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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usion - 중
게시물ID : panic_837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야안녕
추천 : 4
조회수 : 81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0/12 04: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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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anic&no=83737&s_no=83737&page=1      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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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떨이에 제멋대로 널부러진 꽁초들이 끊임없이 역한 냄새를 뿜어냈다.

책상에는 서로 다른 서류들이 뒤죽박죽 섞여 제 짝을 맞추기 어려운 퍼즐이 되어있고

언제 마셨는지 알 수 없는 커피가 말라붙은 종이컵들은 구겨진 채 쓰레기통 주변에 
각종 범죄학과 심리학에 관련된 서적들이 널부러져있었다.

밖이 잘 보이도록 커다란 시창이 달린 나무문을 두드리며 한 남자가 들어섰다.

" 경감님...? "

조심스래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방안에 있는 남자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용히 말을 꺼냈다.

푹신한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가리려 얼굴에 중절모를 덮고 있던 남자는

인기척을 느낀 듯 손으로 천천히 중절모를 치우며 일어났다.

중절모가 치워진 얼굴에 햇살이 끼얹어지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햇살을 머금은 얼굴에는 정리안된 턱수염이 제멋대로 자라나있었고 푸석한 피부와 주름에는 피곤이 서려있었다.

" 채프먼 경감님, 단잠을 깨웠다면 죄송합니다. 급히 확인하셔야할 내용이 있습니다. "

경감은 크고 거친 양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리고 말 없이 손을 내밀자 남자는 경감의 손에 한 뭉터기의 서류철을 건냈디.

" 포틀랜드 가족 살인 사건..... "

서류철에 붙은 라벨지에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어나갔다.

" 경감님께서 조사를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흥미로운 점이 한 둘이 아니더군요. "

경감은 서류철에서 문서들을 꺼내 눈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 범인의 자수..... 사체는 행방불명.... 사라져버린 흉기.... '

" 처음 경감님이 이 사건을 조사하라고 했을 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범인이 자수를 한 사건은 종결 시키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조사를 하면 할 수록 미심쩍은 것들이 한 둘이 아니였습니다. "

경감은 서류철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그래.... 우리 풋내기 경장의 조사 결과를 한 번 들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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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방금 구워낸 카스테라 같은 분이세요.... 따듯하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분이세요!
  저와 형을 너무 좋아해서 저희가 위험한 장난을 치거나 다치면 우시기도 하셨어요.
  우리 형제를 꼭 끌어안고는 괜찮을거라고, 모든게 다 좋아질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집 안을 청소하거나 요리할 때를 빼곤 엄만 항상 침실에서 생활하셨어요.
  우린 침실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집안에 하나 둘 씩 생기는 그림을 보면서 엄마가 침실에서 뭘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죠. "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즐거운 듯 떠들어댔다.

남자의 눈은 안경 너머로 종이와 소년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기 바빴고, 그의 손 역시 쉴 틈 없이 움직였다.

" 아빤 무뚝뚝하지만.... 항상 저희가 원하는 장난감들을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실력이 좋은 목수시거든요. 집안에 있는 가구나 장식장도 거의 아빠의 손에서 만들어졌어요.
  아빠는 일이 끝나시면 집에 와서 저녁을 드시고 바로 침실에서 주무시기 때문에
  저희와 놀아주시는 일은 엄청 드물었어요. 하지만 아빠가 선물로 준 장난감들을 보면
  아빠가 저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거에요. "

" 집 안의 가구와 장식장을 직접 만드시다니, 아버지의 솜씨가 대단한가보구나! "

" 아빠가 그 말을 들었다면 굉장히 기뻐하셨을거에요. "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차올랐다.

무감각한 하얀 공간을 채우는 미소에 남자는 편안함을 느꼈으나 이내 고개를 몇 번 털어내고는 소년에게 집중했다.

" 네 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니? "

" 정말 신기하네요..... "

남자와 소년이 앉아 있는 방을 비추는 시창에 선 여자가 말했다.

짧은 머리에 위로 올라간 눈매, 그리고 얇은 사각 테 안경을 낀 여자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움과 차가움이 묻어났다.

방 안을 촬영하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비디오 카메라 옆에 앉아 양 팔을 책상에 받힌 채 방 안의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이 여자의 말에 대답했다.

" 저 아이는 우리 연구에 굉장히 중요한 사료가 될 걸세....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지.... 아니.... 어쩌면 우리가 최초 일 수도.... "

최초라는 말에 여자는 마른 침을 삼켰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누구도 도전해보지 못한 경지에 발을 담근 것이라 생각한 것만으로 몸이 짜릿해져왔다.

마치 미지에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탐험가처럼 여자는 눈에 욕망이 가득 서린 채로 방안을 주시했다.

노인은 여자가 학구열에 불타는 열정적인 학자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지금 당장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고는 진정시키고 싶었으나 자신 역시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였기에

여자에게 조금만 더 이런 기분을 즐길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다.

" 이런 실험에서는 조금의 상황 변화에도 결과가 크게 바뀐다네.... 자네도 잘 알겠지?
  우리는 그저 가능한 상황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의 정보를 얻으면 되는걸세.
  이 점을 잊지말게나. "

" 네, 명심하죠. 그런데 정말 한 눈 팔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광경이로군요.... "

커다란 시창을 통해 방안을 지켜보는 여자의 눈에 광채가 서렸다.

노인은 이런 순수하고 정열적인 학자가 자신의 제자라는 점을 겸허히 생각하며 차분히 말했다.

" 이 모습을 보는 누구나 그럴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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