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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학계에서 주장하는 삼국의 건국 기년
게시물ID : history_17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저물어간다
추천 : 12
조회수 : 1487회
댓글수 : 47개
등록시간 : 2014/07/13 15:27:13
본 글의 내용은 서울대학교 노태돈 교수의 '[남북 역사인식 비교 8] 삼국의 건국 시기'의 내용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1. 고구려
 
 1991년도에 간행된 「조선전사」 3권 (중세편 고구려사)에서는 고구려의 건국 연도를 기원전 277년이라고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고구려 말에 존재하였다는 비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건국 후 900년, 또는 1.000년이 못되어 멸망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서기 668년에 멸망하였으니, 기원전 200년대에 건국되었다는 이야기.
 
 2)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마지막 부분에 적힌 사론에는 "고구려가 진, 한 대에 중국 동북쪽 모서리에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즉, 고구려는 진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에도 존재하였을 것이다. 당시 요하 하류엔 고조선이 있었고, 진과 고구려가 경계를 접하려면 고구려가 요서에 진출해야 한다. 압록강 중류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요서로 진출하려면 적어도 수십 년을 흘러야 하니까, 기원전 221년으로부터 적어도 수십 년 전에 건국되었어야 한다.
 
 3) 삼국사기에 따르면 광개토왕은 19대 왕이니 세대수로는 추모왕의 12세손이다. 반면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이 추모왕의 17세손이라고 되어었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따르자면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왕들보다 다섯 명이 더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그 다섯 명의 재위 기간도 더해야 한다.
 
 4) 중국 사서 삼국사기엔 보이지 않는 초기 왕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삼국사기에서 누락된 왕들 중 몇 명일 것이다.
 
 5) 삼국사기에 적힌 고구려 왕들의 재위 기간을 살펴보면 누락된 다섯 임금들의 시기는 대략 190~270년 정도이다.
 
 6) 우리나라는 간지로 기년을 표시했다.동명왕은 계해년에 태어나서 갑신년에 건국하고 임인년에 죽었다. 진의 중국 통일기인 기원전 221년으로부터 수십 년전에 고구려가 있었으므로, 그 이전의 갑신년에 해당하는 기원전 277년이 고구려의 건국 연도가 된다. 이는 삼국사기의 연도(기원전 37년)보다 240년 일찍이다.
 
 7)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대는 신라 사관들의 조작이었다.
 
 8) 기원전 3세기 초엽 압록강 중류 지역의 주철 제강 기술의 발전 덕에 성능이 좋은 철제 물품들이 보급되었고, 이 덕분에 생산력이 증대되고 사회변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고구려보다 앞서 존재했던 구려국이 해체되고 봉건국가인 고구려가 등장했다.
 
 
2. 백제
 
 고구려의 건국 연도가 상향 조정되었으니 추모의 아들인 온조가 세운 백제 역시 시기를 올려잡는다. 신찬성씨록에 기록된 백제계 인사들에게 '추모왕의 몇 세손', '추모왕의 몇 대손'이라 되어 있는 것들을 검토하여 백제의 건국 연대는 220년 가량 상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원전후 북쪽으로 예성강, 동쪽으로 춘천, 남쪽으로 웅천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마한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삼국사기 온조왕 대의 기록도 근거가 된다. 그리고 기원전후에 백제가 마한에게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가 된 시기의 왕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북한학계의 독자적인 의견이 존재한다. 
 
 
 온조와 구태로 보는 견해들인데, 이 시기의 왕을 온조로 보는 쪽에서는 초고왕-근초고왕, 구수왕-근구수왕 같은 사례를 들어 백제를 세운건 온조왕이고, 기원전후의 왕은 근온조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라의 사관들이 백제 초기의 기록을 잘라내면서 근온조왕을 온조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 중.
 
 
 한편 구태설 주장 측은 중국 사서의 구태 관련 기록을 높이 산다. 그리고 원래는 동명왕을 시조로 모셨으나,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동명왕 대신 구태왕을 시조로 제사 지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역시 후기 신라의 사관들이 초기 백제사를 절단하면서 구태왕 대신 온조왕을 시조로 설정하였다고 말한다.
 3. 신라
 
 삼국사기의 건국 연도인 기원전 57년은 실제보다 상향 조정 된 것이라고 주장 중. 그 근거 중 하나가 비미호의 사신 파견 기사인데, 신라본기에는 173년에 보냈다고 되어 있는 반면, 삼국지에는 238년과 247년에 비미호의 활동 기록이 보이므로 신라본기의 연도는 간지를 60년 올린 것이다.
 
 
 그리고 신라본기의 일부 기록들은 아직 사로국이 진한 12의 하나였을 때를 보여준다. 즉, 봉건국가인 신라가 건국하기 이전의 일들까지도 신라의 연도를 끌어올리면서 포함시켜 마치 신라가 기원전 57년부터 있었다는 듯이 기록했다는 것. 그래서 신라의 국가 형성 시기는 기원후 1세기 초, 중엽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신라의 건국 연도가 백제와 고구려보다 앞서는 것은 신라의 사관이 신라짱! 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 한심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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