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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폐인들](섬꽃) 제1부 4장 : 한 준위의 죽음
게시물ID : readers_84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다시마을
추천 : 6
조회수 : 62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8/02 18:25:18
[천안함 폐인들]
-섬으로 떠올라 꽃으로 피어나라- 
 
(제1부  4장)
 4. 한 준위의 죽음
 
 
  한 준위가 한 마디로 UDT의 전설 같은 인물이었다.
  UDT현역들은 물론이고 예비역들까지 직간접적으로 한 준위를 잘 알고 있었다. 한 준위가 우선 군 경력만도 물경 35년째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해군 최고의 수중파괴 전문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기도 했다.
  2009년 3월 이후에는 한 준위의 이름이 바깥으로도 적잖이 알려졌다.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될 당시 한 준위가 검문검색대대 요원으로 참여했고 일부 언론에 한 준위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었다.
  UDT현역들은 물론이고 예비역들 간에도 한 준위의 인지도가 높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0년 가까이 되는, 한 준위의 UDT 교육관 근무가 바로 그것이었다. 쉽게 말해 해군 특수전여단이 지금까지 배출한 UDT대원 4,000명의 절반에 달하는 2,000명이 한 준위의 제자들인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 준위가 현역과 예비역을 가릴 것 없이 UDT의 '큰형님'으로 통했고 특히 신참 부사관들에게는 '영원한 스승'이라고 할 만큼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실전에 임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한 준위의 신조가 UDT예비역들의 모임에서도 자주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 한 준위가 아주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천안함 사고 나흘째인 3월 30일 오후였다.
  전역을 고작 2년 앞둔 54세의 한 준위가 백령도 근해에서 모종의 수중수색을 하다가 졸지에 사망하고 말았다. 언론 보도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로 그 날이 대통령의 현장 방문일이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천안함 사고로 인해 국민들이 텔레비전을 켜놓고 지내다시피 할 때였다. 69시간 생존설이니 연돌을 통한 공기 주입이니 하는 설왕설래는 일단 지나갔지만,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진다 이 말입니다.”
  최 기사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만 두고도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공기를 주입했다는 그 연돌이라는 것이 군의 최근 발표대로라면 애초에 일찌감치 떨어져나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와서는 국방장관마저 애초부터 함미 승조원들의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었다. 천안함의 구조가 잠수함과 다를 뿐만 아니라 특히 구형 환풍장치 때문에 격실의 수밀상태를 애초에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한 준위의 죽음이 당장 크나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 날 이후 오랫동안 한 준위가 인터넷 검색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전 국민의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한 준위가 갖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수중 40미터가 넘는 천안함 함수까지 잠수하여 거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 구조작업을 하다가 죽었으니, 말 그대로 ‘국민 영웅’으로 통할 만도 했다. 한 준위의 죽음에 대한 홍수 같은 보도와 전 국민적 애도의 분위기가 아주 희한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 다른 인명손실이 우려된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스스로 수중탐색 작업의 중단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뭐가 더 문제냐면 말입니다.”
  문제는 최 기사를 비롯한 UDT예비역들이 볼 때 한 준위의 죽음에 대한 ‘윗대가리들’의 발표가 뭔가 석연치 않고 심지어 심한 ‘구린내’를 풍긴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구린내’가 공개적으로 문제된 적도 있었다.
  딱 한 번이기는 하지만 KBS 텔레비전이 한 준위의 죽음에 대한 심층 취재를 보도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 준위가 죽고 나서 한 주가 지난 4월 7일이었다. KBS 텔레비전 저녁 9시 뉴스 막판에 한 준위 관련 ‘단독보도’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보도 내용이 ‘윗대가리들’의 말과는 달라도 이만저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텔레비전 보도의 핵심 내용은 그러니까, 한 준위가 수중수색 임무를 수행한 곳이--‘윗대가리들’의 말과는 전혀 딴판으로--천안함 함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 한 준위를 포함한 10명 가량의 UDT대원들이 2인 1조로 번갈아가며 수중수색을 했는데, 그 위치가 ‘제2부표’로 표시된 천안함 함수가 아니고 ‘제3부표’라고 불리는 어떤 다른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공동으로 수중수색 임무를 수행했던 UDT대원 2명이 ‘윗대가리들’의 발표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인터뷰 장면까지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 사람들의 말을 따르자면, 한 준위와 자기들의 수중수색 위치가 함수에서 백령도 쪽으로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용틀임바위 앞바다였고, 한 준위가 죽고 나서 UDT 동료들 10여 명이 그 바위에 모여 위령제를 지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하나 구린내가 나는 건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다음 날 9시 뉴스에서는 그 똑같은 텔레비전이 전 날의 보도를 철회하는 듯한 묘한 입장을 취했다. ‘국방부에서 통보가 왔는데 전 날의 보도 내용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고 한다’라는 투의, 오보 시인도 아니고 사과도 아닌 아주 어물쩍한 멘트를 하고 넘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모든 게 감감무소식이었다.
  최 기사가 열심히 신문을 뒤적여봐도 그렇고 택시를 운행하면서 라디오 뉴스를 귀담아 들어봐도 그랬다. 한 준위가 수중수색 임무를 수행한 위치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그가 수행한 임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일언반구의 보도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 준위의 죽음 자체만 두고 사방팔방으로 일종의 ‘영웅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원장님. 참 이상하고 분통이 터지는 게 말입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반 년이 지난 지금도 그게 꼭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이 말입니다.”
  “......”
  최 기사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한 준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끝까지 얼버무리면서, 그분의 죽음만 자기들 입맛대로 실컷 우려먹는 게 말이 되냐 이 말입니다.”
 
  최 기사가 잠시 말을 끊고 벽시계를 올려보았다.
  그리고 나서 잠시 높였던 목청을 가라앉혀 아주 고분하게 말했다.
  “아 참, 근데.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 괜찮습니다. 신경정신과는 본래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진찰이고 치료니까요.”
  “허! 이래 가지고 이거. 왕창 뒤집어씌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예? 뭘 말입니까?.”
  “이래 가지고 이거 돈 왕창 받는 것 아니냔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진은 본래 시간을 많이 잡습니다. 이게 기본이고 이것도 다 보험 적용됩니다.”
  “허! 거 참!”
  최 기사가 조금씩 마음을 여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 기사님. 아까 한참 흥분하셨다가 지금 많이 차분해지신 거 스스로 느끼시죠? 쌍소리도 입에 안 담으시고요.”
  “아, 원장님이 이렇게 귀담아 들어주시니 나야 재밌죠 뭐. 제가 속이 다 후련합니다.”
  “저도 덕분에 재밌습니다. 많이 배우는 것 같고요.”
  내가 짐짓 추켜세우는 말을 하자 최 기사가 이번에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욕병 걸린 게. 모르면 몰랐지 아마 나만 아닐 겁니다.”
  “그럴까요?”
  “아, 거 윗대가리들이 하도 단속을 하니까 그렇지. 적어도 UDT예비역이라면 나처럼 쌍소리 안 하고는 아마 못 견딜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최 기사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나서 일부 UDT예비역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의문점들을 아주 단순명쾌하게 들려주었다.
 
  UDT예비역들은 제대 후에도 결속력이 강했다.
  권역별 지부가 결성되어 정기 모임을 갖는 외에, 아주 친한 예비역들끼리는 상시적으로 연락도 하고 누구한테 이런저런 애로 사항이 있으면 서로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그런 UDT예비역들의 모임에서 오래도록 한 준위의 죽음이 단골 화제였다. 한 준위의 죽음과 관련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각종 보도들이 UDT예비역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 주었기에 더욱 더 그랬다.
  그런데 ‘딱 한 번’의 그 텔레비전 뉴스와 그 이후의 감감무소식이 차츰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우선 일부 UDT예비역들의 입에서 뭔가 냄새가 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 냄새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린내를 풍긴다며 드러내 놓고 비분강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천안함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게 아니라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는 비아냥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급기야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각종 의혹 사항들이 UDT예비역들의 입에도 오르내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친한 사람들끼리만 은밀히 주고받던 귓속말이 차츰 공공연한 화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 결과 한 준위의 죽음과 관련하여 UDT예비역들 간에 대충 열 갈래의 의문이 도마에 올랐다.
 
  첫째, 한 준위의 수중수색 지점이 어디였는지가 불분명했다.
  한 준위에 앞서 급파된 1진이 있었다. 사고 직후 27일 진해에서 백령도로 급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1진 대원들이 12시간 수색작업을 통해 핸드소나와 수심측정기로 함수로 추정되는 침몰 구조물을 파악해 냈다. 그리고 29일에는 그 위치를 표시하는 부표설치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디냐는 것이었다. 우선 그곳이 천안함 함수 침몰 지점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곳이 육지에 훨씬 더 가까운 용틀임바위 앞바다였던 것도 분명해 보였다. 함께 작업을 했던 UDT대원들이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는 점에서 이것은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할 말은 한다’라는 것이 UDT대원들 간의 암묵적인 신조이기도 했다.
 
  둘째, 한 준위의 수중수색 임무가 무엇이었는지가 불분명했다.
  그것이 함수든 아니면 다른 어떤 구조물이든 한 준위의 임무가 수중수색이었는지, 아니면 인명구조까지 병행하는 것이었는지가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더군다나 만약 인명구조가 목적이었다면 함수보다 몇 배 더 절실한 곳이 함미였다. 함장이 함수에는 더 이상 잔여 인원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분명히 말했고 군 발표상으로도 함수의 승조원들은 모두 구조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명구조가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46명이 갇혀 있는 함미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당시 함미 부근에는 SSU가 진을 친 가운데 UDT는 아예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셋째, 한 준위가 수중수색했다는 침몰 구조물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가 불분명했다.
  한 준위와 함께 잠수한 UDT대원들의 말 그대로라면, 이른바 ‘제3부표’라는 것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아주 험난한 작업이었다. 그만큼 물살이 거세고 수중이 얼음보다 더 차가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준위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갖은 위험을 무릅쓴 채 그 임무를 완수했다. 바로 그 덕분에 또 다른 UDT대원들이 수 차례의 수중탐색 끝에 해치 문을 찾아내고 그것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다음 한 준위 팀이 재차 잠수하여 열린 해치 문으로 들어가니 소방호스 같은 것이 보이고 국기게양대 같은 것이 만져졌다. 그런데 UDT예비역들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그 침몰 구조물이 천안함 함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인터넷상으로 그게 독일제 돌핀급의 잠수함이라느니 심지어 이스라엘 국적의 핵잠수함이니 하는 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넷째, 한 준위의 수중수색이 언제부터 며칠째 이루어지고 있었는지가 불분명했다.
  군이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UDT예비역들도 인터넷상의 각종 보도와 아마츄어 네티즌들의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 준위가 ‘나흘 연속’ 구조작업을 벌였고, UDT 고참 예비역들에 의하면 한 준위가 이끄는 2진 대원들이 진해에서 헬기로 출발하여 28일 오후 6시에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면 수중수색 작업이 27일 또는 28일에 개시되었을 텐데, 정작 함수가 발견된 것은 28일 저녁 8시였다. 어쨌거나 한 준위가 3월 27일 또는 28일부터 내리 3-4일 동안 수중수색에 투입된 끝에 졸지에 사망한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다섯째, 수중수색 당시의 수중 여건과 정확한 사망 원인이 불분명했다.
  수중수색을 위한 잠수에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있었다. 군이 발표한 함수 침몰 지점은 조류가 5.3노트 정도로 거센 곳이다. 바닥이 개펄투성이라 깊은 수심에서는 손목시계조차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가며 수색을 해야 한다. 섭씨 3.5도 정도의 얼음장 같은 수온이어서 머리에 찌릿찌릿한 충격이 오고 호흡장비마저 얼어붙는다. 그래서였을까? 인터넷상의 설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미해군은 당시 수중 여건을 ‘잠수 부적합’으로 판정했고 그래서 미해군 잠수요원들도 당연히 잠수를 거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 준위 팀은 기준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이 되었다.
  UDT예비역들이 볼 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제아무리 상명하복의 군대라고 하지만, 사람 목숨이 최우선이다. 게다가 한 준위의 나이가 신참 사병들이나 부사관들에게는 아버지뻘이 되는 54세였고 다른 UDT대원들도 대개는 53-55세의 장년이었다. 군 생활을 고작 2-3년밖에 남기고 있거나 이미 전역한 예비역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UDT대원들에게 미국 잠수요원들은 거부하는 수중 여건에서 200파운드나 되는 부이를 2개나 설치하도록 하는 등 무리하게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UDT를 ‘봉’으로 취급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여섯째, 수중수색 필수 장비인 이른바 ‘감압챔버’와 관련해서도 윗대가리들의 발표가 오락가락했다.
  바닷속에서는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수압이 증가한다. 25미터에서는 2배 이상 압력을 받게 되어 호흡곤란과 통증을 수반하는 감압현상, 그러니까 잠수병이 일어난다. 30미터 이상 내려가면 질소가 체내혈관을 막아 호흡이 훨씬 더 곤란해진다. 그런데 해군이 감압챔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준위 팀에게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이 분명했다. 3월 28일 한 준위가 거센 조류와 얼음보다 더 차가운 물속에서 1시간 남짓의 작업 끝에 부표를 설치할 때도 감압챔버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고 초기 유가족의 말대로라면, 3월 30일 오후 3시 20분쯤 한 준위가 실신했을 때도 실신한 몸체를 30분이나 이곳저곳으로 싣고 다니다가 막판에 미 해군의 살보함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윗대가리들은 30분이 아니라 16분 정도가 걸렸다고 하지만 냄새 나는 구석이 워낙 많다 보니 이것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수중수색 지점의 수심도 오락가락했다. 40-45미터라고 하는데 UDT예비역들이 이것저것 종합해 볼 때 25미터 정도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한 준위 같은 베테랑이 잠수병에 걸릴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었다. 요컨대 감압현상보다는 차라리 저체온증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데 아마츄어 다이빙스쿠버들도 착용하는 체온 보존용 드라이슈트가 한 준위가 착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인터넷상으로도 “우리도 텔레비전 보면서 방송이 거짓말한다고 서로 말했다. 드라이슈트 안 입고 섭씨 3-4도 수심에서 기절하면 무조건 저체온증이고 5분도 안 되어 사망했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다.
 
  일곱째, 미국대사가 독도함을 방문한 것, 그리고 주한미군사령관이 광양함까지 찾아와 한 준위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시하고 ‘봉투’를 전한 것이 너무나 이례적이었다.
  미국대사가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찾아와 유가족에게 그런 ‘예우’를 하는 것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6.25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UDT예비역들이 볼 때도 이 같은 정황이 한 준위 팀의 수중수색이 천안함 함수가 아니라 미군과 관련된 어떤 다른 구조물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상당 정도 뒷받침해 주었다. 게다가 인터넷 상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것처럼, 천안함 희생자 애도기간 중 4월 29일에만 조기를 게양한 우리나라와 달리 주한 미국대사관에는 27일부터 줄곧 조기가 걸렸다는 것도 뭔가 미심쩍었다.
 
  여덟째, 딱 한 번의 텔레비전 보도 후로 후속 보도가 전혀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인터넷상으로는 ‘한 준위의 죽음’, ‘용틀임바위’, ‘제3부표’, ‘UDT대원들의 임무’ 등이 가장 뜨거운 감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신문에는 전혀 이런 보도가 나오지 않고 군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딱 한 번 보도를 내보냈던 그 텔레비전이 바로 다음 날 전 날의 보도를 철회하는 듯한 어물쩍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명백히 오보를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입장은 전혀 아니었고, 모처의 위세에 눌려 얼버무리는 냄새를 풍겼다. 결국 모종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후속 보도까지 차단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사방팔방으로 여전히 ‘한 준위 영웅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홉째, 한 준위가 죽은 3월 30일 오전의 대통령 현장 방문이 시의적절했느냐는 것도 논란거리였다.
  그 날 낮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처럼 대통령이 전용 헬기를 타고 어떻게 보면 ‘기습적으로’ 현장 방문을 했다. 그런데 UDT예비역들이 볼 때 거기에 두 가지 부적절한 점이 있었다. 우선 현장 구조구난에 필수적인 선박과 장비들이 대통령의 수상 이동에 동원되거나 심지어 경호에 차출될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방문한 구조작업 현장이 북한의 해안포 사거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소수 고참 예비역들의 말마따나, ‘북한소행’을 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단계에서 국가원수가 극도의 위험지역에 속하는 구조작업 현장을 방문한 것이 엄밀히 보면 ‘위헌’에 해당할 수 있었다. 사고 당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뉴스들이 대통령의 현장 방문만 열나게 보도하고 막상 한 준위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쇠로 넘어간 것도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그런 가운데 UDT예비역들이 유난히 의구심을 갖고 분개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여타 다른 의문점들은 해석하기 나름으로 어느 정도 수긍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준위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리한 임무를 수행했다면 그것이 순전히 한 준위의 희생정신의 발로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한 준위가 수행한 수중수색에 대한 군 발표가 무언가 애매하고 불투명한 것도 그것이 군사기밀에 속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보아줄 수 있을 것이었다. 대통령의 기습적인 현장 방문도 사태의 심각성과 중차대함을 고려한 나머지 상황 파악 및 격려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윗대가리들이 정말 뭔가를 감추고 한 준위 팀에게 무리한 임무를 부과했다면 그것만은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침몰 구조물이 천안함 함수가 아니었는데 마치 천안함 함수인 것처럼 속였거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명구조와 전혀 무관한 것을 인명구조인 것처럼 감쪽같이 속인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고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이었다. 한 준위의 죽음을 계기로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탐색을 자청하여 만류하고 나서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랬다. 그 모든 게 군이 무슨 꿍꿍이속으로 감히 UDT를 농락한 것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유가족들을 포함한 온 국민을 바보 멍청이로 취급한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미국대사가 방문하면 뭐합니까? 한미연합사령관이 조문하고 봉투 주면 뭐합니까?”
  최 기사가 푹 가라앉다 못해 급기야 잠긴 목소리를 냈다.
  “영웅 되고 충무무공훈장 타면 거 뭐합니까? 성금 쪼개 주면 거 뭐합니까? 그게 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아닙니까?”
  “......”
  “UDT는 뭐 사람 아닙니까? 글고 사람 목숨이 먼저 아닙니까?”
  “......”
  “그리고 말입니다. 내가 볼 때 말입니다. 다 제쳐 두고라도 말입니다. 군이 뭔가 속였냐 아니냐. 이것만은 꼭 밝혀져야 한다 이 말입니다.”
  볼멘소리로 잠겨들었던 최 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카랑카랑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거, 해군이 해경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게 말이 됩니까? 작전을 수행하는 대원들마저 속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
  “만약 군이 뭔가 속였다면 말입니다.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아 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천안함이 온통 공중에 부웅 떠 있는 것 아니냐 이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원장님?”
  “.........”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쌍소리 욕지거리가 안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는 게 되레,  그게 되레 이상한 거죠. 안 그렇습니까, 원장님?”
  “아 예, 이해합니다. 그래도 최 기사님 지금은 쌍소리 욕지거리 전혀 안 하고 계시잖습니까. 저로서는 그게 우선 다행입니다.”
  “허! 거 참. 그러고 보니 딴은 그렇네요.”
  “그럼 말이죠. 집에서 아주머니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좀 나누시지 그러셨습니까?”
  “아, 거 여자들이 어디. 이런 일에 어디 말동무가 됩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UDT예비역들하고는 요즘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시겠죠? 안 그럽니까?”
  “아, 그게 말이죠. 우리끼리도 요즘은 뜸합니다. 뭔가 그저 쉬쉬 하고 구렁이 담넘어 가는 그런 분위깁니다. 바로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지고 울화가 치밀기도 하고요.”
  “예. 저도 최 기사님 그런 심정을 십분 이해하겠습니다.”
 
  내가 상담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최 기사의 부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최 기사에게 물었다.
  “근데요, 최 기사님. 열성으로 나가시는 풍물패 있잖습니까?”
  “예?”
  “풍물패 말입니다. 사물놀이라고 하던가요? 요즘도 자주 나가십니까?”
  “아니, 원장님이 어떻게?... 아! 알겠습니다. 내 마누라구먼요.”
  “예. 맞습니다.”
  “아 거, 요즘은 통 못나가고 있습니다.”
  “왜요? 아주 열성이라고 들었는데요.”
  “아, 거 뭐. 나중에 말할게요.“
  “우선 풍물패에서 하시는 것만이라도 좀 말해 주시죠.”
  “내가 설장구를 좀 합니다.”
  “설장구 하시면 장구 반주는 기본으로 하시겠네요.”
  “아무렴요. 나이 드니까 이제 설장구는 힘에 부치고요. 거 간간이 어이! 허이! 얼쑤! 추임새 넣어가며 하는 장구 반주가 내 나이에는 아주 제격이더라고요.”
  최 기사의 대답에 내가 내심으로 반색을 했다. 여차하면 준섭과 최 기사를 좀 엮어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알았습니다. 그런 활동을 계속하시는 게 좋겠고요. 아까 하신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아 거! 좋습니다.”
  “최 기사님 말마따나 우리가 앞으로 잘 사귀어야 하고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하니까요.”
  “아 거! 알았다니까요.”
 
  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우선 준섭과 비교해 보아도 증상이 훨씬 더 가벼운 것 같았다.
  둘 다 천안함 사고에 강박되어 있지만 최 기사의 경우 강박증이 거의 전적으로 한 준위의 죽음과 주변 의혹사항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또 다른 부수적인 요인이 있다면 UDT예비역으로서 최 기사의 유별난 자긍심과 자존감이었다. 최 기사가 신체 건강하고 강인한 성격인데다 불면증이나 악몽이 없다고 하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런 최 기사에게는 백약이 무효나 다를 바 없었다. 한 준위의 죽음과 주변 의혹사항들이 투명하게 밝혀지기 어렵거나 적어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최 기사가 그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뭔가 다른 대체활동밖에 없었다. 의사인 내 입장에서도 그런 류의 유인책 이외에 다른 묘방이 없었다.
  이런 판단 아래 내가 일단 위약 처방을 염두에 두었다.
  최 기사의 강박증 정도라면 일단 플라시보 효과를 겨냥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위약’이라는 것이 주로 통증 환자나 불면증 환자에게 사용하는 일종의 속임수 처방이다. 흔히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한다. 똑같은 의사와 상담을 하고 똑같은 주사를 맞고 똑같은 약을 복용한 환자들 사이에도 의사, 주사, 약에 대한 환자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그 치료 효과에 큰 차이가 난다. 그 중에서 주사와 약의 경우 여러 연구를 통해 그런 차이가 입증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술 직후의 환자들 경우 오래도록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진통제 주사를 과다하게 사용하면 의존성이 생기게 되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의료진의 결정으로 생리식염수 같은 대체물을 마치 진통제인 것처럼 주사하여 환자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이 위약 처방이다. 이렇게 하면 환자의 심리적인 안도감에 힘입어 실제로 신체적인 진통 효과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흔히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고 한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것이 여기 딱 들어맞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불면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플라시보 효과가 자주 거론된다. 첫째는 수면 촉진과 전혀 상관없는 주사나 약을 수면제인 것처럼 처방함으로써 수면을 유도하는 수가 있다. 둘째는 환자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어떤 약이 불면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알린 다음 일정 기간 후에 그 약의 처방과 복용을 중지시키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이제 그 부작용이 사라질 것처럼 암시를 주면 불면증이 눈에 띄게 호전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최 기사에게 그 비슷한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사실 최 기사의 성격이 단순한 만큼이나 쌍소리를 수반한 그의 울화병도 비교적 단순해 보였다. 최 기사처럼 쌍소리나 욕지거리로라도 마음에 맺힌 것을 풀고 속내를 털어버리는 것이 그 자체로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가치유의 한 양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어찌 보면 준섭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극심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증상을 사전에 차단하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최 기사님. 기왕 오셨으니까 오늘 주사 한 대 맞으시고요. 약은 보름치 드릴게요. 아침 식후에 하루 한 번씩만 드시면 됩니다.”
  이렇게 주사제까지 포함하여 모두 위약 처방을 하고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민혜와 상의하여 준섭과 최 기사를 엮어줄 수도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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