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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도, 녹화로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 나는 팟캐니 하는 것도 관심 가는 것의 분위기 파악을 위해 조금 살펴보는 경우가 있을 뿐, 끝까지 본 적은 지난 해 4월 총선 결과를 분석하는 파파이스 한번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어제(2월 18일) 예종석-손혜원의 페이스북 방송은, 오늘 유튜브를 통해 끝까지 보았다. 시작하고 보니 닫게 되지 않았다. 현대 한국 정치 이면사를 포함하여, 결코 단순하지 않은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 그들의 대화는 나에게, 박진감마저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휴먼 드라마와 같았다. 재미있었고, 진솔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들 대화 끝부분에 예종석이 문재인을 만난 장면이 있었는데, 문재인에 대한 예종석의 인상 요약은 '순박함'이었다. 그것은 예종석에 대한 나의 인상 요약이기도 하다. 결코 범상치않은 내공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예종석은, 특히 아버지(예춘호) 이야기를 할 때 그 눈빛이나 입매가 그랬는데, 소년처럼 참 순박해 보였다. 그랬기에 소녀적 감성의 소유자인 손혜원과 함께 하는 그 방송 전반의 순도가 더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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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재인을 만난 바로 그 대목에서, 예종석이 전해준, 문재인의 한마디가 있다. 손혜원이 예종석을 소개하면서, 공격수입니다,라고 했을 때, 문재인은 대뜸, 공격 안해도 됩니다,라고 했다는데, 그 한 문장이 예종석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문재인의 문장은 꽤 많이 듣거나 읽어온 셈일 텐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한 문장을 고르라면, 아마 머뭇거리게 되지 않을 듯하다. 공격 안해도 됩니다 - 관점에 따라서는 섬뜩할 만큼 무서운 것일 수도 있을 이 한 문장에는 문재인의 모든 것이 오롯이 함축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튜브를 본 다음, 부엽토 채취를 핑게대고 뒷산에 올라가 우렁각시와 시시덕거리며 노는 동안, 이 소감을 정리해볼 생각을 했기에, 집에 돌아와 이 인용 부분 확인을 위해 네이버 검색에서 유튜브를 찾으니까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인용 부분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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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우습고, 좀 이상하고, 좀 서글픈 것이 되겠지만, 임박한(아마도)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쩌다 보니 文 vs 非文 구도가 되었다. 문재인을 제외한 모든 야망가들과, (거의) 모든 언론들은 다투듯이 문재인을 공격한다. 어떻게 된 셈인지, 문재인은 온통 적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대중적 지지는 첫번째이니 더 야릇하다. 그런 형편이기에 그들의 적은 더 악날해질 수밖에 없을 듯한데, 그들의 그 공격은 '물어뜯는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을 만큼 야비하고 치사하고 잔인하고 집요하다. 그런데도 문재인이 반격, 그런 것을 한 적은 없다.
한국 당대 정치판 최고 막말쟁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계 최저질로 평가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판을 한층 더 downgrade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박지원과 김종인,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젖혀두면 다른 하나에게 불공정한 게 될 것이기 때문인데, 이 두 사람의 막말 가운데 대부분은 바로 문재인을 겨냥한다.
그들은 마치 문재인을 물어뜯는 것으로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고, 사실 그들이 문재인 물어뜯기 덕분에 올린 정치적 매상도 꽤 된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은 기생물들에게 영양가 높은 숙주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모태 기생물일 그들에게 문재인은 언제나 젠틀하게 너그럽기만 했으니, 기생물들 입장에서 문재인의 숙주적 가치는 더 높은 것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얼마 전, 막말계의 대가인 박지원에 의해 극찬양을 받으면서 새로 태어난 '독철수'가 <짐승같은 인간>이라는 지나치게 저렴해 보이는 공격을 했을 때도, 문재인은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냥 넘어가죠' 하고, 역시 젠틀하게 웃고 있기나 했다. 일부러 그 장면을 되풀이하여 돌려 보았는데, 문재인의 표정에는 아주 희미한 것이나마 노여움, 그런 것은 비치지도 않았다. 아, 참, 이상스러운 인간이고나 - 나는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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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런 장면들에서만은 아니다. 문재인은 결코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그 모든 공격에 대해 변함없이 젠틀하게 '사람좋은' 그런 웃음이나 웃고 있었다. 젠틀, 그의 무기는 그것밖에 없는 듯한데, 바로 그런 웃음은 곧 상대방의 적의를 돋우는 것이 되어 그들의 공격은 더 가팔라지고 있지만, 문재인의 대응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는 말했다 - 공격 안해도 됩니다.
'사람은 좋은' 문재인의 생체 안에 그토록 무서운 전략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놀라웠다. 그의 인간적 빛깔이 달라진 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놀라움이 결국 나로 하여금 이런 글질을 하게 했는데, 엔딩 신에 다가가면서 문재인의 '적'들은 더욱더 야비해지고 더욱더 치사해지고 더욱더 잔인해지고 더욱더 집요해지겠지만, 문재인의 이 '非공격 무저항' 전략을 허물어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재인에게는 물론 최선이다. 굳이 진흙탕에서 함께 딩구는 두 마리 개 가운데 하나가 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젠틀 재인'이고, '젠틀 재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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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그 '젠틀 재인'에게 합당한 엄호가 필요하고, 그 엄호는 합당하게 전략적이어야 하는데, 그 전략의 기조는 역시 '젠틀'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재인의 등록 상표인 '젠틀'을 훼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선거는 더티 게임이었다. The dirtiest. 세계 최악. 만일 문재인이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초로 젠틀 게임을 통한 승자가 된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문재인은 한국 역사에 신기원 하나를 이룩해낸 게 된다. 상상만으로도 신바람이 일지 않는가? 그를 그렇게 엄호해야 한다. 이런 전제를 하고 볼 때, 예종석-손혜원 대담 마지막에 나온 요리 비유는 꽤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그 유튜브에서 그들은 문재인을 신선도 최 양질의 식재료에, 그리고 그들 자신은 그 식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요리사에 비유했다. 물론, 요리사는 그들만은 아니다. 강호의 내로라 하는 요리사들이 지금 총집결 상태다. 그런데 그들의 생태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그들 가운데 적어도 상당 부분이 사이비라는 것이다.
그들이 배를 산으로 몰아가는 사공이 될 것인가, 멋진 일품 요리를 만들어내는 역사적 요리사가 될 것인가? 아직은 모른다 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흥미진진한 것일 수밖에 없는 이 게임의 절대적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
과연 어떤 결과가 만들어져 나올 것인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시골에서 흙일 하는 나처럼 하찮은 사람이 이승에서 누리는 삶의 품질과 향기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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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종석, 손혜원, 그리고 문재인이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 새로운 드라마의 박진감은 그 방송의 엔딩 다음에서 더 고조된다. 일상 언어 200낱말이면 충분하다 할 만큼(그 판을 조금 체험한 손혜원은 그것마저 100낱말로 줄여버렸다!) 참 진부해빠진 대한민국 정치적 현실에서 뭔가 궁금증을 간직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게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번 방송을 보는 동안 알아차리게 된 것인데, 예종석-손혜원 팀의 구상은 단순한 '홍보', 그런 게 아닌 듯하다. 문재인을 '상품'으로, 유권자를 '소비자'로 설정하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그것을 그들은 '마케팅'이라 했다. 그들은 무슨 가게를 차려 문재인을 팔려는 것인가? 여러 면모에서, 한국 정치판, 또 하나의 Maverick이라 할 수 있을 예종석의 등장은 흥미진진한 것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출처] Neo-Triangle : 예종석, 손혜원, 그리고 문재인|작성자 게으른 농부
출처 | http://blog.naver.com/chaosandcosmos/2209392009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