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당시 전사하지 않고 잠적했다는 일부의 ‘은둔설’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새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초서(草書) 연구가 노승석(盧承奭·사진)씨가 처음으로 완역, 21일 출간한 ‘난중일기’에 실려 있다.
‘난중일기’ 8책(서간책첩)에 실린 이 글은 충무공의 맏아들 이회(李?)가 노량해전 직후인 1598년 12월 13일 관리 현건(玄健)에게 보낸 편지. 회는 “지난번 직접 곡하시고 글을 지어 제문과 제물을 보내오셨다”고 현건에게 감사를 표한 뒤 “사람들의 돌봐주심에 힘입어 상여를 무사히 빠르게 옮겨왔다”고 기록했다.
노씨는 이 자료에 대해 “운구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큰 가치를 지닌다”며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충무공이 사망한 지 약 100년 후 충남 아산에 세워진 충무공 신도비에는 “영구를 아산(牙山)으로 모시고 올 적에 모든 백성과 선비들이 울부짖으며 제사를 올렸다”며 “아산 빙항(?項)에 장사지냈다”고 쓰여 있다. 지금 충무공 묘소는 아산시 음봉면에 있으며 장사지낸 지 15년 후 이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 부분이 ‘난중일기’ 번역본에서 누락됐던 것은 해독이 어려울 정도로 흘려 쓴 초서체 때문. 노씨는 전체 10여만자의 분량을 모두 번역하고 오류를 바로잡았다. 추가로 해독된 부분은 8500자다. 새로 해독된 부분 중에는 1592년 5월 29일 사천해전 당시 충무공이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은 상처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내용도 있다.
충무공은 계사년(1593년) 3월 22일 이후에 쓴 한 편지에서 “탄환 맞은 구멍이 헐어 문드러져 고름이 흘러나와 아직도 옷을 입지 못했다”며 “뽕나무 잿물과 바닷물로 연일 밤마다 씻어도 아직 차도가 없고, 여러 날을 치료했어도 아직 신속하게 진군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 근심스러울 따름이다”라며 애끓는 심정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노씨는 “이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었다”며 “상처가 헐어 옷을 입지 못할 상황에서도 당포해전(1592년 6월)부터 웅포해전(1593년 2월)까지 최소한 12차례의 전투를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유석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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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외다.
고질 피부병 곽질을 안고, 총탄에 매우 심한 상처를 입고도. 12차례의 전투를 지휘하여 승리한 당신은 하늘이 부퍠한 조선에게 내리는 마지막 선물 같은 사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