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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조금씩 닮으며 산다
게시물ID : lovestory_849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19 17:57:3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22QwUaAI9pw




1.jpg

신미균뻥튀기 아저씨

 

 

 

신림 8동 재래시장 담벼락에 붙은

뻥튀기 아저씨

골목 바람 저문 날도 심심치 않게

튀겨낸다

 

사카린 한 숟갈 집어넣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청사포 앞바다 발동기 돌리 듯

배앵뱅 뻥튀기 통을 돌리면

얼씬거리던 추위는 저만치 물러나고

울퉁불퉁 일어나는 팔뚝의 배 한 척

 

물때 만난 참조기들이

저녁놀에 튀겨지던 윤기 나는 바다

신들리게 그를 당기던 시절

 

숨 가쁜 세상

누가 돌려주지 않아도 어지러운데

뻥튀기 통은 자꾸자꾸 돌고

두둥실 떠나지 못하는 배는

오늘도 낡은 팔뚝에서

출항을 포기하고 만다







2.jpg

서정숙항아리

 

 

 

폭설에 모자 하나를 더 쓰고도 말이 없다

 

날도 풀리기 전에

퀘퀘하게 곰팡이 뜬 메주덩이를 넣고

소금물을 부으면

몸을 연 채 바다를 마신다

 

정성으로 돌보는 손길이 좋아

햇살에 잡균을 쫓아내고

살을 섞어 장맛이 익어가면

바람에 얼굴 맡긴 채 숨만 쉰다

 

순박한 몸으로

배신할 줄 몰라

누군가를 위해 한결같이

깊은 맛 우려내는 항아리

 

어머니도 나도

조금씩 닮으며 산다







3.jpg

최영애세종대왕을 만나다

 

 

 

세종대왕이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지체 높으신 분이

어쩌다 가랑잎 이불 삼아

길바닥에 누워 계시는지

 

분식집 아줌마 쟁반 위에서 뛰어내리셨나

심부름 가는 아이 주머니에서 흘러내리셨나

이 눈먼 돈

어쩌다 내 눈에까지 띄었을까

 

담쟁이 넝쿨 소란스런 시월

바람의 숨결 한 호흡조차

백지에 옮기지 못하는 풋내기 시인이

왕을 일으켜 세우려니 가슴이 뛴다

낙엽 한 장 주울 때와

어이 이리도 다를까

 

책갈피 속에서 일년을 마름질된 단풍잎은

사랑을 무릎꿇게 했는데

이 한 장의 지폐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jpg

장석남맨발로 걷기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5.jpg

문정영나무길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길이 있다

바람이 건너다니는 길이다

새가 날개를 접었다 펴면서 건너면

길은 수많은 의문의 잎을 달고 생각에 잠긴다

그 옆으로 열열이 달려가는 전봇대가 보인다

그 길은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잡을수록

지독한 가슴앓이를 한다

서로를 묶는 일 나무들은 하지 않는다

놓아둘수록 길은 수많은 갈래를 만든다

어디든지 나무만 있으면 갈 수 있다

늦은 봄까지 초록이 전염되는 것을 보면 안다

가을이 깊을수록 의문을 떨구어

길을 환하게 한다

어렵게 어렵게 살려하지 않는다

가고 오지 못한 길 사람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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