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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은 각성하라?
게시물ID : humorbest_846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쩡이~!
추천 : 29
조회수 : 284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2/23 11:00:55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2/21 23:18:46
위의 지도는 1777년 이탈리아 안토니아 차타교수가 제작한 아시아 지도를 그린 것이다.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천리장성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1700년대 조차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너무나 거대한 성이라 표시한 것으로 보여진다

위 지도에서 살펴보면 고구려 멸망 후 발해가 건국되고, 
당나라 땅 산둥 반도 일대에서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제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배경이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지도에서 고구려 천리장성이 요서지방를 넘어에 있는 산해관에서부터 부여성까지의 고구려 천리 장성이 
확연히 그려져 있다. 이것은 서양인이 그렸으니 사실을 토대로 그렸을 것이 자명하다. 

나당 연합군에 멸망한 고구려 땅 평양에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다스리나 고구려인의 저항과 
발해의 건국으로 물러나게 된다.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초기에 고구인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고구려인들을 중국 각지에 이주 시키고 그 때 고구려이들이 강제 이주 한 곳이 산둥일대이다.

산둥일대에는 고구려인 중에 이정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정기는 서기 732년에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정기는 패망한 고구려의 동포들이 당나라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지켜보았다. 그래서 자연히 옛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웅대한 뜻을 키워 나갔다. 
이정기는 타고난 무장으로의 재능을 인정받아 평로절도사 산하에서 비장으로 근무하였다. 

755년 안녹산이 난을 일으켜 하북지역(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요동(주:요녕성 중심의 지역) 에 있는 평로절도부와 장안의 당나라 정부는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정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요동의 군대는 상당수가 고구려 유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정기는 이들을 규합하여 758년 절도사 왕현지가 죽은 틈을 이용하여 
평로절도부를 접수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781년, 이정기는 용교와 와구를 점령하여 당나라의 수송로인 대운하 영제거를 차단하였다. 
대운하는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낙양과 장안으로 이동시키는 당나라의 대동맥이었다. 
그런데 이 대운하를 이정기가 점렴해 버리니 장안의 당나라 정부는 크게 당황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당나라 수도 장안을 향하여 20만의 대군으로 총 진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천명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승승장구하여 변주의 20만 군대를 무찔러 성에 고립시키고 
낙양으로 진격하려던 순간, 큰 별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이정기의 명이 다한 것이다. 
당나라 마지막 거점지인 낙양과 장안을 눈앞에 남겨두고, 고구려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이정기는 
49세의 나이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비통함을 삼키며 고구려군은 퇴각하였다. 
장안에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당나라 덕종 이하 문무관원들은 기쁨에 겨워 3일 동안이나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정기가 죽고, 그의 아들 이납, 손자 이사고, 이사도가 4대 50여년간 제나라를 통치한다. 

지금 해신에서 나오는 역사적인 시기가 장보고가 당나라 무령군 소장에 올라 이사도의 제나라를 
치는 시기가 나온다. 또한 신라도 당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3만명의 군사를 파견하는 때이다.

여기에 해신의 딜레마가 있다. 만냥 장보고만 살릴 수 없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정기의 
제나라를 다루지 않고 있으니 이정기가 누군이지 일반인은 알리 없다. 
그저 장보고가 이기는 장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혹자는 역사가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고, 역사가 그렇다 해도 해신은 퓨전사극이니 문제 될게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동북 공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고구려가 자국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18세기 후반에도 고구려의 천리 장성이 존재한다. 
지금도 존재 할지도 모르니 위성사진 찍어 봤으면 한다. 

위 지도는 고구려의 세력범위와 고구려 멸망후 발해가 건국되고, 
고구려 유민의 후손 이정기가 당나라 산둥일대에서 제나라를 건국 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1000년이 지난 시기에 증명해 준다고 본다. 

즉 이정가 세운 제나라(평로치정)가 고구려의 천리장성 끝인 산해관은 산둥일대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또한 당나라가 그곳으로 고구려인을 강제 이주 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산둥일대에는 고구려유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동족의식이 강했을 것이고 
옛 고구려 땅에 발해가 건국되어 후방에 해당하는 요동, 요서 지방에 우호세력이 있어 
이정기의 제나라가 가능했을 것이다.  

해신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장보고의 해상왕국을 조명하다보면 이사도의 제나라를 부정적으로 그려질 수가 있다. 
해신에서 이사도의 제나라가 부정적으로 그려지면 고구려 후손이 세운 제나라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역사를 죽이는 것이 된다. 중국에서 보는 것처럼 한낱 일개 지방 세력이 
난을 일으킨 정도로 밖에 보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사업과 관련하여서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해신제작자들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만 남은 것이 아니라 뒤에 고구려보다 
더 큰 땅과 세력을 유지하고 당나라 조정까지 위협한 발해와 제나라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조명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www.namprise.com/bbs/zboard.php?id=board1&no=149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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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고구려 유민중에 이정기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적 당나라사람들에게 억압당하는 고구려유민을 보고

고구려 부흥의 뜻을 키우죠.

이 사람이 제나라를 건국하고 당나라를 침공해 당나라의 수도 바로 밑까지 공격하나

그때 수명이 다해서 죽고 말죠.(대단하죠?)

그가 죽을때 당나라에서 3일동안의 잔치가 벌어졌을 정도라네요...

그의 아들이 이납, 손자가 이사고, 이사고의 동생이 

지금 제나라 왕으로 나오는 이사도라고 하네요.

하지만 장보고가 바로 이 이사도를 물리치고 당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르기 때문에

이사도를 상당히 폄하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다를께 없죠.

일부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로 인식되고 있는 제나라를 우리손으로

악당 비스므리하게 그리고 있는데다 단순 반란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죠

게다가 이 싸움은 당나라를 거의 망할뻔하게 할 정도로 커다란 싸움이었죠.

제나라,이사도를 그냥 단순하게 반란군이나 악당으로 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요즘 중국이 미친짓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이때 제가 알기론 발해도 있는 그런 시기 아닌가요?

공영방송 kbs에서 하는 만큼 발해도 확실히 우리나라땅임을

입증하는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네요.

밑에는 해신의 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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