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일제의 800만 조선 농민 강제이주계획
게시물ID : sisa_17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툰
추천 : 11
조회수 : 54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05/11/21 16:18:32
"일제, 40년대 수도 이전 추진 도쿄서 용인으로 옮기려 했다" 
 
 

[중앙일보 허귀식] "1940년대 한반도.만주.대만을 강점하던 일본이 수도(도쿄)를 한국 용인으로 옮기려 했다." 

경원대 총장을 지낸 김의원(74.대한건설진흥회 회장) 박사는 틈틈이 수집한 120여 권의 희귀 자료를 2001년 국토연구원에 기증한 뒤 최근 발간한 자료 해설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40년대 초 15년 후를 목표로 입안한 비밀 국토계획인 '중앙계획소안(中央計劃素案)'에서 경성부(서울) 남쪽 교외, 일본 내 오카야마와 후쿠오카 등 세 곳을 대동아권의 수도 이전 후보지로 제시했다. 당시 서울 인근은 지진이 없고 일본 세력권(만주-한반도-일본)의 중앙에 위치해 일본이 수도 입지로 탐낼 만했다는 것이다. 새 수도에는 왕궁과 정부 기관만 이전할 계획이었다. 

김 박사는 "나중에 일본 전직 관리 등과의 면담에서 수도 이전 후보지였던 경성 교외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가 있는 계곡 일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제는 용인 지역 측량까지 마쳤고, (옛)건설부 도로과장을 지낸 이헌경 대한콘설탄트 회장도 광복 직후 도로과 서류함에서 측량 도면을 봤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961년 일본의 국토계획협회가 발행한 "국토종합개발의 역사". 중앙계획소안은 일본 본토와 조선.만주.대만에 걸쳐 지역별 산업 생산 목표를 제시한 뒤 내지 150곳, 조선 23곳, 대만 20곳 등 총 193곳의 공업지구를 지정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자리를 일본 농민 800만 명으로 채운다는 것이 전제였다. 이주 계획이 실현됐다면 일본인은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김 박사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 계획은 실현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만주로 쫓겨났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55년 서울시 도시계획전문위원을 시작으로 건교부 도시국장.국립지리원장.국토개발연구원장.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국토정책 전문가다. 해설서 전문은 국토연구원 홈페이지(www.krihs.re.kr)에서 볼 수 있다. 

허귀식 기자 [email protected]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 일제의 만행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