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엔조이재팬 시절에 한국인 대부분이 일본인들에게 논파당하던 시절이 있었죠,대표적인 청산리전투 문제라던가.. 그때 한국인들이 교수들논문까지 들고왔는데도 논파당한것으로 알고있었습니다,심지어 서울대교수까지 왔는데도 말이죠, 따지고보면 일본사학계는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체계적입니다,순수하게 발해를 연구하는 단체까지 있을정도니까요..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인들의 주장은 모조리 조작이다! 부정하면 매국노다! 이런식으로생각햇던것도 부끄럽습니다,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사학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10년이란 세월이 그리긴것도 아니지만... 그저 작은 푸념입니다
1, 11111 제가 알기론 왕국을 부족으로 떨어트린 분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인 걸로 압니다. 주장이 맞을려면, 신화에 가깝다고 주장한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기존의 주장이 광범위하게 그랬을 경우만 민족주의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죠? 제가 알기론 그런 거 없습니다.
인조이 재팬 시절이라....일본의 사회낙오자들인 우익 아저씨들에게 한국 학생들이 낚이던 시절이죠. 일본측은 30-40대에 나름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선상고사 읽기 모임까지 만들며 접하던 우익단체고 한국은 10-20대 주류에 호기심이나 관심으로 들어오던 학생들이 주류였으니 말이죠. 오죽 했으면 사료를 날조해 도서관 복사본이다 드리밀어도 믿고. 학교 교직원이 그럴듯한 사료 밀며 동경대 교수라 해도 믿어요. (당시 일본인 유머 코드가 날조사료도 해석 못하는 한국인 놀리는 내용이 일본인들끼리 돌정도였죠) 이토록 순진하니 나중엔 일본인에게 동도하는 학생도 나오더군요. 안타까운세 그런 학생을 두고 냉철한 지성이니 깨인한국인이니 일본우익이 칭찬하고 치켜세우다 (일본으로가 오프라인 모임도 참석했다죠) 적은 논쟁이 있자 역시 조센징은 안된다며 바로 이지메 하던 광경이었죠. 친일파라고 한국인들에게도 욕먹고 일본우익은 장난감 굴리듯 이지메하고 결국 종적을 감추더군요. 한국사학계가 문제가 아니라 당시 그냥 인조이하던 어린 한국학생들이 순진했던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