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연합정부를 구성하자는 대연정을 제시한다. 노무현의 정치 인생 자체의 사명이었던 영호남의 뿌리 깊은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회심의 카드였다. 하지만 박근혜 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고, 임기가 중반이라 몇년만 있으면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큰데 국정 운영의 공동 책임을 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진보진영 지지자들이 절대악으로 적대시하던 한나라당과 손잡는다는 비판으로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이 수직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인 안희정 지사가 대연정 제안을 다시 꺼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청산 세력으로 규정되는 새누리당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안희정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대연정 카드를 다른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과반도 차지하고 있질 못하다. 지난 탄핵 의결때에도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찬성하지 않았으면 탄핵은 절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보수와 진보도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어떤 대선주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염려될 지경이다. 그러므로 안희정 지사가 말했듯이 정부의 개혁 방향에 동의한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연합정권을 구성해야 개혁입법을 통과시켜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시스템을 개조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보수정치권에 대한 절묘한 신의 한 수이다. 보수정당들이 연정 카드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새로운 정권의 개혁 방향에 동의하여야 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여러 정책과 입법이 수월해지고, 연합 정부이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을 보수와 진보가 공동으로 지게 된다. 또한 안희정 지사가 늘 주장해온 외교, 안보, 통일 분야에 대해서만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국익을 위한 단결된 합의를 만들어 추진해보자는 구상도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보수정당들이 이 연정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부터 자신의 권력을 축소하고 그 권력을 야당에게도 나눠주어 협치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만약 개혁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딴지를 걸 수 있을까? 만약 보수정당이 이러한 구태의연한 정치를 반복한다면 3년 후 다가오는 총선에서 보수 정당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궤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즉 안희정의 대연정 카드는 보수정당이 받자니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완전히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는 길이고, 안 받자자니 수천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내린 준엄한 명령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방지와 국가대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거부하는 구태 정치 세력으로 낙인 찍히는 결과를 초래하는 외통수이다. 그야말로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가 던질 수 있는 최대의 히든카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제안을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가 해야지, 지지율 겨우 2위로 올라선 안희정 후보가 당내 경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의 지지도까지 깍아 먹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뿐이다. 국회의원 보좌관부터 시작해 유력 대선후보에까지 오른 정치 경력 30년의 안희정의 깊은 정치 내공을 믿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