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는 군인입니다. 저는 분명히 그사람의 여자친구입니다만, 그사람의 선임,동기,후임들이 으레 여자친구들에게 받는 '소포'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사람 입대한지 고작 반년이기에 언젠가는 보낼 수 있는 날이 있을거에요.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모자르고, 언제나 미안한 저는.. 다른 사람들의 선물이나 편지를 보고 내심 부러워하는 그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나봅니다. 워낙에 손재주나 아기자기한 면이 없어 요리도, 선물상자를 꾸미는것도, 예쁜 글씨를 쓰는 것도 못합니다. 다행인지, 가까운 곳으로 배치를 받아 한 달 내리 면회를 다니기도 했지만 한 달 이라고 해봐야, 손으로 꼽히는 횟수인데다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싸서 간 일도 없습니다.
그사람 주변에 누군가가 애인에게 소포를 받은 날이면 내 심장이 타들어갑니다. 박스 안쪽 면을 가득 채운 편지글과, 그 안을 가득 채운 이런저런것들_ 나도 한다고 해 보면, 왠지 모르게 안하는 만 못하는 기분이 들어 접고 말아버립니다. 하는거라곤 학과 공부밖에 없는 대학생의 지갑은 그리 넉넉하지 않고, 넉넉하지 않은 지갑은 허전한 선물박스를 만들어버립니다.
전지 편지_라는 것.. 대개는 여자친구가 쓰는건데_이사람은 사촌동생들에게 받았다고 합니다. 동생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그런것들을 할 수 있는 동생들이 부럽기도 하고, 구구절절..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나는..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사랑해"와 "건강히 지내" 뿐입니다. 보고싶다고, 우리 작년 이맘때는 이랬다고,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는 너와 데이트하고싶다는 종종거리는 말들은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그사람 혹여라도 미안해할까 망설여지는 말들입니다.
그냥..혼자 벽에 대고 그사람 이름을 불러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 집니다. 녹음된 그사람 목소리를 수십번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심장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마음을 다 전하기엔 제가 너무 게으른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요리를 배우고, 덤벙대는 것을 꼼꼼한 성격으로 바꾸고, 그사람에게 아양떠는 듯한 글씨체를 연습하기엔 제가 너무 게으른가봅니다.
그사람은 아니라고, 그런게 아니라도 좋다며 손사레를 쳐도 나는 그런것들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어떤것을, 뭐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내가..잘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