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공장 숙소 한 켠에는 어린 아이가 보면 안 되는 책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려원의 해적판 영웅문입니다. 나중에 발간된 정식 번역보다 번역 질이 좋다고들 했었지요. 그때 같이 발견한 선데이 서울류 잡지가 정치관 고민의 시작입니다. 아니 뭐 영웅문과 선데이 서울의 므훗한 묘사와 사진들이 절 더 설레게 했던 듯 싶은데..
컬러 수영복 사진이 끝난 흑백 면엔 종종 전두환의 쿠데타 이야기와 광주에서의 학살이 실렸습니다. 아마도 서울의 봄 영향으로 타블로이드 지에는 이런 얘기가 실려도 되는 분위기였나 봅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주변의 편견에 불만을 가진 채로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고민을 논리적으로 해결해 준 건 강준만과 노무현입니다. ‘김대중 죽이기’,‘노무현 죽이기’ 를 통해서 어른들의 편견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은 저분 왜 아직도 저러시나 싶지만 (웃음)
어릴 땐 놀러오면 고스톱으로 제돈 털어가는 사촌형의 ‘그래도 김대중이죠‘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아마 용돈을 털리는 바람에 김대중에 대한 호감도가 빨리 안 올랐을 수도?)
노무현의 말과 행동을 접하며 주변 사람들을 설득시킬 용기를 얻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왕따는 김대중에게서 노무현으로 옮겨 온 걸 느낍니다. 김대중의 가신들마저 차별화를 시도하던 시기. 차별화를 거부하고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며 나섰기에 새로운 왕따의 대상이 됐습니다. 노무현의 계승으로 일방적으로 유권자 세력의 차이를 실감했던 시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비로소 새누리와 해볼 만 한 단기 결집을 만들자
가장 격렬한 보수의 저항을 겪었습니다. 단결한 보수 세력의 단일대오와 달리 진보 보수 양쪽으로 공격받던 참여정부는 쓰러지고 말았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로 설명하던 시기를 기억합니다. 화투패가 안 좋던 이유마저 노무현이던 시절. 저 역시 너 보고 노무현 찍었는데 이게 뭐냐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습니다.
개인이 저항해도 신문과 방송을 듣고 매번 레퍼토리가 바뀌는 분들을 상대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제 당이 사라지더라구요. 어차피 당 활동 안하는 당원이긴 했지만.
노무현을 지키려면 나를 뽑아달라던 그 사람들이 당에서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같이 얘기하고 나가라고 말하더군요.
명분을 지키면서 져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마저도 어떻게 새누리에게 정권을 내줄 생각을 하냐는 당 해체의 명분이 되는걸 보며 저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영남 패권주의자가 되는 걸 감수했습니다.
키보드 워리어로는 ‘할만큼 했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손으로 뽑은 정부가 잘 했다고 인정해줄 거라며,
퇴임하는 노무현의 말을 믿고 취미 생활을 즐겼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행동에 ‘할 만큼 했지‘라는건 없습니다. 잃고 나서야 후회한 일입니다.
항상 강하다고 믿고 있던 내 우상이 사실 나를 필요로 했을 수 있습니다. 이름 모를 시민 누군가 찾아가 당신이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다고 더 얘기해 줬다면……. 아직까지 즐거운 잔소리를 듣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변호를 받을 만 하다고 고민했던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의 하나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준 시간만 생각했지 받은 생각이 많다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할 시간에 더 부딪혔어야 했습니다.
너무 늦게 알았지만. 이제 누구를 지켜야 할지 몰랐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접고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 된 결과 모든 말이 신뢰를 잃어버린 유시민의 길도. 당에 애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끌고 올 방법은 나를 지지하는 거라던 안희정의 길도 지지하되, 이들을 노무현을 대하듯 지키겠다고 결심하지 못했습니다.
박영선 의원이 ‘NLL’ 이슈에 대해 발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문재인은 “설령 이것이 내게 불리할지라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지켜야 하고, 그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선택이 짐이 된다면, 그 짐을 나눠 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민주 통합당 합당으로 제 정당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당원과 지지층을 끌고 와 자기 그릇에 넣어버린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분노할 줄 아는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청렴한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적폐청산의 역풍을 맞을 일이 적은 문재인을,
새 시대의 맏형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에 지지합니다.
원칙과 이익의 갈림길에 서면 매번 원칙을 선택했던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안 될 거라고 내심 포기하고 있었던 민주당의 제도와 문화를 바꾼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뒤를 이어, 기득권과 언론에게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문재인을 지지합니다.
자서전 ‘운명’이 참여정부의 미진한 점을 분석한 부분. 문재인이 당대표직을 그만두고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 첫 인터뷰를 낼 때. 자신의 실수에 대한 복기에 동의했습니다.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현대사회에서 리더가 모든 정책에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잘 분석하느냐가 중요하고. 좋은 정치인은 복기에 강합니다.
이 사람을 위해서 애쓰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당원으로 안에서 활동해보니 일을 쉬고 자원 봉사하는 분들이 내심 부러웠는데. 개인사정이 피곤해져서 고민하다 또 조기대선 가능성이 생기면서 선거운동 기간이 짧아졌네요. 운명일지도 모르죠. 예. 백수입니다.
문재인 캠프와 거리가 멀건 가깝건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어차피 전 키보드 워리어잖아요? 자기만족만 느끼면 되는거지.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최선의 상품이 문재인이라고 확신합니다.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만족할 만한 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해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백수 생활 좀 잠시 하겠습니다. 뭐 폼은 안 나지만 -_-;;;
어떤 지도자도 여러분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취향과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 부족한 부분을 대신 채워줄 시민들을 가장 많이 끌어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시민의 희생을 요구하고. 헌신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치참여가 준비된 새로운 20-40 세대가 시대정신에 맞는 역할을 하고,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겨주겠습니다.
정치 권력의 통치는 한계가 있고 기업 권력을 통제할 길은 시민 권력의 감시와 견제밖에 없습니다.
‘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게 정말 어렵단 말이죠……. 정치 훈련을 안 받아본 시민들이 모인다고 잘 조직되겠어요? 당원활동 하다 보니 까칠해지기 힘들어서 사리가 쌓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낙관적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우상이 믿었던 사람들을 제가 못 믿을 이유는 없습니다.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되자는 말을 전 참 좋아합니다.
실망하기 위해 높은 기대를 가지면 이런 정치참여는 힘들어서요.
너도나도 문재인에게 후원한다니까 돈내기 위해서 글을 써봅니다. 몸빵하는걸로 넘어갈까 했는데 sns에 마구마구 올라오기에 격려 받은만큼 격려하기 위해 썼습니다.
다른 후보를 지지해서 정치 참여하는 분들도 응원합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의 정치 참여가 우리를 더욱 단련시킬겁니다.
단지 이번엔 문재인이 먼저 당선되었으면 할 뿐입니다.