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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고백하려는데 치한으로 몰렸습니다.
게시물ID : gomin_1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은유모와
추천 : 11
조회수 : 81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05/11/22 11:42:22
저는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평범한 (솔로부대) 회사원입니다.

보름 전 쯤, "내 스타일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그녀가 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날따라 평소에 타지 않던 위치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그녀와 함께 타게 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서 매일 출근을 하게 되었고, 벌써 8~9번이나 그녀와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갈아타기 위해 내리는 역보다 두 정거장 전에 내립니다.

그녀가 내리는 역은 환승역이라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출구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위치에서 내리기 위해 그녀는 매일 그 위치에서 지하철을 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그녀 바로 옆에 서서 간 적이 두번이나 있습니다.

내내 생활정보지를 보는 척, 무심히 창 밖을 보는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녀의 얼굴을 계속 훔쳐 봤습니다.

'어차피 같은 동네에서 살고, 아침마다 지하철도 같이 타는데, 이왕이면 말동무라도 하면서 출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만 하다가,

올 겨울도 쓸쓸히 보낼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다급해진 나머지,

결국 용기를 내어 오늘 아침, 고백 아닌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제 작전(?)은 이러했습니다.


- 나 정말로 원하는게 하나 있어~ 니 전화번호~ 뭐 이런 노래 가사도 있듯이 일단은 그녀의 번호를 알고 싶다.

-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전화번호 알려 달라고 하면 안 알려줄 것이다.

- 내 전화번호를 먼저 알려주자. 관심이 있다면 연락을 할 것이고 아니면...(생각하기 싫다)

- 겸사겸사 이름도 알려주고 직업도 알려줄 겸 명함을 주자.

- 명함만 주면 좀 어색하니 귤도 하나 같이 주자.

- 한두번도 아니고 몇 번 봤으니 그녀도 내 얼굴 정도는 알 것이다.

- 옆에 두번이나 같이 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녀와 같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알 것이다(모를수도 있지만 크게 상관 없다).

- 그녀가 내리는 역에서 같이 내려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기 전에 말을 걸고 명함과 귤을 전해 주자.

- 처음 거는 말은, "저기요, 잠시만요..." 뭐 이런 멘트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 그녀가 약간 당황하고 있을 찰나, 난 유유히 사라진다.

- 하루 종일 그녀의 연락을 기다린다.



이렇게, 뭐 대단한 일이 아닌것처럼 보여도, 소심한 저에게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였습니다.

드디어 오늘 아침, 사람이 많아서 떨어져 있긴 했으나 예정대로 그녀와 나는 같은 지하철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내리는 역이 가까워 올수록 손에 땀이 나고 긴장이 더해 갔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들이 많은지, 혹시라도 전해 줄 상황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습니다.

고백의 시간을 위해 평소에 하지 않던 머리 감고 드라이까지 했는데,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는 고민을 할 사이 지하철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이 많은 탓에, 사람들 틈에 끼여 제가 먼저 내리고, 뒤따라 내리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저는 잠시 자리에 서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녀가 제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녀의 팔을 살짝 잡고 준비된 멘트를 날렸습니다.

"저기요, 잠시만요..."

하지만, 제 작전예상은 거기까지였고, 이후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팔을 잡히자 흠칫 놀라며 제 얼굴을 쳐다 보고는 황급히 팔을 뿌리치며,

'까아악~ 치한이야~'라는 소리는 치지 않았지만 그 대사가 딱 어울리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표정은 정말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도망치고 싶은 치한이나 상대하기 싫은 부랑자나 신고하고 싶은 변태를 바라보는 표정이였던 것입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몸이 굳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인파속에 묻혀 제 눈 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명함과 귤을 전해주지 못했다는 실패감보다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무안함보다도,

그녀가 나를, 내 얼굴을 모르고 있다...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라는 서운함이 가슴 속을 후벼 파고 있었습니다.

너무 번잡한 상황이여서 날 못 알아본 것은 아닐까?

내 얼굴이 너무 개성 없게 생겨서 알아보기 힘든건가? 

스토커나 변태한테 당한 기억이 있어서 일단 경계부터 하는 거였나?

워낙에 이쁜 탓에 대쉬해오는 남자가 많다보니 이런 일은 경험이 많아서 초장에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였나?

내가 긴장한 탓에 팔을 너무 세게 잡았나? 정말 아파서 그런 표정 지은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무안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내일 아침이면 분명히 그녀와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게 될텐데, 바로 옆에 서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오늘 일을 확실한 거부의사 표현으로 보고, 내일부턴 다른 시간, 다른 위치에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어제 일은 죄송해요"라면서 다시 한번 말걸기를 시도해 봐야 할까요?

여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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