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플라잉 더치맨
플라잉 더치맨호는 1641년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항을 출발하여 인도 동쪽 네델란드령 바타비아로 향해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배의 선장인 헨드릭 반데르데켄은 고집이 쎄서 향해사들의 경고를 묵살하고
자신이 폭풍우치는 희망봉을 돌아서 향해해 올 수 있으며. 이것이 신이 자신을 구원해준다는 증거라는 자만에
찬 내기를 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끝과 마주칠 때까지 향해할 것이라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배는 큰 태풍의 중심을 지나가다 실종이 되고 맙니다.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침몰 되었다고 발표된
더 플라잉 더치맨호는 배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침몰이 되었는지 몰라 배의 잔해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침몰이 되었다고 믿어진 플라잉 더치맨호는 17~20세기 초까지 수십여척의 민간 선박 들과
군함들에 의해 목격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플라잉 더치맨호를 봤다며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붉은 빛이 난다'
'밤이나 안개낀 날에 배를 보았다"
"배와 조우했는데 상륙신호를 보냈다"
"배가 바다에 떠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전문가들은 이것은 파타 모르가나 현상인 착시 현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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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 모르가나 신기루 현상
2.메리 셀레스트
1876년 포르투갈 인근 대서양에서 영국의 디 그라티아 호가 수상한 배 한 척을 발견했습니다.
그 배는 어딘가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아무 신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라티아 호의 선원들은 수상한 배 안으로 가보았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배는 오랜시간 비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비워져 있는 배 치곤 멀쩡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당시 배의 상태는
-선원들의 옷.개인 용품 등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배에 유일하게 하나 있던 구명정이 사라져 있었다.
-배 안의 알코올 통은 총 10개였으나 9개가 비워져있다
-배 외관에 끊어진 밧줄 하나가 단단히 묶여있었다.
-배 갑판 외곽에 고의로 낸듯한 흠집이 발견되었다.
그 후 인양되어 배의 출신지를 조사해보니
1861년 캐나다에서 '아마존 호'라는 이름으로 건조된 배였으며
3년뒤 미국 선박이 되어 '메리 셀레스트 호'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그 후 베테랑인 브리그즈가 이 배의 선장이 되어 1872년 알코얼을 싣고
뉴욕에서 이탈리아 갈 계획으로 출항하였고
그 배안에 선장의 아내와 딸도 승선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실종된 채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바다의 저주다"
"유령이 납치한 것이다"
"단순한 조난이다"
"해적들에게 배를 뻇긴 것이다"
"자연재해다"
"선상반란이다"
등의 여러가지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만약 해적들에게 배를 뺏긴 것이라면 싸움의 흔적이나
약탈의 흔적이 보였어야 되는데
그런점들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순한 조난이라고 하기엔
선원들의 옷이나 비상식량 등 중용한 물품도 그대로 인 것으로 볼 때
조난이나 자연재해일 가능성도 낮다는 평입니다.
당시 메리셀레스트호의 사건 발생지역이
버뮤다 삼각지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어떤 사건떄문에 선원들이 전부 사라지고
배는 유령선이 된채 북대서양까지 내려왔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알코올 폭발 가설이 가장 무게가 실리면서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은 알코올 폭발인해 발생한 사고로 결론짓게 됩니다.
이 가설은 알코올 통의 상당 수가 비워져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한 가설로
알코올 통은 나무로 만들어져 알코올을 쉽게 머금었으며 철제 받침대와 마찰을 일으켜 폭발했다는 추측입니다.
브리그즈 선장은 그 폭발 소리를 듣고 대폭발이 일어날까 두려워
선원에게 탈출 명령을 내렸고 밧줄을 매단 구명 보트로 모두 옮겨탔으나 정원초과로 밧줄이 그만 끊어져서
모두 바다에 떠다니다 익사했다는 가설입니다.
또한 구멍정에 타고 선원들은 메리 셀레스트 호의 상태을 살펴보지만
아무 일도 안일어났고 그때서야 메리 셀레스트 호에 승선하려 하지만
메리 셀레스트 호 속도을 따라잡지못하여
바다의 떠다니다 죽었을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3.하수구 괴물
200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하수구에서 하수구 괴물 영상이 유포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상 속엔 하수구 벽에 붙어 꿈틀거리는 괴이한 생물체를 담고 있었는데
이는 조작이아니라 실제로 찰영된것이라는게 밝혀지면서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후 이 영상은 1949년도에 건설돼 노후된 하수구 라인에 대한 검사를 하던 중 촬영한 것”이라고 밝혀졌고
"은페됬던 영상이다"
"외계인이다"
"끔찍하다"
란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관심히 커지자
생물학자 에드 부천은 이것을 벌레들이 서로 모여 사는 군체라고 확인했다 합니다.
부천은 마치 주머니가 숨을 쉬는 듯한 이 생명체의 움직임에 대해
“카메라의 불빛이 매우 뜨거워 불빛에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며 “
이런 현상은 드물지만 이전에도 관찰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천은 이 생명체가 어떤 종류의 벌레인지 밝히지는 못했다
4.로어 노크 섬 실종사건
로어 노크 섬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윌터 롤리의 주도하에 세워졌었던
영국의 식민지 였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은 보급품이 동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다시 로어 노크 섬에 갔을떄는 아주 알수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식민지에 있던 주민 115명이 단 한명도 빠짐없이 사라진것입니다.
옷.도구.집등은 사용하던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단서가 될만한 흔적이라곤
주변 나무에 CROATOAN(크로아톤)란 알수 없는 글귀만 적혀있었죠.
그래서 로어노크를"잃어버린 식미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로어 노크 섬 사건에도 여러 가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식민지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했다가 원주민들의 습격을 받고 전멸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근처에 살고있던 파우하탄 족의 족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로어노크의 식민지인들이 파우하탄 동맹에 참여를 거부한 체서픽족과
같이 살고 있어 괘씸한 나머지 모두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이 주장에는 증거가 부족한게 시체도 나오지도 않았고 전투흔적또한 없으며
고고학적인 증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빙성없는 가설만 있다가 현대에 들어서
가장 유력한 가설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크로아탄은 자기들의 지칭하는 크로아톤 지역으로 간다는 뜻이고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융화했다는 가설입니다.
2000년도에 출간된 로어노크를 보면 로어노크의 식민지인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가장 강했던 부족인
초와노크부족을 찾아가 의지했을거라고 추측합니다.
한편.1696년 타르 강에 정착한 프랑스 선교도들은 도착한 후 얼마 안되서 금발에 푸른 눈인 원주민들을 만났다고 기록했는데
이들의 정착지에서 가장 가까운 영국 식민지가 제임스타운이였는데. 이들이 잃어버린 식민지인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5.나미 브 사막의 요정 원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에 있는 나미브사막에는
사막 표면 수백km에 지름 10cm 가량의 원형 무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요정의 원'이라 불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걸두고 식물이나 모래 밑에서 뿜어나오는 유독 가스라는 설이 있었지만
수수께끼는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함부르크 대 교수는 한 가지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사막의 모래에 사는 휜개미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연구내내 언제나 발견되는 생물이 휜개미라는 사실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또 비가 온 후에는 토양 안에는 수분이
원형 모양으로 53%가 축적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이런 사실로부터 휜개미 서식환경이 '요정의 원'
지형을 만들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