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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 가장 불행한 세대라는 글을 보고 늦게나마 몇자 적습
게시물ID : freeboard_7758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확인비행
추천 : 1
조회수 : 2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26 13:52:27
 
 이제 반년후면 40대가 되는 유부남징어입니다.  지하철에서 별 생각없이 어플을 둘러보다 유머글들이 링크 되어 있는 어플을 하나 다운 받고
 
그제서야 오유가 뭔지 알게 되어 이제는 하루도 오유 없이는 심심해서 못사는(가끔은 안들어와요 ㅎㅎ) 사람이 되었는데요.
 
얼마전 가장 불행한 세대라는 글을 보고 , 저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몇자 적으려 시도 하였으나 뭐하는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적었다
 
지웠다 하기를 반복하다 오늘 또 몇자 적습니다. 뭐 대단한 글도 아니고 제 글이 절대적인 것도 아닌 개인의 생각이지만, 세대간의 갈등과
 
피해의식이라는 주제에 저도 할말이 좀 있을 듯 하여 다시 적습니다. 김진호 씨의 "가족사진" 불후의 명곡 영상이 이 글을 적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힘드시죠?  저도 10대 중반 , 후반, 20대 중반 후반 참 힘들었습니다.
 
집은 가난했고 , 상대적으로 부자들이 많이 사는 강남에서 평생을 살아서 그런지 더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말이 좋아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지, 얼마나 구체적인 감정이였냐면요? 혹시라도 친구들이 제가 판자촌에 사는 걸 알게 될까봐 , 누가 저한테
 
"야 나 너 어제 봤어" 이말 한마디만 하면 벌벌 떨어야했고(판자집에 사는걸 봤을까해서)... 집 밖을 나갈 때 애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 혹시라도 또래 아이가 지나가면
 
그 집에서 나오는 저를 봤을까봐 마음 졸여야 했습니다. 혼자 하는 공상에서는 집앞에 키우던 옥수수가 자라서 "마치 " 재크와 콩나무 처럼  커진 뒤
 
우리집을 "철거반" 사람들에게서 구해주기를 바랬구요... 실제로 철거반 사람들이 집을 다 철거해 버려서  잿더미가 된 곳에서 잠을 자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일 친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강남에 잘 어울리는 녀석들이라 그들을 사랑했지만 마음 한켠엔 열등감이 묘하게 자라나게 되었죠. 지금도 다 좋
 
은데 가끔 열등감이 폭발할 때는 저도 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진짜 제대로 된 판자촌 보신 적 있으신지요? 예전 잠시만난 친구를.. 현재에도 존재하는 판자촌에 데려갔더니, 아무말 없이 한참을 울더군요.
 
판자촌은요   진짜 판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슬라브와 천으로 덮여 있구요. 아버지가 여러가지 기술이 있어서 나름 집을 계속 보수하였지만, 겉에서 
 
보면 그 모습이란.. 일본 노숙자의 텐트만도 못한 느낌을 주죠..
 
전 그곳에서 딱 20년을 살았습니다. 20년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군분투를 봐왔고 같이했죠..
 
앞에 너무 제 어려움만 말씀 드렸는데, 부연설명이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 부터입니다.
 
여러분... 젊은 여러분
 
저는 여러분께 그 시절 너무 어려웠다. 지금은 참 시절 좋아졌다 괜히 푸념만 하지말고 살아라..이런 꼰데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39세의 나이 저 역시 지금이 현실이고 여러분만큼 ..가끔은 앞이 안보이고 무엇을 해야하나 하는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 때때로 여러분들이 한탄을 그리고 가끔은 저주의 말을 퍼붇는 기성세대, 콘크리트 층
 
그들의 세대에 대해서도 , 한번쯤 애정을 갖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바라본 해방전후 태어난 제 아버지 세대들은
 
지금과는 또 비교할 수 없는 아픔과 어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시절에, 자식들을 위해 그들의 젊음을
 
희생한 분들입니다.  실제로 그 시절 , 지금 어린 세대들이 생각하는 변화와 기회의 시절은, 제가 기억하기로 , 일용근로자만 넘쳐났던 시절이었고
 
그마저도 일거리가 없어서, 태반의 3-40대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놀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정치는 불안정했고, 사회제반 시설은
 
열악했습니다. 하는일도 농사, 어업, 도시 빈민가의 잡업무 밖에 없었죠.  실제로 저희 집에서도 봉지쌀을 얻으러 다녀야했고, 아버지가 아플실 때
 
본인 스스로 주사를 놓아야 했습니다. 병원갈 돈은 커녕 오늘 당장 먹을 걸 구해야했죠. 상대적 박탈감이 넘치는 지금과는 또 다른 절대빈곤의 시기
 
였습니다. 제가 가장 하층의 삶을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하루도 안빠지고 식당일, 목욕탕 청소, 야쿠르트 판매를 해
 
야했고, 아버지는 기술을 바탕으로 소위 말하는 노가다판을 도셔야했죠. 물가는 또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거의 대부분의 소비재를 사는 건 진짜
 
큰맘을 먹어야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아버지가 큰맘 먹고 전축을 사온날, 옆집 중학생 누나가 노래를 들으러 우리집에 왔으니까요.
 
그런 시절의 젊은 아버지, 어머니,
 
지나고 보니, 지금의 저보다 어렸던 아버지 어머니는 그 삶의 무게를 오로지 지고 뚜벅 뚜벅 걸어 오셨습니다. 그 세대의 어른들, 때로 너무 답답해 보이
 
는 이제는 화석처럼 보이는 그분들, 지하철에서 막 밀고 들어오고, 서투르고 매너없는 그 시대 사람들이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 할머니
 
입니다. 지금도 컴터 앞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  앞길이 막막하셔서 한숨이 나오고, 그런것들이 사회 전반의 구조가 부익부 빈익부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근데 , 그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가 젊은이었을 때도 세상을 그랬습니다. 아니요. 사실은 더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가난했고 ,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불공평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오죽하면 남의 전쟁에 가서 죽어라 ... . 지시가 내려져도 그것을 따라야만 했고,  불합리한, 아니 더러운 근무 조건
 
때문에 누군가는 분신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항 하다 죽기도 했죠. 
 
콘크리트 층이 없어져야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 불공평한 세상을 만든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고 싶은세요? 
 
대부분의 그 시절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앞이 안보이고, 세상의 책임은 무겁고,  취미도 인생의 의미도 찾기에는
 
그 시절이 더 그랬습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 앞에서 저울질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맥도날드 알바를 해야하는 삶을 한타하는 글을 보며, 그 시절 맥도날드 알바 일이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저를 보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또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하신일은 그것과 비교 안되게 힘들고, 더 적은 돈을 받았으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내 젊음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리신 분들,,,,.,,
 
지금의 불공평을 분명 그세대가 만들었겠지만, 그 시절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불공평에 평생을 살아야했고,
 
우리처럼 화면으로나마 불평 조차 할 수 없었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평생 책임만 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작게나마 그 시절에 대한 변호를 조금 하고 싶었습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평벙한 삶은,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 결코 과거가 미래보다 호시절이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변해야 하죠, 잘못된 관행 없어져야 하고 불공평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책임이 특정 세대에 있지만은 않습니다.
 
시류에 흐름속에 제가 생각하는 기성세대들 충분히 열심히 했고 충분히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의 손자 손녀, 아들, 딸 입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하는
 
그래서 그들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자판안에서만, 분석적이지 않고, 남탓이나 세월의 탓만 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그런 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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