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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 떠난 여행,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게시물ID : lovestory_856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황희두
추천 : 1
조회수 : 61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6/18 23: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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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노소영.jpg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면의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철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보통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면의 나를 표현하고 싶다"던 친구 혜진이의 말에 크게 영감 받아 생전 처음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철학을 조금씩 알아가며 내면의 세계에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나는 혜진이와 함께 평소 청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노소영 관장님을 찾아뵈었다. 그리고는 내면의 세계와 고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자기가 외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게 자기 실존을 느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 존재에 깊이 고민이 들어간 거고 거기서부터 자기 찾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 찾기는 죽을 때까지 하지만 인간은 우리 존재에 대해서 답을 모르고 죽는다고 합니다.(…) 삶의 에너지, 남을 돕는 에너지,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는 외로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 갑니다. 다른 이런저런 어려움들에(외부의 저항 등) 마주치면 넘어집니다. 왜냐? 자기를 모르니까. 자기를 찾고 가는 사람들은 오래갈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 너무 중요한 거고, 그렇기에 외로운 청년들이 가장 멋진 청년들입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노소영 관장님께서는 평소 인간의 내면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러한 인간의 다양한 의문을 예술로 표현하시며, 기계와 기술을 통해 일상을 바꾸는 디지털 아트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계셨다. 신기하게도 관심 분야가 겹친 덕분에 나는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관장님께서는 획기적인 제안까지 해주셨다.



"외로운 청년들을 모아놓고 나를 찾는 과정을 같이 해보세요. 그럼 제가 도와줄게요. 나를 어떻게 찾는지. 자기를 표현하는 걸 즐겨하는 건 자기를 계속 찾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자기를 찾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비슷한 친구들이 몇 명이 더 있으면 그룹을 만들어서 같이 책도 읽고 토론도 하면서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중간에 저희끼리 영화도 보러 가고. 그럼 좋을 거 같아요. 연극도 좋고. 기간을 딱 정해놓고 몇 번에 한 번 만나며 서로 평가를 해보는 것이죠. 그 이전하고 이후 하고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된 노소영 관장님과의 철학 스터디 모임. 정치, 예술, 디자인 등 관심 분야가 각자 다른 4명의 청년들과 함께 모임을 시작했다. 관장님께서는 한 달에도 수차례씩 해외를 다녀오실 정도로 바쁘셨지만, 약속대로 한 달에 2회씩은 꼭 시간을 내주셨다.



우리는 같이 홍대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인생 이야기도 나누고, <프란츠>라는 영화를 보며 각자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기도 했다. 내심 놀랐던 것은, 수많은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관장님께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셨다는 점이었다. 평소 관장님께서 강조하셨던 '우리 미래 세대의 주역은 청년'이라는 말씀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플라톤의 『향연』을 읽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나누기도 했고,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을 읽고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하나 받았다.



"희두 씨, 진짜 공부를 하려면 해설본이 아니라 고전 원본을 읽으세요."



처음에는 이 말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씀에서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해설본을 읽으면 '그렇구나'하는 깨달음은 얻게 되겠지만, 질문과 사유하는 습관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고전 즉 원본을 읽게 되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궁금증이 개인을 한층 더 발전시켜주지요."



말씀을 듣고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니 부끄러워졌다. 여태껏 나는 누군가의 해설본을 읽으며 사상을 주입했고, 질문과 사색보다는 그저 누군가의 생각을 '이해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관장님께서 왜 원서를 강조하셨는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모임은 약 반 년정도 이어졌다. 이를 통해 나는 엄청난 삶의 변화를 맞이했다. '자아 찾기'와 단단한 내면의 중요성은 물론이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계신 노소영 관장님으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전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장님께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부모님처럼 좋은 말씀과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다.



작년 겨울,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나는 관장님께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알게 모르게 철학 모임을 하며 부모님처럼 의지해왔다는 것을 느꼈다. 전화로 "워낙 바쁘신 거 같아 아버지 소식을 진작 전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자, 관장님께서는 오히려  우리 모임이 서로의 이야기를 편히 나누기 위한 목적이 아니였냐며 서운해하셨다. 크게 감동받았다.



이후로 각자 전부 바빠진 탓에 예전처럼 모이지는 못하지만 나는 인생이 힘들고 불안할 때마다 관장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린다.



"저는 이걸 20대에 못했는데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20대부터 그런 걸 느꼈다는 게... 전 여태껏 그냥 그 당시에 제일 잘 나가는 쪽으로 택해서 최고->최고->최고로 가다가 40대가 되었을 때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이런 걸 느꼈다니까 제가 다 신기합니다."



탄탄대로만 걸어온 줄만 알았던 관장님께서도 어느 순간 후회를 느꼈다는 말씀. 40대가 넘어 예술을 시작한 후에야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말씀에서 나는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누구도 완벽하게 알 수 없고, 결국 젊은 시절에는 자아를 찾으며 사색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 본인보다 앞질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아 보일지라도 그 길이 유토피아인지 절벽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사색 없는 삶은 공허하고 가벼울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참 전부터 내면을 탐구해오던 혜진이라는 친구도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나도 언젠가는 관장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러려면 해설본이 아니라 원서를 보면서 열심히 사색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사색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해설본이 아닌 원서를 보며.

출처 https://brunch.co.kr/@youthhd/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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