에 설치된 독버섯을 피하지 못했고, 독버섯은 그대로 향을 퍼뜨리며 폭발했다. 알리스타는 휘청이며 옆으로 쓰러졌고, 곧 옆의 독버섯을 터트렸다. 독버섯이 연달아 터짐에 따라 극심한 고통이 알리스타를 강타했고, 독버섯의 폭발로 인해 그레이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알리스타는 그 때에서야 이 근방이 모두 티모의 독버섯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닥을 내려쳤다. 가까운 거리에 있던 티모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고, 공중으로 높게 떠올랐다. 티모의 눈이 번뜩였다. 티모는 마지막 주문인 점화를 사용했다.
알리스타에게 붙은 불은 곧 온몸으로 퍼지며 알리스타의 치유력을 감소시켰고, 독버섯으로 인해 알리스타와 그레이브즈의 체력은 바닥을 기었다. 알리스타는 분노하며 그의 뿔로 티모를 들이받았다. 티모는 죽음을 직감하며 두 뿔에 들이받혔고 작은 티모의 몸은 힘없이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만신창이가 된 티모를 향해 걸어가는 알리스타의 걸음마다 버섯이 폭발했고, 알리스타는 티모에게 닿지 못한 채 쓰러졌다. 알리스타가 쓰러지며 둔탁한 충격이 티모에게 전해졌지만 티모 역시 깨어날 수 없었다. 그레이브즈가 독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티모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비록 작고 약한 요들일 뿐이었지만, 동료를 위한 그의 마음은 그 어느 것보다도 컸다.
“크기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마지막 말 한 마디를 남기고, 티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