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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스압)군대에서 만났던 고양이 이야기
게시물ID : animal_970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심장사상충
추천 : 13
조회수 : 720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7/25 11:35:50

-디씨 고갤 1l1님글임-






오밤중에 감성터져서 전부터 쓰려다 귀찮아서 그만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누구나 이등병이었던 적이 있다. 나역시 그러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눈발을 맞으며 보낸 훈련병 시절을 거쳐 이등병 약장을 받음과 동시에 나는 내가 이등병이 된 것을 실감했다. 진정한 군인의 길에 한발짝 들어선 것 같았고, 앞으로의 군생활도 훈련소 과정처럼 순탄하게 잘 흘러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마저도 가져볼 수 있을정도로 나는 낙관적이었다. 물론 이 역시 누구나 하는 착각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나서 나의 이러한 환상이 박살나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김포 외곽의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부대원이 스무명 남짓한 작은 진지는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곳이었다. 폐쇄된 작은 사회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따금씩 시골마을 주민이나 GOP 군인들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지만, 그러한 위험성은 대개 잘 부각되지 않고 6시 내고향이나 진짜 사나이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다들 사이좋게 지낸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나는 작은 사회의 참혹함을, 그리고 인간의 잔인함을 그곳에서 온몸으로 체험했다. 폭력은 구조화된 하나의 관계였고 욕설은 의사소통의 수단이었다. 부조리는 시스템의 일환이었고, 하부 구성원들의 슬픔과 고통은 묵인되었다. 단 하루도 욕을 먹지 않는 날이 없었다. 자다가 일어나서 취사장 뒤쪽에 불려나가 얻어맞는 것 역시 흔한 일이었다. 일은 고되었고 의지할 곳은 없었다. 스스로가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놈이 된것만 같았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안식의 순간은 노을이 뉘엇뉘엇 서산을 넘어갈때 막사앞 두엄 위에 홀로 앉아 지는 태양을 보며 적막함속에 손톱을 깎던 순간뿐이었다. 매일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배게에 뒷통수를 대면서 나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잠에서 깨는 일 없이 영원히 눈을 감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야속하게도, 눈을 감고나서 불과 몇초가 지난 뒤엔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몇달동안 서너번정도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하던 즈음에, 나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옆 소대에 인력이 모자라 지원병력으로 파견을 가란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반색했다. 이곳을 벗어날수만 있다면 지옥이라도 좋았다.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었다. 나는 지쳐있었던 것이다. 입가에 퍼져나가는 웃음을 참기위해 애쓰면서 나는 군장을 싸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20분 남짓 걸려 도착한 옆소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곳 역시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부대원이 스무명 남짓한 작은 진지였지만, 군기는 빠져있었고 사람들은 착했다. 욕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으며, 부조리는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기도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있었다.

 

옆소대에 도착한 직후 나는 소대장을 따라다니며 부대시설이나 해야할 일들에 대해 차례차례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 취사장 뒤쪽을 돌아가던 중 소대장은 문 옆에 있는 전자렌지보다 조금 클 법한 나무상자를 가리켰다. 조예가 없는 사병이 나름 실력을 발휘해 어설프게 만든 것이 분명해보이는 황갈색 상자는 옆쪽으로 사람 머리통 하나정돈 들어갈수 있을 법한 구멍이 나있었고, 그 앞엔 앞접시 두개가 소담하게 놓여있었다. 우리부대 고양이집이야, 라고 소대장은 유쾌한 듯이 말했다. 부대 뒷쪽 철망에 있던 새끼 한마리를 소대 중사가 줏어왔단다. 고양이는 보이지않았다.

 

이튿날 점심먹기 전 잠깐 짬이 났을때, 나는 주저주저하다 눈치를 봐서 슬쩍 막사를 빠져나가 취사장 앞에 가보았다. 궁금했던 것이다. 상자앞에 쪼그려앉아 시커먼 안쪽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몸을 동그랗게 말면 실한 사과 한알 정도 크기나 되었을까, 몹시도 작고 연약해보이는 회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로 얼룩이 져있는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삐약,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상자안에서 뒤뚱거리며 기어나왔다. 쪼그려 앉아있는 내 무릎을 망설임없이 앞발로 더듬던 녀석은 이내 내 허벅지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 두 앞발을 내 가슴팍에 맞댄채 일어서서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은 순진무구한 푸른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떨리는 서툰 손으로 그 작은 것을 끌어다 내품에 안았다. 녀석은 나에게 완전히 몸을 내맡기고 폭 안겼다. 그 순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마그마같은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벅찬 감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거기에 더이상 군인이니 고양이니 하는 것은 없었다. 고양이는 자신을 보살펴줄 어미를 원했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원했다. 그것으로 된것이다. 나와 고양이 사이엔 다른 무엇도 없이 그저 서로를 절실히 원하는 생명체 둘이 있을 뿐이었다. 마치 온 우주가 이 고양이를 통해 내게 쏟아져 온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이 작지만 엄청난 기적을 통해 밀려오는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행여나 이 순간이 꺠지지 않을까싶어 하염없이 고양이를 품안에 꼭 안고 있었다. 녀석은 편안한듯이 규칙적으로 따뜻한 배를 불렸다 줄였다하며 골골댔다.

 

그리고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생명의 정수가 몸속에 들이부어진 느낌이었다. 더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저녁노을이 우울해보이지도 않았다. 하루 일과가 힘들지만 즐거웠고 부대의 삶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늘 고양이를 생각했다. 간식으로 나온 요플레를 먹지않고 남겨뒀다 야밤에 막사 외곽의 전기보일러 아래 가장 따뜻한 구석자리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녀석에게 가져다 먹이기도 했고, 취사병이 손질하라며 맡긴 고기중 한웅큼을 잘라 녀석의 보금자리 앞의 접시에 얹어놓고 몇시간 후에 가봤을때 고기가 사라진 것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저녁무렵엔 늘 녀석을 품에 안고 머리를 살짝 깨물어주거나 코를 맞대고 부벼댔고, 종종 새벽에 근무서고 복귀했을때도 잠들기전 취사장에 들러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잠에 들곤 했다.날마다 고양이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으며 나 역시 눈빛에서 점차 서늘한 기운이 걷히고 웃음기가 자리잡았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한식이 좋고 누군가는 양식이 더 좋으며, 누군가는 산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바다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온화하고 누군가는 포악하며, 누군가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한다. 소대의 한 고참은, 소싯적에 껌좀 씹었던 사람이었나본데, 입이 걸지고 싸대기정도는 눈하나 깜짝안하고 올려붙일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크게 얽힐 일은 없었지만, 동기와 후임들은 하나같이 그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일과시작전 취사장에 집합해있을때, 그는 심심풀이로 고양이 꼬리를 군홧발로 힘껏 짓밟았으며, 그럴때마다 고양이는 빼액하고 비명을 질렀다. 평소에도 상자앞의 접시를 별 생각없이 자주 걷어찼으며 장난이나 애정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딱밤을 녀석의 이마에 먹여 부어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안타까웠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무소불위의 포악한 권력자였다. 나같은 쫄병나부랭이가 감히 뭐라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그저 학대의 순간을 조용히 지켜본뒤 나중에 고양이를 찾아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녀석을 품에 안아주며 조금이라도 아픔이 빨리 사라질수 있도록 연신 등짝을 조심스레 토닥이며 슬퍼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소대에선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날마다 소대원들이 돌아가며 잔반을 개먹이로 주곤했다. 하루는 그 선임의 차례였는데, 그는 개먹이를 준뒤 목줄을 풀어놓았다.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그 만이 알것이다. 목줄풀린 성견은 부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고양이를 발견했다. 늘 묶여서 야성을 통제당하던 짐승에게 작고 움직임이 느린 그 대상은 너무나도 좋은 사냥감이었고, 녀석은 단박에 고양이를 덮쳤다. 뒤늦게 요란한 소리를 듣고 소대원들이 달려갔을땐 이미 모든 것이 엉망친창이 된 상황이었다. 나는 그당시 근무를 나간 상태여서 뒤늦게 이소식을 접했고, 복귀한뒤 곧바로 취사장으로 뛰어갔다. 펄떡이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상자앞에서 고양이를 불렀다. 그리고 녀석의 몰골을 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몸통 군데군데 털이 빠져있었고 핏덩이가 뭉쳐 흉하게 붙어있었으며, 한쪽 뒷다리는 이미 완전히 망가진 것인지 세다리로 위태롭게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녀석을 품에 안고 소리를 삼킨채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토록 작고 연약하며 귀여운 녀석이 그리 됐다는 것이 슬펐다. 나를 진심으로 따르고 좋아하던,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소중한 존재가 그리 된 것이 슬펐다. 무엇보다도 내가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놈이었다.

 

그 이후 녀석은 이전처럼 활발히 움직이지 못했다. 자주 엉덩이를 깔고 앉아 기운없이 애옹거리는 것이 고작이었고, 내가 안아주어도 전처럼 따뜻하고 말랑하던 촉감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축 져친 털뭉치를 들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어렴풋히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원래 소대에서 나더러 복귀하라는 명령이 왔다. 도저히 고양이를 내버려둔채 가고싶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왔던것과 같은 모양으로 군장을 싸서 차에 몸을 실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무상자에 가보았으나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나는 아직까지도 안타깝다.

 

부대에 돌아온뒤의 삶은 이전과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다시금 욕을 먹고 뺨을 맞았으며, 아침이 두렵고 저녁이 반가워지는 상태로 돌아갔다. 선임들은 내가 없었던 기간만큼 나를 갈궜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죄송합니다를 연신 고개숙이고 내뱉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한달정도 지났을떄, 옆부대에 있던 내 동기가 훈련때문에 잠시 우리 소대로 오게 되었다. 30분정도의 만남동안 그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야기 끝에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내게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고양이와 내가 교감한 기간은 2주 남짓이었다. 나는 그 고양이에게서 삶의 희망을, 사랑의 기쁨을, 생명과 생명이 그 자체로 이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녀석은 내가 처음이자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고양이들을 보며 내가 만났던 그 고양이에게서와 같은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다른 고양이도 내 고양이를 닮았다. 모든 고양이는 내 고양이를 닮았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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