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봐야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양복을 잘 차려입은 두명이 한명의 평범한 복장을 하고 들어온 이와 들어온다.
양복쟁이 중 선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어색한 응대형 웃음을 그것도 어설프게 지으며, 어설프게 이야기한다.
'신분증 팩스 한번만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말하는 제스쳐에서 손목 양복 끝자락에 금팔찌가 눈에 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굴은 목색과 다르게 어색한 흰빛을 띄고 있다.
문득, 겉모습만 보고서 내가 알고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라 내 스스로 단정짓고 대하지 않을까 싶어 애써 의구심을 누른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얼굴이 어색하게 흰빛을 띈, 선임 양복쟁이가 역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의 정면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15도 정도 회피하면서 눈알을 굴린다.
불과 0.3초.
'대구에서 왔습니다.'
내 말의 늬앙스가, 어느소속, 어느 회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회피한다. 2차 추궁.
'아니 이 쪽에서 못 뵌분들 같아서, 어느 업체나 회사에서 오신건지 물어본거예요'
'그냥.. 작은 회사에서 왔는데요'
뒤돌아서며, '아.. 네~ 팩스번호요~'
30km 짜리 야간행군을 드디어 복귀하고 내 뱉는 구호처럼, 긴 터널을 통과하하고 내 뱉는 목소리처럼 그가 팩스번호를 부른다.
'02-XXX-XXXX'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릿속에 팩스번홀 되뇌인다.
팩스를 보낸 신분증은 평범한 옷을 입은 이의 신분증.
불과20대 중반은 되었을라.. 0.6초정도 얼굴을 확인하니, 멀쩡해보이면서도 뭔가 조금 나사하나가 빠져있는 듯 한 얼굴표정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얼굴표정이 아니라 얼굴 그 자체이다. 어쩌다 짓는 표정이 그런것이 아닌 원래 좀 모자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아닌 표정.
양복쟁이들과 그와의 사이가 돈독해보이지 않는 분위기로 짐작컨데, 사적인 관계가 아닌 업무적인 사이리라..
신분증을 건네주니 평범한 복장의 남자는 불안과 안도감 다시 불안감의 표정을 0.3초만에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나간다.
아까 머리속에 넣어둔 팩스번호가 날아가기 전에, 검색해본다.
'XXX 저축은행' ...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에서, 직업이나 부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게 어찌보면 유용하지만 결코 좋은게 아니다.
말투와 눈빛과 얼굴표정의 3박자를 0.5초 이내에 읽을만큼 예민하다는 것 또한, 결코 좋은게 아니다.
황금과도 같은 20대 초중반의 한 인생이.
양복쟁이들로부터 인생길의 1도의 각도가 틀어지는걸 느낀다.
물정모르는 불안한 표정의 20대의 저 사람은,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양복쟁이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각도가 더 벌어져가겠지.
저축은행을 확인 한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의협심은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내곤,
이내 무력감이 차오르며 애꿎은 담배한개비만 태워버린다.
양복쟁이는, 원래 양복쟁이였을까. 또, 그들은 자신들이 양복쟁이라는걸 알고있을까.
그래도. 사람은 다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