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허상
게시물ID : readers_84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미..
추천 : 0
조회수 : 2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3 08:49:30
역시 가방은 비어있었다. 

무언가를 쫓는 자의 가방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가벼웠으니까. 

절벽에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신발과 양말을 보면서 남겨진 자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만 하는가. 딱하 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도착 했을 때 이미 시신은 수습되어있었다. 먼저 도착한 후배녀석이 시체사진을 찍었다며 좋아했고 나는 갑자기 담배가 땡겼다. 
후배한테 건수를 뻇긴 것도 그렇지만 시체 사진 찍었다고 좋아해야하는 이 처지가 난감토록 궁상맞으니까. 그러고 또 왜 매번 사람이 죽
는 일에는 내가 파견되어야 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고작 일간지 나부랭이들 주제에 이런건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나를 파견하니까. 

5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경력중에서 내가 본 시신들이 몇구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떄로는 역겹고 때로는 끔찍한 그 고깃덩어리들이 
한떄는 지구에서 가장 의미있는 영장류였다는게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구토를 하기도 했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어떠랴. 이게 업인 것을. 

그러면서 나는 또 장의사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은 비겁하고 치사하게 자신보다 못해보이는 상대를 끌어들여 자신을 위로한다. 내 경우엔 장의사가 되겠지. 직접 시체를 만지고 씻고 염하는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은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할까. 죽음이란 실로 많은 이들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제 3자를 가장 괴롭히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다면 죽는 것에 조금 조심스러워 질 순 없을까. 

스산한 바람이 절벽위로 불어온다.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었나? 뭐 절벽위니까 그럴만도 하겠지. 담배연기가 죽은자의 영혼처럼 부질없게 흩어졌다. 혹 담뱃재가 옷에 떨어질까 담뱃재를 한 번 털어주고 다시 빨았다. 

뒷짐을 지고 있던 나를 김형사가 불렀다. 하도 이런 일을 많이 하다보니 팔자에도 없게 경찰들이랑 친분을 맺었다. 

"박기자님, 저희끼리 내기했습니다. 이번에도 박기자님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하하하"

그런 내기는 너희들 끼리만 알았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센치해졌을 떄 그런말을 들으니 김형사의 얼굴이 재떨이로 보였다. 

"혼이 절 부르나 봅니다."

떨떠름한 내 표정에 김형사도 당황하더니 재빨리 서류를 들이밀었다.

"뭐 어차피 저희한테 또 물어보실꺼 그냥 이렇게 정리 해봤습니다. 이런 일 하는 사람끼리 뭉쳐야 위로도 되고 하지 않겠습니까?"

뭉치자는 말에 힘을 주는 김형사. 알고있다. 조만간 술 사라는 압박인걸. 하긴, 초짜일 때는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이리저리 돈을 쓰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귀찮아져서 뜸해지긴 했다. 먼저 이렇게 사망자 신원을 공개해오는 일은 아주 드문일이다. 난 형사라도 된 듯이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건방지게 그 파일을 받아 들어 읽었다.

"최치수. 나이 44세. 남자. 키 175....cm.....몸무게.....이런건 필요 없지 않아요? 어차피 기사에 이런거 안나가는데?"

생각보다 꼼꼼하고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내 질문에 김형사는 꾸질꾸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눈을 뱀처럼 가늘게 떴다. 

"이게 또 정이 묻어나는 디테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어차피 기사에 필요한 정보는 전부 경찰측에서 발표할건데 이렇게 생색내는 걸 보면 그동안 내가 뜸하긴 뜸했던 것 같다. 나는 고맙다는 상투적인 인사를 남기고 사진 현상하러 가겠다는 후배놈을 붙잡았다.

"한 번 보자. 본다고 닳냐?"

후배는 썩 좋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마지못해 그것을 보여주었다. 낙사시체는 끔찍하다. 많은 끔찍한 시체들 사이에서도 낙사시체는 독보적인 존재다. 머리 부분은 터져버려서 형채가 없고 뇌수와 피가 범벅이 되어 주위에 뿌려져있었다. 이런 사진을 찍고 좋아해야한다고. 이런 사진을.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는 후배놈이 밉고 안쓰러워 가볍게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어서 현상하라고 보냈다. 나도 돌아가야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생각에 잠긴다. 죽음. 언젠가 '삶은 아름답게 죽어가는 과정이다.'라고 했던 친구놈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작 그따위 말을 한 친구놈은 아름답게고 뭐고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다 먼저 가버렸다. '자살은 최고의 사치다.' 혹은 '신에 대한 도전이다.'같은 말은 이일을 해보면 그냥 개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 아니, 어쩌면 사치일지도. 지가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수발을 들어봤겠나. 성인이 된 이후로 누가 자신의 몸을 씻겨주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혀주겠나. 그걸 자신의 의지로 한다는건 정말 사치일지도. 빌어먹을 사치다. 


길이 막히자 따분해졌고 품속에 넣어뒀던 서류를 펼쳐보았다. 쭉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유서가 없는 점을 미루어보아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떄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 이곳 생리는 그렇다. 타살? 수사과정에서 얼마든지 타살의 가능성이 보이는 죽음들이 있다. 하지만 경찰이 견찰인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수사따윈 하지 않는다. 그냥 대충 결론 짓고 떠나버린다. 

사실 비효율 적이기도 하다. 그들의 오랜 노하우를 따라 이런 건 그냥 자살로 넘기는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어떨까? 죽는 주제에 유서라도 남겨서 이런 여지를 안남겨야 할 텐데. 

삶은 그 풍파가 너무 거칠어서 준비하기도 전에 배가 침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살은 침몰을 예상하고 침몰에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전 고등학교 떄 은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자살하려면 피해주지 말고 해.' 참 옳은 말이다. 

구로를 지나 영등포 쪽을 들어서면서 차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었다. 걷는 것 보다 느린 속도로 까만 매연에 둘러싸여 있으려니 짜증이 팍팍 솟았다. 다시 담배를 꺼내려다가 그냥 에어컨을 켰다.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베이면 싫어할테니까. 

사무실에 도착하면 후배가 이미 출력한 사진을 나에게 건내주겠지. 나는 또 그 사진을 보며 짤막한 기사 한 줄을 쓰겠지. 낭비스럽지 않은가? 고작 그런 기사쓰려고 기자가 된것도 아니고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한다는 일은 이런 일 뿐이니까. 꿈으로 먹고 살던 시절이 너무 빨리 가버린게 한이다. 나는 인생을 너무 빨리 봐버렸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44세의 이 아저씨는 자살의 이유가 어떤 것일까? 흔한 빚? 상사의 갈굼? 사내왕따? 자식문제? 아내의 불륜?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겠지. 그러고 보니 3년전 자살했던 여자가 떠올랐다. 남편이 바람을 펴서 남편과 바람핀 여자를 죽이고 자살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운명이란게 참 지랄맞아서 바람핀 두 년놈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마누라는 그대로 비명횡사해버렸다. 기적이라는게 착하게 살아서 얻어지는 건 아닌것 같다. 참 지랄같지. 인생.

사무실에 도착하자 익숙하지만 불쾌한 썩은 에어컨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누추한 사무실 안의 공기는 자살사건이 있던 그곳보다 딱히 나아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곳은 공기라도 맑았지.....도착한 나를 편집장이 눈짓으로 한 번 보더니 지나가듯 물었다.

"어떻디?"

어떻긴 어때. 그냥 죽은 사람이지. 뭘 더 바라냐는 눈으로 딴 곳을 바라보는 편집장을 노려보고 자리에 앉았다. 편집장도 그 의미를 알아들은 것 처럼 더 묻지 않았다.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워드파일을 열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북한산, 44세 남성 투신.'

여기까지 적은 후 김형사의 전화를 기다리면 되겠지.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피곤에서 비롯된게 분명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압박했다. 예전엔 악몽도 꾸고 가위도 눌려서 잠을 설쳤지만 이젠 될대로 되라는 식이다. 잠이 오면 자고 그러다 가위에 눌리면 풀고 악몽을 꾸면 깨고 다시 자고. 그 달갑지 않은 일들이 일상이 되어가면서 내 삶은 점점 무미건조해졌다. 누런 황사가 가득 낀 것같이 텁텁하고 불쾌한 일상이다. 

김형사의 문자가 왔다.

"저는 내일 비번일 것 같은데 기자님은 바쁘세요?"

자살 사건이 일어났는데 다음날 비번이라고? 진짜 미쳤구만. 그래도 또 이런데 나가야 앞으로도 얼굴 보고 살 수 있겠지

"내일 저도 시간이 좀 나는데, 저희 사무실 근처에 냉면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어떠세요"

귀찮으니까 니가 와라. 얻어먹는 놈이 그정도 성의는 있어야지. 답장은 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폰을 던졌다. 이상하게 후배놈이 보이지 않는다.

"편집장님, 성규 안왔어요? 사진들고 먼저 갔는데?"

내 말에 편집장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 그 새끼 또 어디 세서 놀고 있겠지. 하여간 그 새끼는 좀 맞아야 해. 맨날 농땡이나 피는 놈."

더러운 인상만큼 더러운 언사를 내뱉던 편집장은 뭐가 잘 안되었는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일어나서 성규의 자리로 가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사진을 찍은 후로 안 들어왔으니 사진은 없겠지. 그러다 성규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신참일 때 부터 쓰던 낡은 가방. 그 안에서 항상 수첩을 꺼내서 무언갈 적었다. 그리곤 비밀이라며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지. 

나는 성규의 자리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어디 그 비밀 한 번 보자는 식으로 가방을 열었는데 안타깝게도 가방은 비어 있었다. 이제 자기도 신참은 아니라는 건가? 뭔가 씁쓸했다. 아직도 어리숙한 주제에........

시계는 이미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편집장은 슬슬 퇴근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나는 30분 쯤 더 기다려보고 퇴근하기로 했다. 성규 녀석 오면 농이라도 걸면서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지.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