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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똑. 똑.
게시물ID : readers_143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노낫띵스뇨
추천 : 1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04 05:29:09
 
 
 
연습작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오마주를 얻었습니다.
 
공포게에 올리려고 했는데 별로 무섭지 않아서 소설게에 올려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ㅋㅋ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건 한 순간의 착각이라고 항상 생각하고는 하지.

요즈음 공포 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 같아. 주변의 누군가가 자의적이였든 타의적이든

영적인 존재한테 지배를 당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방식의 이야기 말이야.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곤 해. 왜 홀린 사람한테 당하는 사람이 스토리의 핵심일까? 정작 제일 무서운 건 잠식당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당사자인데 어느 누구도 그것에 포인트를 잡지 않는걸까 그런 생각 말이지. 괜한 엉뚱한 공상이 아니라

아주 조금 오래전에 겪었던 일 덕분이야. 고작해봐야 겨우 2~3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름의 무섬증이 돋았던 체험담을 듣고 있으니까 말이야. 각기 다른 패턴의 이야기이지만

모두 똑같지 않느냐는 느낌이 들거든. 우선 한 가지. 이 쪽은 실재적인 세계가 있고, 반대편에는 죽음의 세계가 있어서

그게 교차하는 지점에 어떤 이유로 놓아지게 된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 곳엔 귀신이라던가 또 한가지는 3차원의 상식을

넘어선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능력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하나를 집중해서 경험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말야. 쉽게 말해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곧잘 다음번에도 보기마 련이지만 한번도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곤 한단 말이지. 그런 개인적인 경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런 것을 종합해보면

귀신을 본다는 건 일종의 재능이라는 느낌이 들거든.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거니까.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처럼 극복할 수 있는 격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이 사람은 삶과 죽음이 뒤섞인 교차로에 드나들 수 있고

나는 그럴 수 없어. 그러면 그저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거야. 바스코 다 가마의 무용담을 듣는 본토 유럽인들마냥.

보지 못했으니까 거짓말이던 실화던 믿을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거지.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나는 그런 사람들을 질투해 왔어. 약간 웃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스물하고도

몇해를 살아왔지만 단 한번도 유령을 본 적이 없다고. 어두컴컴한 골목을 걸으며 저기 모퉁이를 돌면 귀신이 있을 거 같다고

예감해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쥐새끼 한마리조차. 또 예지몽 비슷한 것을 꾸어도 실상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었지만 말이지 이제는 제법 대범하게 넘어가 버리고는 해. 왜냐하면

나한테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어느 날은 두 친구와 폐가로 담력시험을 보러 갔을 때, 그들이 귀신을 보았다고 했지만 나

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 둘 다 어린아이가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들어올 때 파란옷을 입은

남자아이따위는 없었단 말이야. 우리 셋뿐이었어. 둘이 거짓말을 하는것 같진 않더군.

왜냐하면 하교길 도중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라 둘이 장난을 모의할 일은 없었을 뿐더러 그런 시시한 거짓말을 할

사람들은 아니었거든. 아이가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있다가 밖으로 달려나간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그로테스크 했겠지.

여자귀신이 거꾸로 매달려 바로 내 면전에서 목을 꺾고 있었다는 등 말이야. 어쨌거나 굉장히 소름돋는 일이었지만

당시에 지독하게 배가 고팠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 남겨둔 고로케를 먹고싶다는 생각만 했어.

결론은 나라는 인간은 말이야 귀신도 보지 못하고 초능력도 없어. 그러니 공포적인 것들에 무감각해져 버렸지.

실존한다 한들 나에게 튀어나올 일은 없으니까. 야밤에 이렇게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적당한

체험담을 하나 만들어 내려고 골머리나 썩는, 지루한 인생이란 말이야.



그런데 나에게도 딱 한번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어. 그동안 이 일에 대해 입밖으로

꺼낸 적은 없어. 왠지 이걸 얘기하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더라고. 그런데 내 예감이 들어맞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툭 터놓고 이야기해도 될것같아. 나 혼자만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말야.

대수로운 이야기도 아니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마. 앞의 이야기들처럼 귀신도 나오지 않고 초자연적인 현상도 없어.

너무 이야기가 루즈해서 듣다가 이게뭐야하고 비웃어 버릴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런 것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해보겠어.



2012년,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 나는 바로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친하지 않은 친구들한테는

학교 다니기가 귀찮다, 사회경험이다 뭐다 하고 에둘러 핑계를 댔지만 실은 수중에 한푼도 없어서였거든. 대학을 늦게

들어간 바람에 부모님께서 갓 대학에 입학한 동생과 나의 학비를 동시에 부담하셔야 되는 상황인거야. 틈틈히 공모전이라던가

문학잡지에 글을 보내고 있었지만 영 반응이 좋지않았어. 거기다가 상금도 고작 한달 생활비에 못미치고 말이야. 그리고

그것 빼고는 별다른 능력도 없고 나이는 젊은데 가진 것은 몸뿐이라 육체노동을 해야만 했지. 달리 그것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었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해도

똑같은 일을 할거란 말이지.

그게 흔히 말하는 최선 아니겠나?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지. 일주일정도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군인 간부의 추천으로 친척이 운영한다는 가구상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 워낙 부대규모도 작은데다가 말년까지 할일이 주어지면 성설하게 하니까 퍽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지금도 딱히 그런 곳에 몸담글 체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주변사람들 중에서 내가 그나마 적격이었던

거지. 이유가 어쨌든 뭐 그렇게 되버린거야. 일도 고되지 않고 급여도 짭짤하다고 하니까. 도시 외곽의 작은 가구상점에서

말이지. 간부말대로 손님이 드문드문하니 힘든 일은 없었어. 외워둔 메뉴얼대로 손님들을 상대하고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씩 가구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내고 배송기사가 오면 물건 나르는 걸 거들고 그게 다였거든.

하루종일 손님이 없는 때도 있어서 카운터에서 책을 읽거나 졸기도 하고 가게 문을 잠그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 그리고 밤 10시에 가게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끝이었어.

건너편에는 인가 없는 정체불명의 숲 뿐이고 경찰지구대는 커녕 가로등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동네였지만 말이야.

가게에서 밤 중까지 혼자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 조금도 겁나거나 그러지 않았어. 스물넷, 다섯 창창한 나이에

늦은 밤까지 혼자 남아있는 걸 무서워하는 것도 볼쌍사납고 말이야.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 가게에는 근사한 재목으로 만든 가구가 많았어. 물푸레나무니 오동나무로 만든거 말이야.

가격이 싼 삼나무같은 걸로 만든 물건은 한개도 없었어. 아동용 서랍까지 죄다 고급 원목가구 였다고. 그런데 사무실 안에

독서실 책상은 달랐어. 그건 싸구려 합판으로 조립한 거였지. 못쓰는 폐가구나 만들고 남은 톱밥을 접착제와 열로 압축해서

만드는 거 말이야. 그런게 가게에 있다는 게 이상했거든. 으스스하다거나 섬칫한 예감 때문이 아니고. 비유를 하자면 연회장에서

가난한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너무 색이 바래서 검정인지 회색인지 분간이 가지않는, 소맷부분도 다 헤진

정장을 입고 자기도 처해있는 꼴을 아는지 구석테이블에서 따라놓은 술만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는 아저씨말이야.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어. 괜히 그런것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물어본다 한들

제대로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거든. 책상이 덜컥 움직여 사람을 잡아먹는 일도 없고 말이지. 차라리 늦은 밤까지

남아있으면 걱정되는 쪽이 있다면 강도지. 그런 때를 대비해서 연장통을 카운터 아래 숨겨두고 있었으니까.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게다가 반강제였긴 했지만 태권도도 배워뒀고 제대 직후라 힘이라던가 근육상태가 괜찮았거든.

저쪽이 총을 들고오지 않는 이상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물론 지금은 카운터 위에 돈을 올려놓고 줄행랑을

치겠지.



그 날은 9월 초였지만 굉장히 무더운 날이었어. 전혀 가을날씨가 아니었지. 에어컨을 켜놓고 선풍기까지 틀어놓았어.

저녁에는 정말 한여름 무렵처럼 외등에 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말이야. 8시 쯤에 도착하기로 한 기사가 사고때문에

새벽 1시에 오기로 되어있어서 제때 퇴근도 하지못하는 짜증나는 상황이었지. 실은 온종일 잠기가 쏟아졌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인데도 더 신경질이 났거든. 잠도 충분히 자두었는데도 말이야. 점심에 먹었던 국수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베게처럼 푹신해 보일정도 였지. 더럽게 피곤하더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어떻게든 깨어볼려고

TV를 보고 있는데 액션영화 속 폭팔음조차 자장가처럼 들리는 거 아니겠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어.

결국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지. 매장에 푹신한 침대와 쇼파가 있었지만 그런 곳에서 자다간 정오가 되서야 깰것 같았어.

게다가 그런 일을 한번 하면 다음에는 몇번이고 평소처럼 하게되니 말이야. 적당히 기대어 잘만한 걸 찾고있는데 갑자기

그 책상이 기억이 났어. 사무실 한켠에 놓아둔 독서실 책상말야. 학창시절 그런 책상에 많이 자봐서, 학창시절에 별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보다시피 모범생스타일도 아니었거든, 어떻게 편하게 잘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

꽤 좋은 생각같았어. 그때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상에 엎드리니까 예상보다 훨씬 아늑했어. 아마 지독하게 졸렸기 때문이었겠지. 약간 좋지 않은 예감도

들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그냥 기대자마자 잠에 빠져버려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어. 그리고 아주 기묘한

꿈을 꾸었지. 잘 기억나지는 않아. 오래 전인데다가 뭐 꿈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일어난 직후에는 간밤에 잔 여자아이의 베게

맡 냄새처럼 강렬하다가 금세 휘발되어 버리잖아. 그리고선 방금 무슨 일이었지하고 어리벙벙해지곤 하지.

그래도 어렴풋이 마지막 부분은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꿈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어. 평소에는 그런 단 음식을

싫어하는데도 말이야. 구름처럼 뭉실하고 혀에 올려놓으면 착 하고 금세 가라앉아버리는 아이스크림이었지. 아예 솜사탕은

아니고.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맛인 것 같기도 하고 난생 처음 먹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과일맛이 났던 것도 같아.

미안해. 먹는 거에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니어서 자세히 말하진 못하겠어. 어쨌든 환상적인 맛이었지. 그러니 계속 먹고

있었던 거였겠지. 그런데 갑자기 이가 시려웠어. 왼쪽 어금니를 기다랗고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단 말이야.

그래서 무심결에 시려운 부분을 만지는데 이빨아래 또다른 어금니가 나있었어. 가로로 뉘어서 입밖을 향해서.

놀라서 조금씩 더 더듬어보니까 다른 이에도 그것과 똑같은 게 나있는게 아니겠어. 그건 자연스레 난 것도 아니고

치아가 분리된것도 아니고 별안간 나타난 거였지. 손가락이 닿는 부분마다 그런게 나와있었어. 혓바닥도 입천장에도

빼곡히. 그리고선 잠에서 깨어났지. 인생에 꿨던 꿈들을 모아두는 비밀창고가 있다면 분명 그 꿈은 안좋은 쪽에

분류되어 있을거야. 거기다가 폴더에 빨간테이프를 붙여 '취급주의'라고 표식을 해두었겠지.



깨어나자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단 말이야.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나고 싶지않은 기분이었지. 내 속에 잠자코 숨어있던 또다른 내가 의지를 빼앗고 묶고 있는 것

같았어. 강제로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지금은 아냐, 지금은 아니야 이러고 나를 타이르고 있었단 말야. 평소에 잠에서 깨어나면

잘 일어나는 편이라 그런 일은 없었거든. 억지로 발가락이라도 움직여보려고 노력했지만 해부된 개구리같이 눈만

껌뻑거릴수 밖에 없더군.



그런데 옆 칸막이에 누군가가 똑.똑.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어. 아니 정확하게 노크는 아니었지. 그건 나를 부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었지. 그냥 텅빈 것이 두드릴 때 나는 텅빈 소리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것 같았어. 똑.똑. 일정한 간격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사실 나는 똑똑거리는 소음보다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무서웠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머리가 약간 돈 사람이건

귀신이건 한대 후려치고 싶을정도로 화도 나있었거든. 하지만 몸이 도통 말을 듣지않아.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방비 상태란

말야. 바로 면전에 끔찍한 게 튀어나와도 소리도 못지르고 등 뒤에 칼을 꽂는다해도 반항할 수 없는거. 그게 겁이 났어.

또다른 나는 밖의 상황도 모르고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이러고만 있으니까.



하지만 벽을 두드리는 것은 그러지 않았어. 오로지 똑똑 두드리는 거에 집중했지. 똑.똑. 그래서 잠깐 얌전히

생각해보니까 이것이 어쩌면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맞아 바로 앞에 내가 있는 걸 모르는

상태인 거야. 그리고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지. 나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말이야.

저게 내가 처리할 수 없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것이니까 움직이려는 나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거야. 여차해서

내가 있다는 낌새를 눈치채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했어.

착각이든 진실이던 그 상황에 그게 최선이었거든.



그래서 한참동안 가만히 녀석이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어. 1시간 혹은 10분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체감하는

시간은 아주 긴 세월이었지. 바다에 떠오른 검은 빙하처럼 완벽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나는 최대한 부딪히지 않도록

노력했어. 배를 최대한 좌현으로 돌리고 제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도 했지. 숨도 참았다가 조용히 내쉬고

말 그대로 눈하나 꿈뻑하지 않았어. 아무리 늦더라도 새벽 즈음에는 끝나지 않겠어. 언제나 그렇듯 그것들은 빛에

약하니까. 그런 긍정적인 마음가짐도 했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똑하는 소리와 끝으로 더이상 들리지 않았어. 아무 이유도 없이 말야. 똑하고 싱겁게

끝이나 버렸지. 그래도 괴로움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어. 언제 그랬냐는 듯 속박도 풀렸어. 그리 몸이 가볍지는 않지만.

곧장 일어나 입구 쪽으로 뒷걸음을 치고 바닥에 주저앉았지. 목뒤켠에서 사타구니까지 온통 식은땀 범벅이었어.

아무것도 없더군. 일부러 골리는 것처럼 말이야. 많이 무서웠구나 낄낄대는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단 말일세.

나는 곧장 카운터로 달려가 연장통에서 망치를 꺼내 책상을 내리쳤어. 평소에 누군가 그런 책상을 혼자 부셔버리라고 했다면

족히 몇시간은 걸렸겠지만 손바닥이 얼얼해도 내리치고 또 내리쳐댔지. 누군가가 봤으면 굉장히 화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화난 게 아니라 정말 무서워서 그랬어.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든지 하는 법이야. 그게

책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할만큼 산산히 조각내버리고 망치를 내던지고 나와 사무실 문을 닫았어.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와

앉아 담배 한대를 피웠지. 사무실에 놔두고 온 망치가 신경쓰였지만 도저히 거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어. 망치질을 한건

분명 손인데 심장 부근이 더 얼얼하더군. 바람에 사무실 문이 덜커덩 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건 짐승이 우는 소리처럼 들렸지.

우어어랄까 구오오랄까 그런 음색으로 말이야.



아마 결말은 다들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독서실 책상따위는 없었던 거야. 이런 장르의, 무서운 이야기의 흔한

클리셰지. 다시 아침에 출근해 사무실에 들어가니까 망치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어. 하지만 책상은 없었단 말일세.

잔해도, 아무것도 없이 말끔했지. 애시당초 그런건 없었으니까. 사장님한테 책상에 대해 이야기해도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런 맹숭한 반응뿐이었지.



이게 이야기의 끝이야. 결국 끝까지 나는 귀신을 보지 못한 사람인 걸 자인하는 것 같아 편치 않은 결말이지만,

지금도 그날밤에 일어난 일은 잘 잊혀지지 않아. 모든게 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기묘한 환상이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언제나 생각하고는 해. 자기 자신의 착각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고. 사소하든 대단하든 비극이니까.

내 이야기를 듣고나니 어느 정도 동감하지 않나? 그런데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자네들도 처음 이 집안에 들어올 때부터 똑똑 노크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나? 나름 익숙해지면 절간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처럼

평화롭게 느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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