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report가 제공한 통산 프로야구 경기당 득점 추이
야구통계사이트 KBREPORT에 따르면 10월 13일 기준 KBO리그의 경기당 득점은 5.62점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높은 경기당 득점이다. 경기당 득점 1위 시즌(5.38점)이던 1999년과 비교해도 0.24점이나 높다. 리그 OPS(출루율+장타율) 역시 0.808으로 역대 시즌 가운데 가장 높다. 유일한 8할대 OPS 시즌이다.
경기당(팀당) 홈런도 예외는 아니다. 올 시즌 경기당 홈런은 1.01개로 역대 프로야구 시즌 가운데 4번째로 높다. 참고로 올 시즌보다 경기당 홈런이 많았던 건 1999년(1.21개), 2000년, 2002년(1.06개), 2009년(1.09개)뿐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두자릿수 홈런 타자도 다수 배출했다. 올 시즌 홈런 10개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무려 42명이다. 2009년 48명을 배출한 이후 가장 많다. 참고로 2009년 팀당 경기수는 133경기로 올 시즌보다 5경기가 많았다. 현재 9, 8홈런을 기록 중인 타자가 7명이기에 시즌 두자릿수 홈런 타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kbreport가 제공한 통산 프로야구 BABIP 추이
KEREPORT 관계자는 “BABIP(홈런과 삼진을 제외한 인플레이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메이저리그는 1931년 이후 단 한 번도 BABIP가 0.304 넘은 적이 없다”며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 BABIP가 사상 최고치인 0.329라는 건 투수력과 수비력 약화, 리그 경기력 저하 등 여러 면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 0.300이던 BABIP가 2013년 갑자기 0.314로 뛰었다가 올 시즌 0.329까지 폭등한 건 ‘평균이 지배하는 야구’에선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라고 덧붙였다.
PITCH F/x(투구위치 추적 시스템) 전문가인 송민구 야구칼럼니스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송 칼럼니스트는 “리그 수비력이 떨어져 BABIP가 오른 게 아니냐고 분석하는 분도 있지만, 2년 새 BABIP가 3푼 이상 올랐다는 건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며 “리그 주전 수비수 다수가 입대하거나 부상에 신음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BABIP가 폭등할 이유는 없다”고 단언했다. 송 칼럼니스트는 “단, 인간의 힘을 제외한 외부적 요인이 개입해 BABIP가 폭등할 가능성은 있다”며 “앞선 시즌과 비교해 ‘공인구 빼고 달라진 게 없다’면 공인구라는 외부적 요인을 집중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따지고 보면 공격수치만 오른 게 아니다. 투수력과 관계된 모든 기록도 상승했다. 올 시즌 리그 평균자책 5.23은 역대 프로야구 최고(最高) 평균자책이자 사상 초유의 5점대 평균자책이다. 경기당 홈런이 1.21개였던 1999년에도 리그 평균자책은 4.98이었고, 역대 가장 많은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던 2009년도 리그 평균자책은 4.80이었다.
개인기록에서도 변화는 확실했다. 올 시즌 KBO리그 평균자책 1위는 3.18의 밴덴헐크(삼성)다. 2위는 3.33의 김광현(SK), 3위는 앤디 밴헤켄(넥센)의 3.51이다.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KBO리그는 2003년 이후 2번째로 3점대 평균자책왕을 배출하게 된다. 참고로 2003년 평균자책 1위였던 바워스(현대)의 평균자책은 2점대에 가까운 3.01이었다.
KBO와 각 공인구 업체의 자체 반발계수 측정치를 포괄적으로 분석해 매해 평균 반발계수를 낸 그래프다. 참고로 하드스포츠는 2014년부터 롯데 공인구로 사용됐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KBO가 공인구 반발계수를 측정한 건 2007년부터였다. 이전까진 2m 높이에서 공을 떨어트려 반발력 이상 유무와 공의 찌그러짐을 파악했다. 당연히 육안으로 측정했기에 정확한 반발계수는 고사하고, 3개 공인구(스카이라인, 빅라인, 맥스(현 ILB))간의 반발력 차이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KBO가 처음으로 반발력 테스트를 시작한 게 2007년이었다. KBO 정금조 운영본부장은 “그해 국내 공인구 업체 3개사의 공을 수거해 NPB(일본야구기구)가 의뢰하는 일본 차량검사소에 공인구 반발력 검사를 맡겼다”며 “KBO 창립 이후 첫 공인구 반발력 테스트였다”고 회상했다.
KBO 자료에 따르면 당시 3개 업체의 반발력 검사에서 스카이라인은 0.4250, 빅라인은 0.4280, 맥스는 0.4350이 나왔다.
KBO와 NPB 공인구 기준(0.4134~0.4374)를 만족하는 수치였다. 2008, 2009년에도 KBO는 일본 차량검사소와 국내의 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의뢰해 공인구 반발력 수치를 쟀다. 결과는 이전과 같은 합격이었다.
KBO가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공인구 반발력 검사를 시작한 건 2010년이었다. 정 본부장은 “그즈음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스포츠용품검사소에서 ‘스포츠용품 검사를 국외가 아닌 국내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반 시설을 갖췄다. 우리에게 앞으로 공인구 반발력 검사를 맡겨달라’는 제의가 와 흔쾌히 공인구 반발력 검사를 맡겼다”며 “일본 차량검사소의 공인구 반발력 검사와 거의 차이가 없어 이때부터 스포츠용품검사소에 주기적으로 공인구 반발력 검사를 맡겼다”고 밝혔다.
기자는 시즌 중반 A 구단의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A 구단이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 서로 다른 공인구(같은 메이커이지만)를 쓴다는 것이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이유는 모르겠지만”이란 단서를 달고서 “구단 운영팀 관계자가 볼걸한테 공을 내줄 때 ‘우리팀 공격일 땐 이 공을 심판한테 주고, 상대팀이 공격할 땐 이 공을 내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볼걸은 의심없이 두 가지 공을 내줬다고 한다. 이 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이유를 몰랐지만, “A구단이 공격할 때 공이 더 딱딱하고, 멀리 나간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 구단과 상대했던 다른 구단 직원 역시 “나도 의심스럽게 쳐다본 적이 있다. 이상하게 공을 따로따로 주더라”며 “우리가 공격할 땐 건조가 잘 된 고반발력공, 우리가 수비할 땐 습기가 가득 찬 저반발력공을 사용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덧붙여 “야구공을 덮고 있는 비닐 포장을 벗겨 창고에 보관하면 자연스럽게 공에 습기가 찬다”며 “여름철엔 그런 식으로 습기를 먹인 저반발력 공을 상대팀 공격 때 사용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1980년대 일본 프로야구에선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팀과 상대 팀 공격 시 서로 다른 공인구를 제공한 것이었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질 뻔 했던 이 사태는 '철저한 공인구 관리'를 내세운 NPB의 중재 덕분에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A 구단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 구단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를 부인했다. 그는 “경기 중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공을 나눠 볼걸한테 전달해줄 있겠느냐”며 “그런 의혹 제기는 음해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음해”라고 목소릴 높였다. 그는 "어디 가서 그런 말씀 마시라"며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이 팀의 홈 경기를 지켜봤을 때 볼걸이 구심에게 공을 따로따로 전달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KBO리그에서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건 공인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구장을 가봐도 공인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의혹을 불식하려면 그날 사용할 공인구를 봉인해 경기 시 심판이 봉인을 풀고 그 공만 사용하는 ‘기본적인 절차’를 정하고, 그걸 따르는 길밖엔 없다. 지금처럼 홈구단 운영팀에서 전해주는 공을 아무 의심없이 사용한다면 의혹은 또다시 제기될지 모른다.
야구공은 야구계의 화폐다. 화폐가 신뢰를 잃으면 그 나라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공인구와 관련해 심도 깊은 논의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