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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나는 누구란 말인가
게시물ID : panic_846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패기돋움체
추천 : 5
조회수 : 14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20 15: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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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표현 있습니다.


시방 나는 누구란 말인가.


또 다. 벌써 일 주일째다.
콰르르-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일 주일째. 들어 갈 줄은 알면, 나올 줄도 아는 것이 당연할 진데 지금 내 속은 그렇지 아니하다. 일 주일간 먹은 것이 족히 9kg은 넘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껏 나온 것을 모조리 합하여도 짐작컨데 채 1kg도 넘지 않을 것임을... 남에게 말하여도 다들 우스갯소리로 치부하여 가벼이 넘어가고 그러는 것이다. 나 홀로 속 갑갑히 여기고 고민한다 한들 무슨 결과가 나오리. 결국 나는 옷을 차리고 대학 병원으로 향하였다. 선생님. 제가 요즘 먹는 것에 비해 나오는 것이 적습니다. 무슨 큰 병이 아닐까요. 아닐 겁니다. 아마 단순한 변비일겁니다. 혹시 모르니 내시경이라도 해보시겠습니까. 아... 변비라니. 이 얼마나 면 팔리는 일이란 말인가. 아아... 아닙니다. 약만 처방해 주십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계속 이러시면 내시경을 받아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변비가 맞을까. 내 여지껏 변비라는 것을 앓아 본 적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내 직감이 아니라 말한다. 변비라면 으레 묵직하게 속이 찬 느낌이라야 할 것을 지금 나는 오히려 뱃속이 개운한 것이다. 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일단 조용히 처방전을 받아갔다.

오늘로 여드레째.
처방 받은 약을 먹었지만 오늘도 여전히 배만 아플 뿐 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삼십여분 앉아 있으려니 똥물만 찍 나오더니 말았다. 이게 어쩌면 심각한 병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몰린다. 사실 사흘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는 나오는 것만의 문제가 아닌 들어가는 것의 문제였다. 이상한 것이 들어가는 데도 감각이 없고 나올 때는 더 더욱 없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감각은 한결 같으니 이것 참 문제가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어제까지는 먹기라도 했다. 극한을 알기 위한 실험의 일환이었으나 들어가는 차는 감각이 없는 것이다. 실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에 오늘은 먹지를 않기로 하였으나 공복의 감이나 식욕따위는 아무렇지 않아 실험에 무리는 없었으나 걱정만 깊어졌다.

결국 열흘 째가 되어서야 내 발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시경... 해봐야겠습니다. 처음에는 나가는 것만 문제였는데 지금은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고 모조리 검사해주세요. 아 그렇단 말씁이십니까. 걱정마십시오. 저희가 성심껏 돕겠습니다. 말을 마친 의사는 입원부터 하라하여 지금 침대에 누워 천장의 벽지 이음새만 보고 있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의학 발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을 보세요. 당신의 내장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아니라니. 이 주 전까지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입니다. 제 말은 지금도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의학의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뱃속에 들어 찬 장기는 현재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더욱 놀라운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아시겠습니까. 그 뱃속에 들어찬 장기가 조금씩 인간의 것이 아니게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인간이 아니게 변해간다는 말씀입니다. 아... 이 아득해지는 정신. 나는 고만 말을 잇지를 못하였다.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온통 알 수 없는 소리이거니와 나는 아즉 사람인 까닭에 말을 잇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입을 다물고 내 뱃 속에 들어찬 남의 장기의 생소함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이 위대한 발견을 저를 위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몸뚱이를 내게 주십시오. 나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 하였으나 악력 좋은 간호사의 손에 붙들리어 병실에 갖히고야 말았다.

달이 바뀔 때까증 나는 갖히어 사육되는 짐승마냥 모이를 주는 것만 받아 먹고 있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했으나 이런들 저런들 결과는 똑같은 것이다. 요즘은 이따금 가만 있어도 염통이 벌렁거리는 것을 느낀다. 세차게 벌렁이는 그것을 느끼면 나는 누구인가...한다. 이런가 하면 죽을 듯이 뛰지 않기도 하여 내 숨을 간당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다고 허파마저 내 것이 아니어 숨일랑가 내 내키는 대로 쉬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것이 제 맘대로 들이 쉬니 음식이고 물이고 다 그리로 넘어가 나를 죽이려 들었다. 이리 살아 무엇하나 싶어도 죽으려니 제 멋대로 꿈틀대는 이 염통이 죽도록 미우려 한다. 아... 나는 시방 누구란 말인가.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사람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제 말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나를 의심하는 의사의 얼굴이 꼭 말의 것처럼 번들거리며 토악질이 올라오게 하지만 내 위는 내 위가 아닌지라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이라 갑갑한 것이 보통이 아니라 괴롭기까지 한 것이다.

오늘은 손톱이 빠졌다. 근데 그 아래 속살이 쓰라리기는 커녕 아무런 감각이 없다. 의사에게 보이기 싫어 아닌 채 하고 빠진 손톱은 먹어버렸다. 그 손톱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생경한 감각이 느껴지기에 아... 나는 아즉은랑 살아 있구나 하였으나 이내 그것이 지나는 감각이 사라져 나를 미치게 하였다. 내 무엇이기에 이리 살아야 하는가.

아!!!
안된다 하였으나 기어코 의사가 그 날 선 매끈한 메스로 내 팔뚝의 생살을 찢고야 말았다. 결국 빠진 손톱이 들켜버렸기 때문이라. 메스가 닿는 팔이 화끈하였다. 그것은 내 것인 까닭이다. 아니. 감각이 없으나 내 속에 있는 창자도 나의 것이다. 다 나의 것이다. 의사가 우악스래 메스 길 사이에 손을 넣어 내 것을 찢어 놓는다. 나는 거의 까무러 칠 듯하여 뒤로 넘어갔으나 내 주위 그 누구도 나를 돌보지 아니 하였다. 그들이 돌보는 것은 오직 내 병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탄생의 순간을 맞이하는 아비마냥 환한 면으로 나를 보며 떠드는데 그것을 보니 정신이 아찔하여 눈을 뜰 수가 없게 되었다. 소름 끼치는 웃음이라니! 내 감은 눈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의사가 내 살 속의 살을 눌러보더니 신나하는 아이의 소리를 내며 침을 튀긴다. 네 이럴 줄 알았지.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게 보이십니까. 네? 보란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새 것을 보세요. 이상스럽습니다. 아... 이것은 분명 여기에도 있겠지요. 제게 주세요. 네? 당신을 내게 달란 말입니다. 의사는 내 몸을 갈갈이 찢어 간다. 나는 까무러쳐 아아! 소리만 지르며 침만 흘린다. 내 가슴을 가르고 그 곳에 손을 넣어 가르니 내 살이 찢어지는 소음만 방에 흘렀다.(사실 의사의 천진한 웃음과 나의 처절한 비명도 함께였다.) 아아... 이런 몸뚱이 속에 이런 것이 숨어 있다니. 아아... 의사는 황홀경에 젖어 나를 해체하고 그 속의 이방인을 꺼내려한다. 정신이 아득하다. 뇌까지 점령하려는 것인가. 마지막 이성으로 버티려 하지만 나는... 난...

시방 나는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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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료 뒤지다가 2011년에 쓴 소설이 있길래 슬쩍 올려봅니다.
그 때 이상 시에 빠져가지고 모더니즘 작품들만 주구장창 보던 때라...
더불어 당시에 V가 리뉴얼 되어서 방영되었었는데, 아마 그거 보고 삘 받아 쓰지 않았나 싶네요 ㅋㅋ

출처 2011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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