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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조금 일찍 이별했을 뿐이잖아요.
게시물ID : gomin_842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sdas
추천 : 0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09/12 00:33:59
#1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맛있는 걸 좋아하고, 뛰어 놀며 장난치기도 좋아했지만,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릴때에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초등학교때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홀로 저녁을 차려먹고는 했습니다. 그런 소년이 중학교 2학년때. 학교 점심시간에 담임선생님에 의해서 외할머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오셔서는 평소의 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빨리 짐을 챙겨 집으로 가보라는 선생님의 얼굴은 신기했을겁니다. 흐트러짐이 가득한 표정. 그때 소년은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왠지 오후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며. 바보같이 히죽거리며 집에 갔더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미 까만 옷을 입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몸을 죄는 불편한 교복을 벗으려던 소년은 그냥 가자며 팔을 잡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머니의 눈을 보고는 목 끝까지 올라온 투덜거림을 도로 꿀꺽 삼켰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외할머니는 어릴 때 소년과 함께 였습니다. 시골집과는 다른 아파트 7층의 삭막한 그 곳에서, 물을 줄 식물도, 쪼르르 흐르는 냇물도, 가마솥의 밥 짓는 연기도 없는 그 곳에서 언제나 소년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은 차곡차곡 쌓여서 잊혀지는 법일까요. 어쩐지 외할머니의 장례 내내, 소년은 전혀 슬프지 않았습니다. 특히, 시골에서 치뤄진 전통장례는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굽고 노는듯한 분위기였던 만큼 실컷 먹고 놀았더랬지요. 그저, 외숙모들과 외삼촌들. 어머니의 통곡소리만큼은 계속되어서, 저러다 쓰러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웃음과 울음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 곳에서, 소년은 죽음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지요. 그 소년이 지금도 후회하는게 있다면, 아마도 키워준 외할머니가 가는 길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외할머니는 왠일로 온 가족에게 전화를 돌리며, 보고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정정히 마당을 쓰시고 소 여물을 끓이던 외할머니. 언제나 허허로이 웃으며 바쁜데 뭘 내려오냐던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가, 화라고는 낼 줄 모르던 그 분이, 늙어서도 굽어짐 없는 등으로 선선히 웃음짓던 그 분이, 직접 전화로 보고싶다며 가족들을 불렀지요. 그리고, 소년의 어머니는 다른 가족들 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내려가지 않았지요. 고작 차로 두시간이면 가는 거리였는데. 단 하루, 그 하루를 내지 못하여서. 결국, 외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새벽에 비질을 하시고, 아침식사를 절반쯤 드신 뒤, 아랫목에 앉아 커피를 반잔쯤 남긴 채, 조용히 피곤하다며 누우신 후 웃음을 지우지 않으신 채 그렇게 홀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하게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때때로, 집 여기저기에서 소년의 엄마는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혹은 가끔 잠자리에서 소년의 엄마의 어머니를 찾고는 했지요. 소년은 그 모습이 어린마음에 생소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동안 습관처럼, 그때 시간내서 얼굴 한 번 못 뵌것에 대해 자신을 탓하며 눈물을 훔치고는 했습니다. 어릴 때 막내 딸이라고 서울로 유학까지 보내며, 앞으로는 여자들도 사회생활을 할 꺼라고, 너는 잘 배워야 한다며 묵묵히 시골에서 뒷바라지를 해주던 엄마의 어머니. 소년의 엄마는 그렇게 가끔 꿈 속에서 딸로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때로는 어린이가, 때로는 어른이 되어서 대답없는 엄마의 엄마를 찾아 헤맸지요. 그리고는 잠꼬대처럼, 차라리 아프다 가셨으면 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을 거라며 조용히 흐느끼며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나 소년은 그저, 숨죽인 채 자는 척 하며 그 슬픔을 듣는 것 밖엔 할 수 없었지요. 그때 처음으로, 소년은 기억 밑바닥에 소중히 남겨둔 먼지쌓인 기억을 들춰내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선선히 웃으며 공부 열심히 하라던 외할머니가, 만화 비디오를 그만 보라면서도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한장을 쥐어주시던 외할머니가, 마을 어귀까지 나와 돌아가는 차의 꼬리를 바라보던 작은 외할머니가 정말 이젠 어디에도 없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지요. 그때서야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죽음이라는건, 이렇게 여러 사람의 가슴 한켠을 떼어 도망 가는거라고. 몰래 야밤에 들어오고 나가는 도둑님처럼, 사람들 가슴을 도려내어 도망간다고. 그래서, 그 메꿔지지 않는 상처난 가슴에 한 바가지의 눈물과 슬픔을 쏟아부어야, 겨우 흉터가 생기고, 그때서야 다시 웃을 수 있는거라고. 그 때서야 비로소, 소년을 벗어난 청년은 외할머니가 가신 길에 뒤늦게 눈물 한방울을 흘려보낼 수 있었더랍니다. #2 신기한 일이었다. 가슴은 무너져 있는데 눈물은 멈추지가 않는데 배는 꼬르륵 거린다. 이래서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하는걸까. 누가 보면 놀랄만큼이나, 나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어 하지만 나는 정말 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미안할만큼. 아, 비가 잔뜩 온다. 엄마는 이런날 어떻게 빨래를 했더라. 주섬주섬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어본다. 세제를 툭툭 뿌리고 버튼을 꾹 누르면 아무도 없는 집 안에 사람 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얘! 까만옷은 흰옷이랑 돌리면 안된다니까!!!" "아 맞다!!" 귓가에 꽃히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세탁기 뚜껑을 열고 중지 버튼을 마구 눌렀다. 털털거리는 세탁기가 멎어들어가 조용해 진 집에서,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고개를 아무리 둘러보고, 방문을 열었다 닫고, 불을 껐다 켜 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분명히 들었는데. 엄마, 나랑 숨바꼭질 하자는거 아니죠? 엄마 나이를 생각해요. 나도 나이가 있는데, 빨리 나와요 엄마. 나오라구요! 우우우웅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아 있었는데,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그 것에는 몇몇 사람들이 보낸 위로와 격려의 문자라든가, 부재중 전화등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모두 보기싫어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내어 버렸다. 나는 훨씬 잘 하고있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면 안된다고 격려받지 않아도, 나는 잘 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 난 충분히 힘도 내고있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위로하지 말아요. 그냥 숨바꼭질 중이에요. 난 술래일 뿐이에요. 다 젖어버린 옷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대충 대야에 모아두니,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다시 학교에 간 동생들은 급식을 먹겠지. 나는 엄마가 남겨둔 몇가지 반찬을 꺼내어 홀로 밥을 먹었다. 한 공기를 다 먹어도 배가 고파서, 두 공기를 비워내었다. 너무 맛있었다. 다시 먹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집에서 밥좀 많이 먹을걸. 이렇게 맛있는데. 숨바꼭질 중에 반찬좀 만들어 달라고 할수는 없겠지. 해는 길게도 구름사이에 숨어있고, 나는 그저 말없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쌀을 씻었다. 가끔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잔소리에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는 했지만, 나는 다시 집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알고 있다. 엄마는 없다. 나의 엄마는 이제 어디에고 없다. 나는 무너지면 안된다. 그러니까, 허리를 꼿꼿이 펴자. 달그락 달그락 쿵쾅쿵쾅 위이이잉. 한바탕 집안일을 끝내자 등허리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는 매일 이렇게 일했던 거구나. 아, 다시 비가 내린다. 이러면 빨래가 마르지 않을 텐데. 엄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건 가르쳐 주고 가면 좋았잖아요. 나 알아요. 그게 아쉬워서, 가는길에 계속 울고있는 거잖아요. 힘 내야하는데, 엄마가 계속 울면 해가 뜨질 않잖아요.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 설 수 있게 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알려줘요, 엄마. 나는 힘이 나지 않아요 힘내라는 말을 들어도. 이를 앙다물고 버티고 있어요. 무너지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조금 빠르게 이별한 것 뿐이에요. 그렇죠? 내가 이렇게 밥을 잘 먹고, 잠도 잘 자도 엄마, 화내지 않을꺼죠?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에요. 금세 괜찮아 질 거에요. 괜찮아요. 말처럼 쉽지는 않네요.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나 다시 웃을 수 있겠죠? 언젠가 꼭 꿈에 나타나면 말해줘야해요. 그리고 내가 말할 기회도 줘야해요. 나, 여기에 태어나서 행복했어요. 엄마는 행복했겠죠? 벌써 저녁때네요. 밥을 먹어야 겠어요. 슬픔은 아래로 흘러도, 난 밥만 잘 먹네요. 오늘따라, 그만 좀 먹으라는 말을 듣고싶은데..... 빨래를 해야겠어요. 비가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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