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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본다. 일진들은 사회경험 없는 어린애들로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것 뿐인 쓰레기로 엇나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격하고 규칙위주인 사회에 적응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배달부, 잡역부가 되거나 성공한 왕따, 모범생의 밑에서 살게 된다는.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일진이 불행해지고 벌받는다는 이야기는 이 경우에 쓰인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것 처럼 인생의 목표도 없이 힘 과시, 쾌락만을 위해 사는 단순한 두뇌를 가졌거나
운이 좋지 않아 집안이 망하거나 능력 부족탓에 하는 사업이 잘 안 되는 경우. 즉, 천재지변이나 자기
능력이 따라주지 않거나 멍청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 사는 것 처럼은 살고, 대부분 그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일진이란 단어는 생소했지만 짱이나 통, 등으로 불리우는 부류의 학생들은 역시 존재했다.
개중에 집안이 어려워 막노동을 다니던 아버지를 가진 아이와 부모가 이혼하고 방황하던 아이, 가정불화로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해 공부는 뒷전이고, 말썽쟁이로 교사에게도 눈엣가시 취급을 받으며 학교에 흥미를
잃은 아이. 친구집을 전전하며 돈뺏고 여자만나며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전형적인 일진들이 있었다.
내가 만난 "일진"들중 정말 겁이 나는 건 그 애들이 아니었다.
난 평범한 학생들처럼 돈을 뺏기고 얻어맞고 집에 찔찔 짜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그녀석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미래는 불보듯 빤했다. 공부를 안 하니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누군 스무살 남짓에 애를 가져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꼬시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땐 걔들을 무서워했지. 싶기만 하였다.
연예인같이 잘 생기고 선한 인상의 전교 회장이 위의 애들을 시켜 약한 아이들을 조롱하고 때릴 때.
살던 지역 국회의원의 딸이었던 소녀가 같은 반 못사는 여자애 집에 들어가 그녀를 구타한 사실을 자랑스레 늘어놓았을 때,
전교 3등의 공부잘 하고 리더십 있던. 나조차도 친구하고 싶던 멋진 녀석이 돈을 뺏고 구타하고 담임교사를 음담패설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앞에서는 천사같은 미소를 지을 때 무서웠다.
내가 학창시절 만난 세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평균은 되는 외모와 좋은 머리와 리더십이 있었다.집도 부유했고 부모도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여자애가 자기 엄마가 유명한 음대를 나왔다고 자랑한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의 손은 전혀 더럽히지 않았다.
전교회장은 우리 반의 봉사활동을 주도해서 우리 반이 교장선생님의 상을 탄 적도 있었다.
방과후 반 아이들을 집에 못 가게 하고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게 시켰다. 자의로 한 게 아니었다. 학원에
가야 한다며 집에 가려는 여자애에게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며 모든 아이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그 애가 집에
돌아갔으면 반의 왕따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또 얼마간의 돈을 걷어 기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거둬갔고
기부도 한 모양이지만 그 돈의 3분의 1정도는 회장과 그 무리가 쓰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중학생 시절 우리반은 학교의 자랑이었다. 실상은 지옥이었지만.
이렇게 어른들은 칭찬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천사들이 뒤에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위험한 사람을 보는 눈을 배웠기때문에 민감해졌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의 어른들과 그들의 부모는 자기들 편하자고 애들의 고통은 모르는 체 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길가다 현장학습 가는 애들만 봐도 누가 어떤앤지 느껴지는데 몰랐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인생이 영 좋지 않게 흘러간 애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런 엘리트형(??)일진들의 이야기도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듣거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유학을 간 누구, 좋은 회사에 들어간 누구,
충격적이었던 건 담배에 욕설에 금품갈취, 학교폭력은 다 저질렀던 여자애가 고급스런 말투의
단아한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있었다는 것... 실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것이다. 그 악독하고 마녀같다고
생각했던, 남자아이들도 무서워 덜덜 떨던 악행을 저지르던 여자가,일진 남자애들을 시켜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아이들을 때리고 돈을 뺏고 고문하던 여자가 완전히 다른 기품있는 아가씨가 되어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녀에게 고문받던 한 사람이 나였을 때 느껴지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녀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추앙하는 동창들의 태도였다. 구토를 할 뻔 했고 2차를
가자는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여자의 애인은
그여자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사인줄 알 고 있었다.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일진들이 배달부의 미래가 된다는 글을 보면 슬프다. 차라리 그들은 비뚤어질 이유라도 있었다.
가정불화, 이혼, 가난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누구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해댔고 누구는 혼자인
엄마가 일하러 밤늦게 들어오지 않자 코묻은 이불을 둘둘 싸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나쁜 형들을 만나 멋모르고
따라다니다 10대 중후반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깡패가 된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유라도 있다.
그래서 요즘 이슈인 성지고 다니는 애들이 어떤 가정사를 갖고있는지 모르는 나는 그들을 마냥 욕하고싶지 않다. 100명의
살인자 중에도 정당하다면 용서받아야 할 한 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돈을 뺏고 발로 차던 양아치 녀석들을 나는
용서한다. 그들은 남들의 욕을 충실히 받아먹고 있다.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잘못들을 계속 저지르면서
진흙탕속에서 살다보면 최후에는 자기가 뿌린 죄를 돌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영리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줄 알고, 연기를 잘 하는 엘리트형 일진들은 그렇게 멍청하게
살지 않는다. 여전히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고 밖에서는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말투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것이다.
난 그게 더 무섭다.
결론적으로는 인과응보는 있는지 없는지 인생의 끝에 가면 알게 되겠지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것이다. 그 일진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이 드러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것이 뻔한데도 도리어
뻔뻔하다. 오죽하면 성폭행 가해자들이 더 떵떵거리고 다니는 세상이다. 왕따당하던 학생이 송포유에 나오는 학생들
처럼 대중의 욕을 들었다면 진작에 자살했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타인의 의견따위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공감할줄도 모르고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죄의식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 잘 먹히는
성향이다. 잘못을 해도 웃어넘기고, 남을 적당히 해할줄도 알고, 그것이 영웅담처럼 회자되는것이 사회다.
남들을 괴롭히라는 것은 아니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피해자들은 좀더 독하게 버텨야 할 것 같다. 저 죽어
마땅한 인간들도 살아있는데 왜 그대들이 우울증 약을 먹고 자살을 꾀해야 하는지. 저들은 수십만 국민들의 욕을
먹으면서도 폴란드 클럽에 가는데 왜 그대들은 집에서 젊음을 썩히고 있는지. 송포유를 보며 단 하나 배울점이 있다면
이거같다. 그래서 나도 버티련다. 그려자 얼굴도 넉살좋게 보고 더 재밌게 살려고 한다. 무서운 년이라 나한테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아직 있지만 난 약한 중학생이 아니다. 혹시 또다시 나를 건드리려 한다면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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