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다. 조선시대에 충청지방군수까지 했던 엘리트였다. 서울 종로에 집이 있었던 부자였었다. 그는 우리 할머니 아버지다.
가족도 돌보지 않고 재산 탕진하며 독립운동하다가 잡혔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의 악랄한 고문을 견디었다. 그리고 출소 후 몇년만에, 광복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장례식 때 김구, 여운형 선생이 조문왔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백과사전에도 나온다. 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대부라서 2005년까지 빨갱이 취급 받았지만.
그래서였나보다.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학원에서 피자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봤다. 집 형편이 안 좋아서 8살 많은 이종사촌 형의 옷을 얻어다가 입었다. 용돈이 없어서 방과후에 애들이 떡볶이 사 먹을 때 그걸 얻어 먹었다. 비참한 심정이었지만 맛있었다는 게 서글펐다.
그래서 그랬나,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왕따 비슷한 걸 당했다. 그래도 참을만은 해서 공부는 열심히 했다.
뭐 그렇게 이 악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남들 감히 못가는 대학에 합격했다. 무사히 졸업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도 잡았다.
20대 후반인데도 평범한 사람들은 40대는 되어야 받을 연봉받지만.. 솔직히 세금 내는 거 너무 아깝다. 아까워서 미칠 것 같다. 세금 나갈 때마다 '우리 조상님이 희생해서 찾은 나라가 우리 집안에 뭘 해줬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친일파 후손들은 부모 재산 물려받아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나 혼자 개같이 공부해서 겨우 이 정돈데..
심지어 네이버에 그 외증조 할아버지 이름을 치면 '그런 빨갱이 잡아들인 일본이 잘한거' 라는, 고딩이 쓴 글도 검색되는 이 미친 나라가 너무 싫다. (너는 진짜 내가 죽여버린다 개새끼야)
제대로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도 못될 걸,
외증조할아버지는 대체 왜 그런 뻘짓을 해서 우리 집안을 고생시켰는지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