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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85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일곱난장이
추천 : 2
조회수 : 503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4/25 08:19:55

오랜시간동안 이 주제의 글을 쓸까 말까 하며 고민했습니다. 원체 아는게 없는 관계로 괜히 창피만 당할게 아닌가 해서 두려움도 있었고요...

그런데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좀 실수를 범하시는 분들이 계신것 같아서 한번 적어 볼까 합니다.

 

요즘 역게나 다른 게시판에서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정리 할때 극단적으로 2가지 정도로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성적으로 보거나 혹은 이성적으로 보거나.(물론 이것은 제가 판단한 분류 입니다.) 전자의 경우 역사를 탐구하는 주체는 전적으로 역사학자 자신이 되며 역사인식에 관한 분류에서는 '비판적인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물론 조금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역사인식에 관한 분류를 인용하자면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감성적으로 살핀다고 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 자신이 현재의 가치체계에서 나오는 감정과 현재의 문제의식 충실한 나머지 과거를 단절적으로 파악하는바, 과거에 인정되고 이해 되었던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현재의 정체성으로 과거의 역사를 인식 및 대응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철저한 현재주의 라고 할수 있겠네요.

 

반면 후자에 속했던 이성적으로 보는 역사는 절처하게 증거와 근거를 통해 살피는 역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역사를 탐구하는 주체는 과거에 존재 했던 역사의 행위자가 되며 역사인식에 관한 분류에서는 '전통적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역사를 이성적으로 살핀다고 하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가치체계와 그에 관한 근거에 충실한바 과거를 현재와 직결시켜 시간에 따른 사상과 가치관의 변화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덕분에 현재의 문제의식과 동떨어진 과거의 근거만을 가지고 과거주의의 역사에 매몰된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철저한 과거주의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엔 다른 차원에서 두 태도를 비교해 볼까요? 고등학교 수준의 문학 학습에서 '감정이입'이라는 기법이 있는 것을 아실것 입니다. 역사에는 역사적 감정이입 존재 합니다. 인간의 동기와 관념을 중심으로 봐야 하며 역사에서 인과 법칙은 성립하기에 어렵다는 입장의 관념론에서 역사 인식의 방법으로 주장하는 이 역사적 감정이입은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가 과거에 존재했던 행위자의 동기와 사상을 탐구하는 방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콜링우드는 충분한 사료와 자료가 있다면 현재의 사가가 과거의 행위자의 사상을 살피는 '재연'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해석학자였던 딜타이는 역사가의 선행 이해와 행위자의 행동이 만나는 '추체험'의 방식을 주장한바 있습니다. 뭐... 좀더 간단히 말하자면 문학에서 말하는 감정이입처럼 과거의 행위자의 동기와 사상을 현재의 사가가 이해 하는 역사적 감정이입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료와 역사가의 선행지식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주의점은 있다는 거죠 우선 감정이입이 동일시 혹은 동감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감정이입은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학자의 사상을 과거의 행위자의 사상에 어느정도 맞춰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 보죠. 전자의 경우 학교에서 고종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한번 생각해 보죠. "선생님은 고종의 비탄에찬 감정에 심취하고 자신을 그 감정과 사상에 동일시한 나머지 대한제국의 멸망에 관하여 비통에 가득차에 가르치며 동시에 복벽운동과 광무개혁을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소개 합니다. 반면 일제와 임시정부등은 악적과 테러리스트 정도로 소개 합니다." 다들 보셔서 알겠지만 문제가있는 선생님입니다. 이 선생님은 역사적 감정이입에는 성공했지만 과도한 감정이입에 의하여 그만 동일시라는 우를 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선생님이 교수하는 고종에 관한 역사는 객관성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지요. 역사를 살피는데는 현재적인 사상에 기반을 둔 상태에서 어느정도 감정이입을 해야지 그 객관성을 지킬수 있으며 현재의 문제의식에서도 멀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생님은 현재의 사상보다는 과거의 사상를 중시한 나머지 그에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고 긍정적인 역사인식에 실패한 케이스 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에 후자의 예를 들어 보죠. 이번에는 칼에 맞고 쓰러져있는 신석기 인을 공부하는 학생을 생각해 봅시다. 이 신석기 인은 자신이 낫기 위해서 자신의 상처를 씻는게 아니라 칼을 씻고 정성스래 보관 합니다. 학생은 생각합니다. '아 신석기 사람 진짜 멍청하네? 왜 칼을 씻냐? ㅋㅋㅋㅋ 이 시대 사람들은 전부 멍청했는 가보다 ㅋㅋ' 이번의 경우에는 학생은 감정이입에 아예 실패 했습니다. 이를 감정이입의 5단계에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단계'라고 지칭합니다. 이 학생은 현재적인 정체성과 관념에 충실한 나머지 과거의 사상에 무지했고 관심도 부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시대는 현재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착각을 해버린 셈이죠.. 역사를 살피는 데는 현재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 연구의 대상은 과거의 행위자이기 때문에 본인의 사상외에도 과거의 사상에 어느정도 이해를 해야만 합니다.

 

이 정도 읽으 셨다면 어느정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인식하는데에는 감성적이고 과거지향적으로 바라보거나 이성적이고 현재지향적으로 바라보는 두가지 모두가 필요 합니다.  현재를 살아는 가는 우리인 만큼 현재의 가치관과 문제의식에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크로체는 이와 관련해서 '과제적 현재'라는 표현을 썻는데 현재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현재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가치체계만을 가지고 역사를 인식한다면 신석기를 바라보는 학생의 예 처럼 우리는 역사의 진의를 살필수 없게 됩니다. 즉 과거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동조 혹은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조금더 직설적으로 말해 볼까요? 우리가 조선 후기를 살핀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은 무능하다. 맨날 당파 싸움 이나 하고 세도 정치나 해서 나라를 말아 먹었다. 고종도 무능하다. 망국의 왕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들은 문명화 할떄 조선은 뭐했냐?" 이 경우 역사를 현재의 가치관에 매몰되어서 보고 계신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가치관과 맥락적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역사를 인식 하신 거지요.. 반대의 경우를 볼까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은 뛰어나다. 그들의 문화는 동시대에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고종은 이이제이를 시도했지만 운이 나쁜 케이스였다." 이 경우 역사를 과거에 매몰되어서 보고 계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동일시에 의해서 현재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린 케이스 이지요.. 결국 우리는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서 중용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석박사 학위가 있는 것이고요.. 단적인 예로 "조선의 붕당은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후기에 변질되었으며 이는 외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에 부족한 면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은 실학과 민간차원에서 자본주의와 학문적으로 근대적 요소를 보이고 있었다." 이정도가 바로 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물론 단순한 예시에 불과합니다. 제 의견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역사를 살피는 분들을 위해 방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드레이란 학자의 '합리적 설명' 이라는 방식입니다. 조금만 검색해 보시면 충분히 아실테지만, 이 방식은 사실 역사를 인식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설명하는 방식이지요. 다만 제가 이를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이 합리적 설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합리적 설명은 과거 행위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행위자의 사고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행위자에게는 가장 적절했음을 밝히는 방식입니다. 물론 현재적 가치에 의하면 터무니 없는 행동도 존재하지 마련입니다. 위의 신석기의 예처럼요. 하지만 신석기인들이 그렇게 행동한것에는 그에 맞는 합리적인 이유에서 행동했다고 봐야 합니다. 부족한 의학 지식, 에니미즘적인 사상 등이 복합적으로 행위자의 사고에 작용했을 것이고 결국 그가 택할 수 있었던 다양한 행동들 중에서 칼을 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합리적 설명은 현재의 가치체계 하에서 과거의 행위자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제가 그토록 말하고자 했던 바로 그 중용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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