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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안와서 써보는... 아버지 얘기
게시물ID : panic_841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타치츠테토
추천 : 30
조회수 : 322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10/28 04:47:34
안녕하세요. 공게에는 처음 글 써보네요~!
야심한 새벽에 잠도 안오고... 공게 눈팅하다가 몇년전 나름 소름돋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얘기가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2008년, 황당한 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시고,
(게임에 빠져 새벽까지 깨어있던 못난 아들이였던 덕분에
아버지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었습니다. 작별인사는 못했지만요...)
당시 부모님은 별거중이셨고 누나와 저는 어머니와 같이 살아서
아버지와 가끔 하는 식사 이외에는 교류가 거의 없었기에
전화해서 안부라도 물어볼껄... 목욕탕에서 때라도 한번 밀어드릴껄...
같이 낚시 가자할때 한번이라도 따라가볼껄...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원망들로, 그리움으로, 막막함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신기하게도 시간은 흘러 49제가 다가왔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창고에서 생전 낚시광이던 아버지의 낚시대를 발견하고,
어릴때 따라가서 아버지가 잡은 생선회만 먹어보던 제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큰 이유는 아니고 낚시대라도 드리우다보면
아버지가 했던 생각들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낚시대와 도구들을 챙겨 집 주변 바닷가로 동네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배를 타고 갯바위 등에서 낚시를 즐기셨기 때문에 대부분 장비가 고가였고
동네 방파제에서 사용하기엔 사치였지만... 손바닥만한 생선 잡는 재미가 나쁘지 않아
밤만 되면 동네 한량들과 낚시대와 버너를 챙겨 야광찌를 드리우고 라면에 소주한잔 하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잔잔한 파도소리에 마음의 안정도 많이 찾게 되었죠.
그러다가 멀지 않은곳에 배를타고 들어가서 작은 섬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곳이 있다는
친한 후배의 권유로 계획을 잡게 되었습니다. 배삯도 굉장히 저렴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어머니께는 전날 미리 말씀드렸고 새벽 5시 배를 타기 위해 4시에 집으로 후배를 불러
채비를 확인하고 짐을 챙겼습니다.
 
처음으로 갯바위낚시를 간다는 설렘에 현관문을 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려던 순간,
안방에서 어머니가 들릴듯 말듯 한 목소리로,
"OO야 낚시 가지마!" 라고 소리지르셨습니다.
분명 전날 계획을 미리 말씀드렸고 (걱정하실까봐 늘 가던곳에 간다고 거짓말 하긴 했지만...)
용돈까지 두둑하게 주셨던 어머니가 난데없이 가지말라고 하시니, 당황한 저는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안방문을 열었고, 어머니는 무언가 중얼거리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어머니를 흔들어깨웠고, 눈물을 글썽이며 잠에서 깬 어머니께서는
"OO야 낚시 가지마...가지마..." 라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평소에 예지몽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시던 어머니였기에, 그런 이상행동에
불안감이 엄습해온 저는, 일정을 취소하고 아침에 어머니께 이유를 물어보리라 다짐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어머니께선 저에게 "오늘만큼은 어디 나가지말고 집에 꼭 붙어있어라" 라며 신신당부 하셨고
궁금증이 목끝까지 차오른 제가 추궁하여 들은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너희아빠가 낚싯대 엄청 아꼈잖아, 꿈에서 니랑 아빠랑 서로 낚싯대 안뺏길라고 엄청 싸우는데
나중에는 너희아빠가 열받아서 낚싯대를 부러트려서 그걸로 니를 막 찌르더라.
니는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낚시대 안뺏길려고 발악을 하길래 'OO야 그냥 낚시 하지마'라고
소리질렀는데 그게 잠꼬대로 나왔나보다. 너희아빠가 진짜 낚싯대 뺏어갈려고 그런건지
니 지켜줄려고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어쨋든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어라"
 
이 얘기를 듣고 저는 어머니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교적 위험한 갯바위낚시를 간다는건
저와 후배만 아는 일이였고,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한 순간에 어머니가 소리 지르셨거든요.
정말 5초만 늦게 들었어도 예정대로 낚시를 갔을테고, 어떤 사고가 생겼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또 아버지 생전에도 섬낚시 가셨다가 너울파도에 휩쓸려 정말 죽다 살아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 뒤로도 가끔 낚시를 즐기긴 하지만 항상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 인생에서 가장 기묘하고, 또한 사무치게 슬픈 이야기로 술안주삼아 이야기를 풀곤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가게 운영하시느라 바쁜 와중에 피자 재료로 뚝딱 만들어주시던 불고기 볶음밥이 가슴시리도록 그립습니다.
 
나름 무섭기도 하고 신기했던 경험이라 공게에 올렸는데 재밌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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