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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잔혹한 동화 - 2 더이상 돌이 킬 수 없다
게시물ID : readers_8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헤르타뮐러
추천 : 0
조회수 : 2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9 23:48:44
잔혹한 동화 2 더 이상 돌이 킬 수 없다.
 
   달이 피에 적셔진 듯 붉게 보였다. 한숨을 잠깐 쉬었다.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하늘과는 다르게 아스팔트 위에는 검게 피가 섞여 있었다. 아니 달과는 다르게.
 
   이래선 안 될 거야. 몇 번의 중얼거림으로 뇌 속에 주입시켰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이제야 떠올랐다. 더 이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눈꺼풀에 힘을 줄 수 없을 만큼 졸렸다. 잠을 깨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겨우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갔다. 집을 향해 갔다. 비도 오지 않았지만 신발은 물이 들어 간 듯이 질척거렸다. 비린내는 손에서 났다. 딱지처럼 피가 굳었다. 손톱으로 피를 긁었지만 떼어지지 않았다. 나는 돌이키지 못한다. 생각은 생각을 물었다. 결국 생각은 또 다시 뇌 속에 파묻혀져 갔다.
 
   더 이상의 환청이 들리지 않는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환청이 들린 순간 돌이 킬 수 없었으니까. 다시 손에서 냄새가 나는지 코에 갖다 댔다. 손에서는 더 이상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나는 손을 툭 떨어트렸다. 손은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온몸이 피로가 누적되어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잠시 멈추고 달을 쳐다봤다. 달은 여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달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한 쪽 눈을 손으로 감쌌다. 흔들리는 것은 멈췄지만 다른 한 쪽 눈이 흐릿해졌다. 그러다 눈물이 흘렀다. 다시 선명하게 달이 보이자마자 손을 내렸다. 울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이유는 나 자신이 돌이 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었다..
 
   고속도로처럼 뻗어진 길옆에 담벼락을 손으로 잡았다. 담벼락을 쓸 듯 걸어갔다. 담벼락을 쓸던 손이 허공에 닿았다. 나는 담벼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회였다. 붉은 십자가와 벽돌로 쌓아올린 어느 곳에나 보던 교회. 나는 교회 입구로 걸어갔다. 교회 안은 복도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안에서 나오는 불빛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게 걷다가 잠시 문 앞에서 멈췄다. 나의 손을 코에 가까이 대었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 굳은 피는 불빛에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신발의 질척거림도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교회에 들어간다 해서 돌이 킬 수 없다는 것을 끄집어냈다.
 
   나는 질척이는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거꾸로 돌렸다. 신발에서는 묽어진 피가 흘러나왔다. 하얀 양말 또한 연한 피 색으로 젖어있었다. 이렇게 피를 빼낸다고 해서 더 이상 돌이키거나 달라질 것은 없다고 다시 되새겼다.
 
   아파트 단지로 넘어가는 신호등 앞에 서있었다. 빨간색으로 밝게 빛났다. 나는 멍하니 신호등 불빛 안에 들어가 있는 남자를 보았다. 식칼. 나는 어제 갈았던 식칼을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돌이 킬 수 없다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나의 시선을 신호등으로 돌렸다. 나는 신호등에 불이 초록 불로 변했을 때 걸어 나갔다.
 
   돌이 킬 수 없어 더 이상. 나는 최면처럼 중얼거리며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인간이 밀집한 지대였다. 그들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돌이 킬 수 없는 인간이라 해도 말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돌이 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아파트 단지의 이웃을 죽였다. 46번의 칼질은 이제 더 이상 돌이 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나는 돌이 킬 수 없는 일을 위해 돌아왔다. 여전히 신발을 질척이고, 손에는 피가 굳어 있었다. 돌이 킬 수 없어 나는. 그렇게 나에 대한 최면을 걸어두고 406동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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