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 2005 . 06주연이영애 : 금자 역 최민식 : 백 선생 역 조연 김시후 : 근식 역 김부선 : 우소영 역 이승신 : 박이정 역 라미란 서영주 연출 부문 박찬욱 : 감독 투자/배급 : CJ엔터테인먼트 (제작) 극장개봉 : 친절한 금자씨 (2005.06.00) 등급 : 19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스스로 13년간 감옥에 갇힌 천사 같은 여자가 벌이는 치밀한 복수극’ 이야기. ━━━━━━━━━━━━━━━━━━━━━━━━━━━━━━━━━━━━━━━━━━━━━━━━━━ 이번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 친절한 금자씨 ' 입니다..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왠지 기대가 되네요.. ' 올드보이 ' 처럼요;; 2005년 6월달 개봉작이라서 아직 기다려봐야 하지만, 꼭 보셨으면 하는 영화에요^^; 아래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인터뷰 입니다. 시놉시스 로는 많이 부족한 감이 있어 올려봅니다..^^ ━━━━━━━━━━━━━━━━━━━━━━━━━━━━━━━━━━━━━━━━━━━━━━━━━━ '친절한 금자씨' 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 스타는 이따금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마련이다. 촬영 대신 편집을 처음 한 날이라고는 하나 박찬욱 감독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설마 사진 촬영을 의식한 감독의 배려? 물론 아니다. 여느때 입던 옷이 빨래통 속으로 들어갈 때가 된 참에 마침 세탁하기 전에 한번 더 입으려고 했던 양복이 눈에 띄었다. 양복을 입으니 입지 않고 쟁여두었던 셔츠를 입게 됐다. 그런데 그 셔츠는 단추를 끝까지 매지 않으면 칼라가 위로 툭 삐져나왔고, 넥타이 없는 정장을 즐기는 데이비드 린치 따라하기도 아니니 할 수 없이 넥타이까지 매게 됐다. 별다른 의도없이 배치된 외모는 매끈한데 눈가에 피곤함이 짙다. 두달 전쯤, 천식 때문에 ‘위기’를 겪고 담배를 끊었는데 금단현상 때문에 잠을 자꾸 설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평한다. “담배 끊었는데 좋아지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자기 몸에 무심한 듯한 감독이지만 제작사를 직접 차려 촬영에 들어간 <친절한 금자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치밀한 고안과 계산하에 진행되고 있다. 65회 촬영예정에 지금까지 10회 촬영을 마쳤다.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은 받아냈으나 시나리오는커녕 변변찮은 시놉시스조차 얻어볼 수 없었고, 촬영장 접근은 ‘금지’됐다. 도리없이 시나리오를 모니터해주었던 다른 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귀동냥을 청했다. 인터뷰까지 종합해보면, 복수 삼부작의 대단원은 화사하고 서정적인 복수극이다. 모성애와 자매애가 모티브로 작용해 극한적인 복수의 인과율에 따사로운 포옹의 여지를 줄 것이다. 여기에 “어떤 결론을 향해, 미리 잘 배치된 복선과 암시에 의해 퍼즐 맞추기처럼 가는 게 아니고 그냥 물 흐르듯 가는 이야기”가 가벼운 터치의 윤활유로 작동할 것이다. 차갑고 건조했던 <복수는 나의 것>, 정교하게 짜맞춘 활화산 같았던 <올드보이>와 비교하면 스타일과 이야기 양면에서 세 가지 색 연작을 이루기에 알맞아 보인다. 복수라는 테마에 대한 최종 정리도 필요해 보인다. “자신이 추락해가는 걸 의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힌트가 될 터이다. -주변 취재를 해보니 공통적으로 이영애 이야기를 하더라. 시나리오가 이영애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거라는 게 확 느껴지고, 영화가 나오면 ‘이영애론’이 가능할 것 같다고도 한다. =금자씨는 여고생 때 아무 생각없는 철부지였기 때문에 어떤 ‘실수’를 하게 된다. 그뒤 백 선생과 모종의 범죄를 저지르고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에 가게 됐다. 그런데 백 선생이라고 하니까 자꾸 백윤식 선생을 말하고 최민식마저도 이거 원래 백윤식씨한테 맡기려고 했던 건데 퇴짜맞고 자기한테 온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아무튼 그 백 선생이 복수의 대상이다. -금자씨가 스스로 감옥에 간 게 아닌가. =맞다. 죄를 스스로 뒤집어쓴 거니까. 배신을 당한 거고 그래서 복수를 결심하는 거다. 성격으로 말하면, 철없는 여자였으나 냉정하고 사악한 여자가 됐다가 결국은 불쌍한 여자가 된다. 촬영 초반이긴 하지만 주로 과거장면을 찍고 있는데 코믹한 게 생각보다 많다. 문소리나 전도연이 했으면 안 웃길 텐데 이영애라서 그런 게 많다. 이영애는 뭐랄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 현실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가졌다거나 증오하는 감정을 가졌다거나 누구를 이용해먹는다거나 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연기를 하는 걸 본 적도 없고. 그런 이영애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이영애로서는 너무나 낯선 맥락 속에 던져지기 때문에, 계속 낯설고 그것이 낯설다 못해 코믹한 지경이 된다.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고, 맛이 살짝 간 것 같은 표정도 있다. 그래서 본인은 당황해하고 있지만,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웃음) 관객이 좋아해야 할 텐데. -본인이 당혹스러워 한다는 건. =이영애도 사람이니까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기로 표현한 건데 그걸 모니터로 보면 자기도 낯선 거지. 안 지어본 표정과 얼굴이. -감독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맞아들어간 거네. =관객이 좋아해야 하는 종류의 낯섦과 유머여야 할 텐데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스타에 대해 관객이 가지는 기대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익숙하고 기대에 부응하는 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러면 정도가 적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영애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것에서 많이 벗어나서. -최민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올드보이>의 유지태 같은 비중을 가진 상대역은 아니라고. =유지태의 배역만큼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소실점이다. 그 사람을 향해서 모든 일이 집중돼 있다. 등장 시간은 유지태보다 짧지만 유지태의 경우, 그가 왜 악행을 저지르는구나 하는 게 공감도 되고 동정도 되는 인물이었다면 여기서의 최민식은 퓨어 이블(순수 악)이라는 점이 다르다. 왜 저런지도 알 수 없고 그걸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객이 최민식을 보면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떠올릴 텐데,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나. =전혀 없다. 원래는 최민식한테 시킬 역할도 아니었고 그냥 노바디였다. 아무도 모르는 처음 보는 배우를 생각했다. 그래야 퓨어한 느낌이 더 살 것 같아서. 그런데 처음에는 역할을 아주 작게 시작했는데 이 사람을 향해 집중되는 이야기라서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등장하는 시간이 일정한 분량이 됐고, 연기력의 비중이 커져버렸다. -금자씨를 중심으로 많은 캐릭터들이 스쳐지나가는데, 특히 감옥에서 만난 동료 죄수들이 나중에 복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출소 시기가 각각 다른 그 전과자들에게 금자씨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일일이 도움을 청한다. 금자씨는 이 일을 대비해 감옥에서 그녀들에게 엄청난 호의와 선행를 베풀어 호감을 사고 그렇게 때를 기다려온 거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자매애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당한 자들의 연대 같기도 하고. -금자씨가 끝내 복수하려는 목적은 뭔가. =선언처럼 대사로 분명하게 표현하는데, 최민식(백 선생)이 죽어야 하는 건 그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대수가 나를 15년 동안 감금했기 때문에 죽인다고 했다면 금자씨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 죄를 나로 하여금 짓게 한 죄, 그것 때문에 벌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최민식(백 선생)은 감독이 생각해온 그 어떤 퓨어 이블을 캐릭터로 만든 것인가. =그렇게 거창할 건 없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으니까. 좀 단순하다. 그런데 나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많은 설명이 없으니까 오히려 복잡한 인물인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복수 3부작의 대단원이어서 복수라는 테마에 대한 총정리가 있을 듯하다. =물론 있는데 너무 단순해서 말하기 쑥스럽다. …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돌아오는 건 아니다, 라는 게 삼부작의 결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모르냐, 다 안다 이거지. 복수하는 사람도. 그게 허무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복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 -엔딩에서 <올드보이> 같은 반전은 없고, 축제 혹은 파티 같다고. =그렇다. 그런데 그 파티는 결코 즐거운 파티가 아니고 즐거운 척하는 파티라는 게 컨셉이다. 복수를 끝내고 통쾌하고 후련한 것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게 동반한다. 말하자면 모호한 거다. 즐거운 건지, 즐거운 척하는 건지. -한 평론가가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여자들은 희생되고, 남자들은 복수한다. 이 영화에는 이상한 마초주의가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를 연장하면 <올드보이>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금자씨는 이것에 대한 역전인가. =이상하군. <복수는…>에서 송강호의 죽음은 죽은 배두나의 복수인데.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삼부작의 마지막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다. 제일 맘에 걸린 것은 <올드보이>에서 ‘미도’라는 인물이었다. 전개상 어쩔 수 없지만 끝내 진실에서 소외된 채 퇴장한다라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진실에서 소외되기를 관객이 기도해야 한다는 게 걸렸다. 예술적 성취와는 별개의 문제다. 스토리가 요구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해도 각본 단계에서 내내 고민거리였다. 잘 좀 고쳐보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나리오를 손보다 해결이 안 되면서 다음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그때 결심했다. -이번 작품은 아직 모르겠지만 순결한 영혼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한 인간이 괴물이 되거나 파멸돼 왔다. 박찬욱 영화 속의 인간은 왜 자꾸 그렇게 되는가. =영화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좋다. 영화 속의 인물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상업영화의 핵심이다. 그 변화에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어떤 깨달음을 거쳐 구원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과 그 반대방향. 내 생각에는 괴물이 되어가면서 그것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그런 추락을 의식한다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전락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물들은 어떤 의미에선 올라가는, 구원의 운동을 하고 있다. 그게 내 영화 속 인물들의 운동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을 향한 몸부림치는 자체가 지닌 숭고함,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몸부림이 결과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목적론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가 되지 못하는, 되려고 하나 끝내 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좀 덜하다. -아까 철없다가 지독하게 됐다가 끝내는 불쌍해진다고 하지 않았나? 결국 같은 것 아닌가. =그런가? 마지막 장면은 다른데. -일련의 부침을 겪으면서 그 피드백을 통해 영화의 가능성은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한 게 있지 않을까. =만드는 데 같이 하는 사람들, 배우들과 스탭들, 그리고 나 스스로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갖는 느낌이 전부인 것 같다. <복수는…>이 흥행은 나빴지만 잘 전달이 안 됐다고 볼 수도 없고, <올드보이>를 많은 사람들이 봤지만 잘 전달됐다고 볼 수도 없다. 비평은 비평가 한명의 반응이라서 일반화하기 어렵고. 피드백에 대해선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은 것 같다. 타르코프스키 책을 보면 시골 아줌마가 편지를 보내왔다는 구절이 있는데 나한테는 그런 게 참 낯설다.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한명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고 주관이어서 타르코프스키처럼 뿌듯할 것 같지 않다. 영화를 완성한 순간 그 작품에 관심이 없어져버린다. 그래서 DVD의 오디오 코멘터리가 고역이다. -2004년을 정리하는 기사를 마련하면서 기자로서 재밌었던 게,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 같은 경우는 박찬욱 감독이 칸에서 상을 받은 효과가 <쉬리>가 한국 영화산업에 미친 파급력과 비슷하고, 영화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보는 기준이 유연해졌다고 긍정적으로 본 반면 정성일, 김소영, 허문영의 3인 대담에선 요즘 영화 지망생들이 모두 박찬욱 따라하기 일변도인 것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그런가? 정말? 난 진짜로 몰랐다. 2~3년 전에 심사하고 그러면 다 홍상수던데. 그 사이 바뀌었나? 그러면 또 바뀔 거 아닌가, 뭐가 걱정이지. 봉준호류가 나오든지, 임필성류가 나오든지. 바뀌는 거지. -초고 나왔을 때, 아내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는데 무척 맘에 안 들어했다고 했는데 최종본에 대한 반응은. =제일 잘 썼다고 한다.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복잡한 느낌을 일으키는 결말을 높이 평가하더라. 그리고 금자씨라는 인물이 아주 독특하다고. -이번에 테크놀로지든 뭐든 개인적으로 실험해보는 게 있나. =한 가지 있는데 감춰두고 싶다. <복수는 나의 것> 때 하고 싶었던 건데 제작비 등의 문제로 못한 거다. <올드보이>는 그게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었고. -이번에도 그렇고 왜 번번이 유괴가 등장하나. =내가 그것에 심오한 뭔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컨대 살인은 한순간에 끝나버리는 건데 유괴는 아이를 빼앗긴 사람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고, 훨씬 잔인한 느낌을 주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소재다. 이런 건 있다. <복수는…>에 유괴의 테마가, <올드보이>에 감금의 테마가 있는데 <친절한 금자씨>에선 그게 재등장하고 많이 바뀌어서 그 모티브들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생각을 미리 하긴 했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앞선 두 영화가 언급되곤 한다. 예컨대, 배두나가 유괴를 합리화하기 위해 펼치는 논리와 비슷한 게 이번에도 나온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건. =조연이 워낙 많이 나오는데 조연 모두가 항상 연기를 잘할 수만은 없을 테니까 어떤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 조연들을 다 베테랑으로 할 수도 없고, 모험적인 캐스팅도 있다. -조연이 많은 건 이야기를 위한 방편인가. =물론, 난 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 만들면서 흥미를 느끼는 게 금자씨를 이영애 자체로 설명하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회상 같은 것을 통해 설명한다는 점이다. 어떤 여자는 금자씨가 무서운 여자로 마녀 같다고도 하고, 어떤 여자는 친절하다고도 하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금자씨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이 일시에 물거품이 되는 허무한 지점에 이른다. 거의 다른 영화가 되다시피. 그것이 너무나 허무해서 <올드보이> 같은 반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프로듀서와 미술감독을 빼면 대부분 <올드보이>의 스탭과 다시 작업한다. 이번 작품은 이전과 달리 이렇게 간다고 말해둔 게 있다면. =아주 기교적인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촬영에서 무브먼트가 많지 않으며 카메라 픽스가 많다. 날카로운 커팅으로 편집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상상선을 넘어가는 편집도 많고, 장면 전환도 금자씨 얼굴에서 다른 장소의 금자씨 얼굴로 넘어가는 등 편집이 중요한 영화다. 조명은 중요하다. <올드보이>와 달리 인물은 시각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으로 간다. 시각적으로 풍성한 볼거리의 향연이 아니고 소박하다. 그렇다고 리얼리즘영화를 만들겠다는 건 전혀 아니고. -음악은. =빠른 바로크. 비발디를 많이 참고한다. 이 영화가 빠른 리듬을 가진 영화가 아니라서 상이한 음악을 찾고 싶었고 조영욱 음악감독과 거의 동시에 비발디의 아이디어를 냈다. -장도리를 이용한 롱테이크나 이빨 뽑기 같은 폭력의 테마는 이번에 어떤 식으로 다뤄지나. =그래피컬한 묘사는 별로 없다. 대신 폭력적인 느낌이 있는 시퀀스가 아주 길게 가는 게 있다. 폭력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폭력신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 여운은 길 것 같다. -몸에 대해 가혹한 편인데. =별로 없다. 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마음, 영혼에 대한 영화라서. (웃음) -영혼이라고 하니 다시 묻고 싶은데 인간이 자기 의지를 발현하면서 살 수 있다고 보나. =아니. 조금이라도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거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예술적인 통찰, 관점이 아니고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운명을 수용한다는 건 다른 차원일 수 있지 않나. =… 그런 건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예술적으로 비관적인 사람으로 내버려달라. 영화에서 결정론적 세계관이 자꾸 보이는 건 정말 염세적이어서라기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 근거를 대지도 못하면서 의지로 뭐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쉽게 말하는 것에 대한 반박의 의미가 더 크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몹시 어려운 것인데 선한 의지로 쉽게 할 수 있다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니까. -그런 결정론적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평론가 중에서 감독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진정성이란 말조차 쓰기 싫다. 이상한 조어다. 굳이 쓰고 싶다면 진심? 예술에서 그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해냈느냐 못해냈느냐가 중요한 거지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학적 기준도 아니고 윤리적 기준 같은데, ‘다른 건 부족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다’라고 일컬어지는 영화들이 가끔 있는데 이건 칭찬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잘 만든 영화인데 진정성이 없어서 싫다는 게 있는데 그건 못 만든 거다. -3월에 촬영이 끝나고 6월 개봉을 계획하고 있으면, 칸에 갈 수 있는 일정인 것 같다. =칸에 못 맞춘다. -그럼 칸에서 실망하지 않겠나. =맞춰보도록 노력은 하겠다고 말했는데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