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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주었다 #2
게시물ID : panic_853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23
조회수 : 13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8 20: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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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이 요즘 잘 나가신다며?"

 같은 영업부 소속의 강 사원이 말을 걸었다. 악의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뭐라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는 나를 뾰루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자아자! 오늘도 열심히!

 -아자아자!

 가벼운 어지러움을 달래기위해 로비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려왔다. 앳된 표정에 불안한 눈동자를 굴려가며 구호를 따라하는 신입사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알고나 들어온걸까. 실소가 슬그머니 터져나왔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삼켰다. 



 나 또한 입사 당시, 회사에 헌신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들어왔다. 지옥에서의 지난 5년간, 가축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노예처럼 일했던 지난 날들이었다. 어쩌다 운 좋게 이 회사의 채용공고를 확인했고 어떻게든 노예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해서 입사할 수 있었다. 뭐 정확히는 죽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의 영업 경력이 아무래도 그들의 눈에 들어왔나 싶다.
 어쨌든 저 가엾은 신입사원들을 뒤로 하고 자판기의 커피를 꺼내 마셨다. 
둔탁하고 검으스름한 빛깔. 철 맛이 느껴지는 찝찝한 뒷 맛. 오늘따라 더욱 살아 생전에 먹었던 커피가 그리워졌다.


 "네, 네! 이쪽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먼 발치에서 발자국 소리들과 함께 부장님의 모습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에는 창백한 낯빛의 검은 그림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저들이 바로 이 회사의 주 고객. 간단히 말해서 VIP 고객들이었다. 부장님은 얼굴도 형체도 없는 그들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로비에서 기계처럼 구호를 외치던 신입사원들도 그 광경을 보았는지 얼어붙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존재들을 마주하니 놀라만도 했다. 나 또한 그랬었으니.
 부장님의 빠른 발걸음과 함께 검은 그림자들도 사라지자 조용했던 로비도 그제서야 웅성웅성대기 시작했다.


 사실 저 존재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내가 아는 정보로는.

 회사의 주 고객. 어떠한 연유로 우리와 거래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매출의 90%가 저 고객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라 일각에서는 저들을 위한 서비스 회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뭐 어찌됐든 저들 덕분에 회사 경영도 상당히 순조롭게 돌아가고 월급이며 복지며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받고 있으니 아무도 더 이상 깊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



 회사 밖으로 나와 넓은 황야를 바라 보았다.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워 있었고 대지 곳곳에서는 누군지도 모를 이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 떨어져가는 옷가지를 겨우 걸친 채 얕은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거대한 채찍을 휘두르며 날카롭게 주시하는 악마들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 중 한 악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싱긋-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악마가 웃었다. 

 '저 새끼.'

 회사에 입사하기 전 저 악마에게 지독히도 채찍질을 당하던 때가 떠올랐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저 악마는 그저 우리를 장난감 취급하며 갖고 놀았다. 자기 눈 앞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불쾌하다며 채찍질을 당하기도 했고, 일을 마치고 겨우 쉬려 자리에 앉으면 이유없이 다가와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침을 뱉으면 그저 맞아야 했고 불같은 채찍질에도 피하거나 그만하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그런 존재였다. 예전의 나는,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들은. 지옥의 노예란 이런 대접이다.
 어쨌든 악마의 웃음에 나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악마가 채찍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겉으로는 웃고있지만 나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난 상태임이 분명했다.



 무거운 마음을 다시 그 곳에 놓아둔 채 뒤돌아서려는 찰나에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점을 잃은 멍한 눈. 악마의 채찍질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내 고개를 돌리게 했던 그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느 노예들과 다를 바 없는 행색이었다. 불에 그을린 양복이 아니었으면 그 남자였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나왔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도 되돌리고 되돌아가며 불길 속을 헤집던 남자였다. 거래의 조건이 터무니없음을 알면서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받아들였던 남자였다.
 무거운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행여나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칠까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회사로 냅다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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