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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과 교수님 페북
게시물ID : humorbest_8423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오레이비
추천 : 144
조회수 : 16113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2/21 21:02: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2/21 20:42:26
흐린 금요일 낮시간, 슬프다. 

한쪽은 지독한 불공정으로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온 나라가 들끓고 있고, 또 한쪽은 자신들의 나라와 선수가 충분히 금메달을 얻을만하다며 이 비난에 맞받아치고 있다. 각자의 말은 다 옳다. 17살의 한창 활력넘치는 소녀가 펼친 역동적이기 그지 없는 연기는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심판과 자국관중을 충분히 매료시킬만 했으며, 자신의 인생 절반 이상을 연기를 해온 24살 성숙한 여인의 마지막 무대는 얼핏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음악의 선정부터 조화까지 그 자체로 자신의 은반위에서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서사시였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두 선수는 각자에게 가장 아름답고 더욱 어울리는 스스로의 장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금이냐 은이냐는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대신해 앉은 15명의 사람이 내렸을 뿐이지만, 우리들 모두는 금도 은도 아닌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연기를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1억 5천만의 러시아 사람들 역시 소비에트 때부터 러시아 때까지 언제나 <침묵>으로 우회해온 여자 싱글 금메달에 대한 오랜 도전의 역사를 이루어낸 떠오르는 샛별이자 자신들의 집념과 노력을 구현해낸 소녀의 당찬 모습을 본 것이다. 모두가 감사하고 모두가 다시 보기 힘든 두 선수의 혼신의 연기를 본 것이다. 고맙고 이런 행운에 또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나 역시 섭섭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온라인 청원이 한창 이루어지던데 그렇게 의사표시는 분명히 하자. 난데없이 나타난 유럽 2위 경력 단 한번의 선수가 자신의 최고기록을 무려 20점이나 넘어서는 점수로 4년만에 한번 벌어지는 올림픽 금메달을 순식간에 거머쥐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해, 전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한 국가로서 의문제기는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심판 판정에서 한치의 오차나 부정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할 것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것이다, 최소한 온라인에서는 ... 

입에 담기도, 들어보지도 못한 온갖 욕설과 저주, 비참한 언어의 시궁창이 국경없는 인터넷을 타고 넘어 이곳 러시아에까지 마구마구 밀려들고 있다. 러시아인들이나 러시아 사이트, 러시아 계정 SNS에서 모국어를 조우하는 반가움도 잠시, ...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월계관을 수여받은 선수가, 그 소식을 알리는 의례적인 페이지가, 별다른 생각없이 자국선수의 금메달에 기뻐하는 평범한 러시아 시민들이 왜 한국어로 욕설 린치를 당해야 하나, ... 

그런 금메달을 사전에 짬짜미한 대로 주고 받는 것이 그 나라의 국격이다라고 말들 하고 있지만, 진정한 국격은 언어의 토사물을 아무런 규칙도 한계도 모른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혀 상관없는 곳에 마구잡이로 쌓아놓는 수많은 무리를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거느리고 있는 이 나라의 국격 또한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억울함과 답답한 심정이 상대에게도, 3자에게도 제대로 전달되려면, 제대로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외면하기 힘든 증거를 갖춘 정당한 어필이, 비록 당장은 원하던 결과를 얻어 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일 또 다시 이런 억울함이 되풀이 되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막아줄 순 있을 것이다. '쟤네들, 함부로 건들긴 뭣하다', ... 라는 생각은 그래도 조금은 할테니. 그럴려면, 무엇보다도 지금의 이 온갖 욕설과 더러운 말들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러시아 땅에서 욕먹이는 짓은 그만 둬야 한다. 

나름 러시아를 모르진 않는다고 생각한 나 역시 이번 일은 실망스럽다. 그래도 러시아는 러시아답게 조금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믿었던 부분이 커서 그런가 보다. 마찬가지로, 나름 한국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다른 러시아 친구들 역시 이번 한국인들의 집단 항의로 복잡하면서도 그들 역시 <울분>에 차있는 듯 싶다. 

그렇다. 러시아 말 몇마디 지껄이고 거기 몇년 있어 봤고, 그 사람들 좀 겪어 봐서 지가 대단한 척 싶었지만, 역시 김치냄새나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역시 그렇다. 나름 그 어렵다는 한국말 좀 할줄 알고, 한국에서 부대끼면서 좀 살아봤고, 한국사람들 심리 좀 안다고 생각했던 그들 역시 음흉한 불곰국의 멘탈리티로 무장한 쏘련의 시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를 낳고 오늘이 있기까지 길러준 조국 다음으론 그 어떤 다른 나라보다 러시아에 대해, 한국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며 또 기뻐해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소중한 친구들이다. 잃기란 금방이지만 얻기는 또 어려운게 친구이지 않은가? 돈 몇푼으로 밥 한두번, 술 몇번, 클럽 몇번 가서 부동켜 안고 춤춘다고 친구가 되나, ... ?? 생각이 통하고 마음이 맞고 <아껴줘야> 친구가 되지 않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돕는 사람이 친구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라면 이럴때 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피끓는 젊은이들, 당신들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의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 명색이 접장이라 <꼰대 기질>로 한마디만 하자면, '세상 그 어느 것도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별다른 생각없이 오늘 너도나도 던지는 그 한마디가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조금 비위 상한다고 인터넷에서 가리지도 않고 이놈 찾아가 욕하고 저놈 쫓아가 욕하고, 지금은 시원하고 재미도 있겠지만 ... 그러다가 유럽 배낭 여행 중에 스킨헤드에게 얼굴이 짓이겨질 정도로 쳐맞을 수도 있고 나중 나이들어 사업한답시고 동남아 다니면서 돈질하다가 납치당해 개죽음 당할 수도 있다. 더 문제는, 막상 너네들이 저지르고 있는 오늘의 이런 무수한 혓바닥 손가락 패악질 때문에 엉뚱한 다른 사람들이, 그저 성실하게 묵묵히 최선을 다해 낯선 이국땅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순하기 그지없던 다른 사람들이, 그저 Republic of KOREA의 국민이란 이유 만으로 더없이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 

증거가 어딨냐고? 바로 너네들이 한국에 있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단지 <러시아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방금까지 싸질려 놓은 온갖 그 욕설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 러시아 사람이 "솥뚜껑"이란 말로 비칭되는 소트니코바라는 17살 먹은 선수랑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냐, ... ?!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 아니었는데, ... 쓰다보니 또 울컥해서 이렇게 엇나가 버렸다. 하지만, 별로 고치고픈 마음도 아니다 ...

<출처 :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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