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교육은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심근을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
본격적이고 고급적인 지식은 고등교육과정(대학)에서 접하게 되죠.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대입은 어떤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1. 대학에서 이루어질 교육의 수학 가능 여부
2. 입학 정원 안에 들어갈 수 있을만큼의 뛰어남.
1번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능하기에, 2번을 위주로 대입 방식이 결정 됩니다.
입학 과정을 아무리 뜯어 고친다 한들 지원자가 줄지 않는 이상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ex- 입시가 아무리 바뀌어도 서울대 인원은 그대로)
이런 현실적 고려 없이 남발하는 입시 개혁은 혼란만 가중할 뿐입니다. 아니 심지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뿐입니다.
요즘 대입에서 수시라는 것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수능 성적보다 한 두단계 더 높은 수준의 대학에 합격 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기 실력만큼의 대우를 받는 것이 공정한 일이니까요.
(또 수시는 정시보다 돈이 더 듭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부조리한 입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못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일부입니다. 이것은 부유층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론 부유층의 학생들이 평균적으로는 더 좋은 성적을 냅니다.)
이들의 학부모들은 소망합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이것은 부모로서의 소박한 바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속된 말로는 '뽀록'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물수능과 수시는 성공한 이들과 실패한 이들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미칩니다.
성공했다면 실력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은 그 사실 자체로, 실패했다면 자기 자식이 못나서가 아닌 운이 나빠서라는 위안으로 말입니다.
이런 심리적 현상은 정부에 입시 정책에 대한 비교적 낮은 반감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변별력 없는 수능과 로또성 수시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