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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주었다 #4
게시물ID : panic_854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21
조회수 : 172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1/01 21: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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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이 곳곳에 겹겹히 쌓여있었지만 맑은 햇살을 머금고 천천히 녹아갔다. 광장은 제법 사람들이 오고가며 어수선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엄마~ 이쪽이야~"

 앳된 표정의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자그마한 보폭으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너무 멀리 가면 안돼요!"

 엄마가 아이의 옷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외침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더욱 몸을 흔들며 뛰어갔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신이 난 모양이었다. 엄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따라갔다.

 "메에롱~"

 따라오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이는 가볍게 혀를 내밀고는 발걸음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머! 위험해!"

 아이가 광장을 지나치고 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 엄마는 들고있던 옷들을 떨어뜨리고 아이를 향해 뛰어갔다. 엄마의 외침에 광장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더욱 더 엄마와 멀어져갔다. 
 거세게 지나치는 차들을 사이에 두고 엄마는 창백해진 얼굴로 아이를 부르며 도로를 건넜다. 아이는 어느새 중앙선까지 걸어들어와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행히도 차들은 도로 위의 작은 아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속도를 늦추며 빗겨갔다. 엄마가 아이의 곁에 다다르자 아이가 가볍게 엄마의 품에 안겼다.

 "히히히. 엄마다."

 "아아... 왜 그랬어!!! 위험하잖아!!!"

 갑작스런 엄마의 다그침에 아이는 금새 울상이 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핏기 가신 얼굴로 아이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는 금새 콧물을 흘리며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렸지만 놀란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엄마는 말없이 아이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이를 들어올렸다.


 하필이면 전 날 술을 마시는게 아니었다. 하물며 취기가 가시지 않은 채 화물트럭을 모는게 아니었다. 정신 없는 머리를 조아리며 트럭을 몰던 운전자는 그 도로를 지나쳐서는 안 되었다. 중앙선을 옆에 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운전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물차는 옆으로 미끄러졌다. 갑작스러운 충격음에 도로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차들은 정체되었다.
 그렇게 두 송이의 꽃이 졌다.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사무실에는 차분히 내쉬는 내 숨소리와 말 없이 흐느끼고 있는 여자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이제... 아시겠나요?"

 "내... 내 아이는요... 내 아이는요!!!"

 목을 타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여자가 나에게 소리쳤다. 여자의 광기어린 눈빛을 쳐다보자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아이도 안타깝지만..."

 "우리 애는 어디있냐고! 같이 죽은거면 내 옆에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여자가 일어서서 내게 얼굴을 들이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여자의 울음이 멎어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시 살려드릴게요."

 여자는 우는 와중에도 내 말에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개소리하지마!!!"

 "아니요. 정말이에요. 다시 살려드릴게요."

 "지금... 지금 나랑 장난하는거지...?"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당신 대체..."

 "정말입니다. 이 곳은 현실이 아니에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세상이에요. 인정하셔야 되요."

 여자의 눈빛을 피하지않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지금 제가 장난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정말로 다시 그 때로 살려드릴게요. 1분 밖에 되지 않지만..."

 "내 아이 어딨어...어딨냐고!!!"

 "그러니까 제가 다시 돌려드린다구요. 다시 저 때로 돌아가게 해줄게요."

 여자는 갈 곳 잃은 눈빛을 돌리며 입술을 떨었다.

 " 1분이고 뭐고... 다시 돌려줘요... 내 아이... 어디있어... 돌려줘요... 돌려줘..."

 "딱 1분이에요. 돌려드릴 수 있는 시간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지금 대체가... 뭐든 좋으니까 내 아이 다시 돌려줘요.. 돌려주라고!!!"

 더 이상 이성적인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저 엄마같은 부류는 제법 많았다. 같이 사고 영상을 지켜보면서, 특히 자식과 함께 죽음을 맞은 부모들을 보면서 가슴 찢어지도록 마음이 아려왔다. 그들을 조용히 다독여주고 감싸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언젠가부터는 말 없이 손가락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서 1분을 바로 되돌려주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자식을 눈 앞에 다시 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을 꼬옥 감싸 안았다. 소리없이 울먹이기도 했고, 꿈이었다며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끔찍한 결말이 삽시간에 찾아와서 다시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사람들은 자식을 안고 있던 팔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다시 나를 재촉했다.
 돌려달라고.
 그 때 부터는 1분을 몇 번이고 돌리며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1분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마음속으로 그들의 모습을 응원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구원에 성공하기를 절실히 바라고 또 바라지만, 뭔지 모를 안타까움을 가슴 한 구석에 삼켰다.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 1분을 계속해서 소비하며 결국에는 모두 지옥으로 사라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1분의 거래 조건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겪고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깨달았다. 세상 어떤 부모도 자식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테니까. 그렇기에 내 오전 리스트에도 자식과 함께 죽음을 맞은 부모들은 필수로 체크하였다.
 영업하기가 쉬운 고객이라는 간사한 마음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파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행여나 구원에 성공하여 못다한 이 세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자꾸만 엇나갔다. 몇 번이고 자식의 죽음을 반복하는 이들을 보면서 몸서리 칠만큼 후회가 몰려왔다. 구원에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구원에 실패할게 뻔하다는 측은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려는 모든 행동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그렇게 몇 번이고 차도에서 차에 치이는 여자와 아이를 보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어느날 영업부의 강 사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죽은 사람들이 다 이 세상으로 오는건 아니더라?"

 평소 이상한 말을 잘하기에 여느때와 같이 그의 말을 흘러넘기고 커피를 마셨다.

 "아니, 아니.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강 사원이 더욱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얼굴을 가까이댔다.

 "아, 진짜~ 또 무슨 헛소리 할려고 그래."

 "진짜 이거 소름이라니까. 일단 들어봐봐."

 강 사원이 내 어깨를 감싸고 로비에 놓인 테이블 앞으로 끌고왔다.

 '또 시작이네.'

 왠지 무시하고 넘어가면 계속 괴롭힐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내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고서는 강 사원도 의자에 앉았다.

 "나도 이거 아까 몰래 들은건데."

 "몰래 듣다니?"

 내가 시큰둥하게 쳐다보자 강 사원은 몸을 낮추고 말을 이어갔다.

 "그, 우리 VIP고객 있잖아. 그 얼굴 시커먼 것들. 아니 얼굴도 없지 걔넨."

 "아무튼. 그래서?"

 "그 내가 부장님이랑 걔네랑 얘기하는걸 진짜 우연찮게 들은건데."

 "아까는 몰래 들은거라며."

 "아 쫌! 들어라."

 강 사원이 목 멘 소리를 하자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가 죽고나면 이 쪽 세상으로 오잖아. 나 같은 경우에는 눈을 떠보니 길바닥이었고. 너는..."

 강 사원은 아차싶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커피를 허겁지겁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죽으면 이 쪽으로 오는게 맞잖아. 근데!"

 강 사원이 일어서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이 세상말고 다른 세상도 있다더라."

 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간 강 사원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에휴 말을 말자."

 역시나 헛소리는 끝까지 듣는게 아니었다. 나는 빈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서둘러 일어섰다.

 "아니. 왜~ 진짜라니까!"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 저는 바빠서 먼저 좀 가볼게요?"

 잔뜩 삐쳐서 째려보는 강 사원을 뒤로하고 로비를 나왔다.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말이란걸 잘 알기에 자리를 급히 떴다.
 
 

 회사 밖으로 나와 뜨거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자꾸만 여자와 아이의 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텁텁한 현기증이 찾아오고 다시금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본능적으로 온 몸을 뒤지며 담배를 찾았지만 있을 리 없었다. 이 세상에는 담배란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평소와 같이 황야를 거닐며 마음을 풀어볼까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될까 두려움이 살짝 적셔왔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숨을 내쉬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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