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친구하고 PC방을 가서 롤 듀오랭을 돌리고 약간의 남는 시간을 이용해 사이퍼즈를 한판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급은 6급이었고 저 또한 아주 잠깐 하다다 만 넥슨 계정으로 접속해서 3급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친구와 다르게 알맹이가 달랐기 때문에

당연히 손쉽게 판을 이기리라 생각하고 거침 없이 일반전 버튼을 눌렀습니다.

간만에 저급이랑 붙어서 그런지 랜덤보단 셀렉이 많았고 그 중에 전 복귀 선물을 이용해 벨져를 셀렉했고 친구는 초심자가 보기에 제일 멋진 캐릭터인

카인을 셀렉했습니다. 상대 편 또한 저희와 같이 셀렉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돌연 내게

"너 이거 이길 수 있냐?"

라고 물었고 전 당연히

"당연히 이기지. 나 52급이야"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다시 묻기를

"대단하네. 52급 되려면 얼마나 해야되는거야"

그리고 전 친구의 질문에

"한 1년은 해야 될 걸"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뭐 50급 이상을 찍는 건 개인마다 다른 게 사실입니다만 전 실제로 1년 만에 본캐로 50급을 찍었었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친구는

히죽거리며

"이거 꼭 이겨야 하는 거네"

라고 말했고 저 또한 웃으며

"이걸 지면 내 1년 사퍼 인생을 부정하는 거지"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자 전 상대편 원캐들을 회쳐 먹었고 폭풍같은 성장을 하게 됩니다. 평소 같았더라면 약간의 탱키함도 갖췄을 테지만 상대편이 저급인 걸 생각해 오로지 공격력 관련에만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상대편의 아이작이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 제가 상대편 원캐들을 전부 죽였을 즈음이면

아이작도 저희 편의 원캐들을 대부분 죽인 뒤였습니다. 그래도 아이작과의 일기토에서 제가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었기에 게임은 조금이나마 저희에게 유리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제일 고통받던 토마스가 게임을 나가게 되고... 컴토마스가 전장에 출전하게 됩니다.

공방에서 수많은 전설을 낳은 컴토마스를 생각하니 약간 겁이 나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 전부 지어낸 것 뿐이라 여기며 평소와 같이 뒤로 들어가

원캐들을 코인으로 산화 시켜버리고자 했습니다. 컴토마스의 견제는 염두에 두긴 했지만 결국엔 제 돌파가 허용될 것이라 여겼었죠.

하지만 컴토마스는 말도 안되는 콤보를 쏟아부은 뒤 일인궁을 내다박았고 그 동안에 아이작은 저희 진영의 청소를 깜끔히 끝내버렸습니다.

마지막엔 저 또한 코인으로 변해버렸고 전 1분 가까이 되는 리스폰 시간 동안 위기 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전 늦게나마 방트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저희 편 전원에게 제가 아이작을 상대하는 동안 상대 편 원캐들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카인인 제 친구는 저격으로 토마스를 사살하라는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마지막을 직감하는 한타가 열리게 되고 전 아까 팀원에게 한 말과 같이 아이작에게 달려들었고 저희 팀 원캐들은 상대 팀 원캐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맵 전역에 울리는 시원한 저격소리와 미니맵으로 토마스가 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전 이 한타가 승리했음을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선지 컴토마스는 전광판에 올라와 있지 않았고 되려 크리스탈 허리케인이 시전되는 소리와 함께 저희 팀이 족족 전광판에 올라가게 됩니다.

저는 당황하며 친구에게

"야, 저격 똑바로 쐈냐?"

라고 물었고 친구는 다섯발 전부 맞혔다고 대답했습니다.

저 또한 토마스가 날라가는 모습을 봤기에 친구의 대답에 거짓을 느낄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직감이 들어 제 친구의 아이템 트리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들어맞는다고 제 친구는 방트리를 탔었습니다. 친구 딴엔 아이작에게 죽지 않기 위해 방트리를 탔었던 게 분명했습니다.

전 초심자인 친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을 한다면 컴토마스의 AI를 사기적으로 만든 네오플에게 있었겠지요.

그렇게 아이작을 상대하느라 너덜너덜해진 저 마저 잡혀버리고 게임은 상대 편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걸 지면 내 1년 사퍼 인생을 부정하는 거지

이 게임이 끝난 후 본캐로 접속해 화풀이 차원에서 돈 공식전은 평소와 다르게 전승을 기록했으나 기분이 슬픈 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