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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삶이 힘들때 읽는 감동실화 -절벽 산책-
게시물ID : readers_84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1
조회수 : 5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1 07:55:00

벼랑 끝에서 희망 찾은 감동 실화 ‘절벽산책’

마흔 고개를 갓 넘은 가장이 해고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그런대로 잘 나가던 교수였지요. 대학재정이 어려운데다 “정년보장 교수의 정원이 다 찼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겁니다.

미국 콜게이트대학에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학을 가르치며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던 41세의 영문학 교수. 
난생 처음 겪는 굴욕감으로 심한 좌절에 빠진 그는 이날 이후 다른 대학에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1년 4개월 동안 무려 1백11군데나 지원서를 내지만 모두 거절당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마주친 인생의 절벽.
한창 나이의 중년 가장에게는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벼랑 탈출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니까요.

돈 슈나이드의 자전적 소설 (김정우 옮김, 사람과책)에는 벼랑 끝에서 삶의 희망을 찾은 감동적인 실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미국판 ‘고개 숙인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훌륭한 목수로 거듭난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절망에 대응하는 방식과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힘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요.
주인공 슈나이더의 92년 봄도 그랬습니다. 
뉴욕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남한테 빚지지 않고 평범하게 생활하며 서둘 것 없는 인생을 즐기던 그에게 다운사이징의 한파가 닥친 것입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날 밤, 그는 아이들 침대맡에서 를 읽어주다 아이들이 잠들자 희미한 전등이 비치는 마룻바닥에 앉아 책 표지 안쪽에다 가계부라는 걸 쓰기 시작합니다.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손전등을 들고 방을 하나씩 차례로 돌면서, 혹시나 처분할 물건이 있는지, 처분한다면 얼마나 돈이 될는지 예상가격과 목록을 작성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며칠 뒤, 그날 저녁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아내를 깨워 뒷마당으로 나온 그는 추억 속의 젊은 날처럼 별빛을 받으며 스케이트를 함께 타다가 “알려줄 게 있어. 멋진 소식이야. 해고당했어”라고 말문을 엽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가만히 손을 빼낸 아내는 그에게서 스르르 미끄러져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와 이렇게 말하지요.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아빠도 실직하신 적이 있어요. 그게 부끄러우셨던지 두 달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처럼 식구들을 속이셨죠.”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그가 아내 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며 “다른 일자리를 찾을 시간은 충분하다”고,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란 걸 일깨웁니다. 그러자 아내는 그의 머리에 어깨를 기댄 채 망부석처럼 얼어붙고 맙니다.
“당신한테는 교수가 딱 맞는데… 아이들도 이 집에 정이 들었고…”

그렇지요. 그에게는 이곳이 기나긴 성공의 여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의 쉼터일 따름이지만 아내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1년 동안은 이사 생각 안 해도 돼”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는 압니다.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달려온 그와 달리 아내는 내일부터 조금 있으면 헤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이웃들을 만날 게 분명하다는 걸.

현관에 도착할 무렵 그는 걱정 말라고 한 번 더 힘주어 말합니다.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등 뒤로 주방에서 쏟아진 불빛이 마당의 눈더미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남편의 코끝이 시려옵니다.

아내가 노란 전등 박스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있다가, 같이 침실로 올라가자고 할줄 알았던 그의 예상을 깨고 그냥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 장면은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밖에 남아 혼자 스케이트를 타면서 그가 ‘어쩌면 이 밤중에 깨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재고 조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느끼는 순간까지만 해도 아직 희망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식구들 몰래 아래층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10여년 만에 의 구직난을 뒤적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 있는 동안 바깥세상은 차곡차곡 교통정리가 되어 있었지요. 한 쪽은 컴퓨터 귀재들이, 다른 쪽은 영업사원과 간호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해 가을, 28개 대학으로부터 거절 편지를 받은 그는 이듬해 6월 고향 메인 주로 집을 옮깁니다. 장작더미를 져 나르는 일꾼처럼 세간살이를 들어다가 트럭에 옮겨 싣는 그의 머리 속으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농장집을 월세로 얻어 새 살림을 시작한 몇 주 동안 대학에서 온 거절 편지를 아내 몰래 감춰두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날 한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내와 네 아이를 보고 ‘어찌나 아름답던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했지만 비집고 누울 자리조차 없는 ‘현실의 침대’ 앞에서 그의 가슴은 얼마나 쓰렸을까요.

막내를 아기 침대에 누이고 잠자리에 들려던 그는 아내가 공들여 달아놓은 레이스 벽장식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는 서럽도록 푸른 하늘에 달과 별이 수놓여 있고, 머리 위로 한 떼의 갈매기를 거느린 가재잡이 배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이 낯선 방을 가정답게 꾸미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이지요다. 그 순간 그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래 아내가 하는 대로 따라가면 돼.아내는 과거를 헤매지도 않고 미래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지도 않아.’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주던 그는 달빛이 쏟아지는 창 밖으로 나가 뒷마당의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던 그는 아이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이지요.

‘너만은 나를 이곳저곳으로 내몰았던 욕망, 결코 만족을 모른 채 항상 새로운 성공을 찾아 헤매게 만든 그런 욕망에 절대 사로잡히지 말아라.’

실직기간 동안 그와 아내가 보여준 견디기 어려우면서도 사려 깊은 행동은 마치 영혼의 밑바닥을 두드리는 빗줄기처럼 애잔합니다.
아이들에게 갖가지 장난감을 사주고 아내에게 그 사실을 감추면서 그는 여태까지보다 더욱 자상한 아버지로 스스로를 연출합니다.

“우리 모두 맥도널드 햄버거 하나씩 먹자”고 호기를 부리며 가게로 들어가던 날, 시선을 돌린 채 창만 바라보는 아내의 속내는 또 어떠했을까요. 배가 고프지 않다며 끝내 따라 들어오지 않는 아내를 뒤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며 휘청거립니다.

‘다른 아버지들도 나처럼 이렇게 허공에 떠서 뒤로 자빠지는 느낌일까?’

어떤 날은 마을 근처 꼬마 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흩어진 공을 주어 담다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캠퍼스를 구경시켜 주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줄 장미꽃을 사던 꽃집이 있는 그 곳의 행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절망은 사람을 한없이 오그라들게 만들지요. 동료 교수가 국영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자 교만스런 태도가 메스껍다며 네 번이나 전화를 걸어 욕을 해대고, 난방용 연료대금 수금사원에게도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신경질을 부리다니.

한밤중에 일어나 재산목록을 따져보던 그는 자신의 실직기간을 절벽산책에 비유합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스릴이 있을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생사를 건 외줄타기나 다름없는 절벽산책.

그가 허둥대며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은행잔고는 모래주머니 새듯 빠져나가고 남자의 자존심도 함께 줄어듭니다. 
친구의 초대를 받고도 옷이 없어 “방금 정원을 손질하다가 왔거든”하고 낡아빠진 청바지를 입고 너스레를 떨거나 직업소개소 앞에서 줄을 설 때도 그는 일부러 솔 벨로우의 소설을 옆구리에 낍니다.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뱃속에 든 다섯 번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려고 한 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마지막 남은 생활비 1천7백 달러를 줘버리는 대목을 읽을 때는 명치끝이 아릿해 옵니다.
훗날 자신의 선행에 대해 막연하나마 운명의 보상을 기대했노라고 고백한 그에게서 극한에 다다른 사람의 심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초라한 아버지와 무능한 남편으로 전락한 그는 그러나 쓰라린 고통 속에서 예전에 미처 몰랐던 세상의 진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됩니다. 골프장 청소부와 일당 잡부로 일하며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진정한 행복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간당 15달러를 받는 목수의 일상은 그에게 한 번도 예비되지 않은 미지의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방세를 제때 내기 위해서, 때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떳떳한 가장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 자기 앞에 펼쳐진 황무지를 개간하고 그 위에 희망의 ‘집’을 새로 세우려 목공 벨트를 매고 섰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 백지상태에서 낯선 기술을 습득하며 인생에 대한 밑그림을 다시 그리는 일이 어찌 쉽겠습니까만, 그는 남의 집에 페인트를 칠하면서 자신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채색하는 법을 배웁니다.

페인트공이 되던 날 그동안 아내가 모아둔 식량쿠폰을 꺼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리는 그의 심정은 ‘슬픔의 거름으로 키운 마지막 자존심’을 되살리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집니다.
한동안 일부러 멀리했던 이웃에게 그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이같은 용기의 회복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지요.

‘일을 마친 날, 여인은 수표를 끊어주면서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삶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 나라를 살아가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미래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고. 해고된 이후 너무 억울해서 근 2년 동안 비난할 사람만 찾아다녔다고. 살아가기가 아주 힘들어졌다는 뉴스를 접하며 위안을 삼다가, 마침내 삶이란 고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무엇이 가족을 위한 최선이고 무엇이 최악인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최악을 선택했다고. 그래서 가족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절벽’에서의 산책을 끝내고 페인트공으로 ‘땅’위에 선 그의 소망은 소박합니다. 
‘솜씨가 좋아져서 언젠가 내 손으로 우리 가족이 살 집을 한 채 짓고 싶다.’

목수 일로 생활이 안정을 되찾을 무렵 그는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기차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 해변에서 그가 노인대학을 열고 싶다고 했던 얘기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뱃속에 들어선 시간과 장소를 신기할 정도로 정확히 기억해서 들려주지요. 그들은 집으로 오는 사흘 밤의 기차여행 중 계속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듬직한 가장으로 거듭난 그에게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모습은 ‘잠에서 깰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냐고 물었더니 아무 일도 없다고, 너무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을 뿐이라고 대답하던’ 아내의 표정입니다.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가정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가장의 고뇌와 아내의 아름다운 내조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묵묵히 참아내는 아내의 모습에서 고난에 처했을 때 더 소중한 빛을 발휘하는 반려자로의 미덕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 ‘물감’이라면 그의 아내는 행복을 칠하는 정갈한 ‘붓’이지요.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사랑을 재료로 세상의 캔버스 위에 단란한 가족의 수채화를 그려나갑니다.

소용돌이치는 삶의 급류에 휘말려 기우뚱대던 사람의 눈물겨운 재기.

이 소설은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서성거리는 수많은 아버지들에게 또 다른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이 책이 출간됐을 때 미국 언론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방황하는 40대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냈다’(뉴욕타임즈), ‘산업계 전반에 걸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워싱턴포스트)이라고 호평했습니다.

저자 슈나이더는 이 작품 외에도 라는 전기와 두 편의 소설을 펴냈으며 현재 메인주 스카보르에서 훌륭한 목수와 페인트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골프레슨  칼럼게시판
작성자 : 고두현 님
http://m.hankyung.com/apps/golf.lesson.board.view?id=_column_86_1&n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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