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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과적과 운항관리자, 그리고 망민(罔民)
게시물ID : sewol_335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광필
추천 : 2
조회수 : 4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7/31 07:50:01

1. 망민(罔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 등문공편에 나오는 말인데,
"사흘 굶어 담 안넘는 놈 있냐? 위정자가 먼저 백성들을 안굶게 해줘야지, 굶겨놓고 담 넘었다고 처벌하면 그게 백성을 그물쳐 잡는 놈이여"
라는 뜻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가르치지 아니하고서 형벌하는 것을 일러 망민(罔民)이라 한다. 비록 흉악한 불효자일지라도 일단 가르치고 나서 고치지 아니하면 죽일 것이다."라며 망민의 뜻을 약간 달리 풀이하기도 합니다.

2. 세월호에 대한 안전점검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운항허가를 내 줬다는 이유로 지난 5월 인천항의 '운항관리자'가 구속됐습니다. 선장이 써온 보고서를, 운항관리자가 실제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싸인해줬다는 혐의입니다.

'운항관리자'란 항구에서 배가 떠나기전, "배가 과적, 과승원 하진 않았나. 안전 장비는 잘 갖추었나를 감독하는 직업"입니다.

지난 1970년, 남영호가 침몰해 326명이 사망하는데, 이때 남영호 침몰의 원인중 하나로 지적된게 '과적', '과승원'이었습니다.(당시 남영호는 승객 158명과 화물 150톤을 싣고 출항하였고, 성산포에 기항하여 승객 98명을 더 태우고 부산을 향해 출항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승객 338명, 화물은 540톤을 넘었음이 이후의 조사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과적, 과승원 문제를 여객선사에 맡겨둘 수 없다" 해서 1972년 해상운송사업법 개정으로 운항관
리자제도가 도입되고 1973년 해기면허를 소지한 운항관리자를 선임해 부산을 비롯한 전국 주요항만 11개 지역에 운항관리자 17명을 배치했습니다.

단, 정부는 이 운항관리자를 운영할 돈이 없다며 이들에 대한 선발과 연봉 지급등을 '해운조합'에 맡겨버립니다.
해운조합은 여객선사들의 모임입니다. 여객선을 단속해야 할 사람들이 여객선사로 부터 월급을 받으면, 과연 그 단속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요?

그 결과 1993년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사망합니다. 물론 이 사고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당시 조사반은 서해훼리호가 과적, 과승원상태였으며, 이것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운항관리자가 항구에서 체크를 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과적에 의한 사고가 난 것입니다. 운항관리자 17명이서 그 많은 배를 다 체크할 수가 없어 속칭 '가라'로 관리하다 문제가 발생한 거죠.

정부는 이에 따라 운항관리자를 91명까지 늘렸습니다. 서류만 믿지 말고 실제로 현장을 가라고 지시한거죠.

그런데 매년 여객과 화물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운항관리자는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듭니다. 지난 2003년에는 81명이었고 2010년에는 62명까지 감소합니다. 2012년에는 74명으로 소폭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여객선 이용객이 4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운항관리자 일인 당 업무는 10년만에 53%이상 늘어난 셈입니다.

이는 운항관리자를 고용, 관리하는 여객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이 영업이익이 점점 줄어든다는 핑계로 운항관리자를 점점 줄여나가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2012년 기준 인천항의 운항관리자는 모두 7명으로 관리자 1명당 24만4416명의 승객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니 운항관리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격무에 현장을 소흘히 하게 됩니다. 선장이 적어오는 서류에 싸인을 해주는 싸인기계가 되는 거죠. 주변의 동료들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깐깐하게 굴다가 '물주'인 여객선주들에게 밉보이면 자기도 짤리는거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역시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것은 "과적"문제입니다.

그리고 과적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혐의로 운항관리자가 처벌받기에 이르죠.

3. 물론 자신이 책임지고 '싸인'한게 사실과 달랐다면, 운항관리자를 처벌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그릇된 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과적 적발 실패'의 원인이 운항관리자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해야 할, 운항관리자 선발 및 관리, 보수지급등의 업무를 "돈이없다"는 핑계로 여객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에 맡겨 운항관리자들의 업무를 폭증시키고, 여객선사의 눈치를 보게 만든 정부의 책임일까요?

"정부가 이걸 몰랐던거 아니냐"고 정부 편을 드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당시 국토해양부에 제출한 ‘연안여객운송산업 장기 발전방안 연구’( http://www.prism.go.kr/homepage/researchCommon/retrieveResearchDetailPopup.do?research_id=1611000-201200080 )

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현재 체제의 장점은 운항관리자와 선사가 상호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단점은 안전을 책임지는 운항관리자가 고용된 관계로 사업자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사업자가 비용 증가 부담으로 운항관리자의 신규채용을 불허하면서 인력을 늘리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하고 대안마련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7275만원을 들여 조사한 보고서를 보지도 않았거나, 아니면 문제를 알면서도 "돈이 없다"는 핑계로 계속 해운조합에 자신들의 책임을 떠맡겨 온 것입니다.

운항관리자들에게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나서,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서류에 싸인했다'며 처벌하는 것이야 말로 "망민"이 아닐까요??

http://biz.heraldcorp.com/common_prog/newsprint.php?ud=2014042400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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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맹자 등문공 上편에 나오는 '망민' 입니다.

民之爲道也有恒産者(민지위도야유항산자)는 : 백성의 도를 행함에 항산(재산)이 있는 사람은
有恒心(유항심)이오 : 항심(도덕심)이 있고
無恒産者(무항산자)는 : 항산이 없는 사람은
無恒心(무항심)이니 : 항심이 없는 것이니

苟無恒心(구무항심)이면 : 진실로 항심이 없다면
放辟邪侈(방벽사치)를 :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특하고 사치한 짓을
無不爲已(무불위이)니 : 하지 않을 짓이 없을 것이니

及陷乎罪然後(급함호죄연후)에 : 죄에 빠진 연후에
從而刑之(종이형지)면 : 미쳐 따라서 처형한다면
是(시)는 : 이것은
罔民也(망민야): 백성을 그물로 잡는 것이다

焉有仁人在位(언유인인재위)하여 : 어떻게 '인'을 가진 사람이 남을 다스리는 지위에 있으면서
罔民(망민)을 : 백성들을 그물쳐 잡는 것을
而可爲也(이가위야)리오 :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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